면스플레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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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수를 뜻하는 '면'과 설명을 뜻하는 '익스플레인(explain)'의 합성어. 원래 영어권에서 2010년 경에 맨스플레인(mansplain)[1]이라는 신조어가 히트를 첬는데 이게 한국에서 패러디된 말이 면스플레인이다. 맨스플레인과 비슷한 맥락이다. 남들, 특히 여자 앞에서 국수를 가지고 잘난척하면서 설교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주로 남자다)의 행태를 비꼬는 말로 특히 냉면에 관련해서 많이 거론되는 말이다. 특히 이 말이 많이 유행한 것은 함흥냉면에 눌려서 우리나라에서는 마이너했던 평양냉면이 점점 관심을 끌고 평양냉면 마니아들이 늘어나면서부터. 많은 사람들이 함흥냉면에 익숙해져 있던 지라 그와는 스타일이 달라서 초심자들에게는 맛이 심심하고 어색할 수 있는 평양냉면을 가지고 일장연설을 늘어놓는 사람들의 모습이 재수 없다 보니 이 말이 유행하게 되었다. 평양냉면이 특히 떡밥이 많아서, 남북회담 때문에 온 북한 대표단들이나 고위 관료를 지낸 탈북자들이 한국에서 냉면을 맛 보고 '이게 뭐 이래' 하는 식의 반응을 보였다더라... 하는 언론 기사를 거론하면서 면스플레인에 열을 올리기도 한다. 정확히는 북한에서 '냉면'이라고 하는 것은 평양냉면만을 뜻하고, 함흥냉면은 함흥 지방의 농마국수가 한국전쟁 때 피난민과 함께 내려와서 남한 사람들의 입맛에 맞게 변화를 거치면서 '함흥냉면'이라는 이름을 가지게 된 것이다. 이러니 면스플레인의 타겟이 되기 딱 좋은 조건을 갖춘 셈이다.

사실 음식을 판단할 때에는 이 음식이 맛있는지 아닌지, 자연스러운 맛을 내는지 아닌지로 판단해야 한다. 먹는 방법도 에티켓에 어긋나지 않는다면 한 가지 방법만을 고집할 필요는 없다. 물론 어떤 것이 정통인지 역사를 아는 것도 음식을 즐기는 데 도움이 될 수 있고 음식을 먹는 전통적인 방법이 있다면 좀 더 재미 있게 즐길 수 있겠지만 문제는 형식에만 얽매여서 '이것만 진짜고 나머지는 가짜', '이렇게 먹어야 하고 아니면 무식한 것'이라는 식으로 매도하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진짜로 음식을 즐기는 게 아니라 겉껍데기에 얽매이게 되고 더 나아가서 남에게 강요하는 진상짓을 하게 된다.

주요한 레퍼토리

함흥냉면은 가짜 냉면이다

일단 열렬한 평양냉면 마니아들은 함흥냉면냉면이 아니라고 비하한다. 북한에 있는 냉면평양냉면 뿐이고 함흥냉면은 없다는 것. 종북이네? 이 부분은 맞다. 북한에서는 냉면이라고 하면 평양냉면을 뜻하는 것이고 함흥냉면은 북한의 농마국수가 한국에서 현지화된 것. 실제로 남북회담 때 한국에 온 북한 대표단들이 함흥냉면을 보고 '이게 뭐냐'는 반응을 보였던 것은 잘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이게 언론으로도 보도 되고 하다 보니 함흥냉면을 비하하는 평양냉면 마니아들에게 날개를 달아준 격.

하지만 냉면이라는 음식이 북한에서 시작되었다고 하더라도 얼마든지 다른 지역으로 퍼져서 발전하고 변형될 수 있는 것이고, 그것 자체가 하나의 음식 문화로 정착하고 명물이 될 수도 있다. 믈론 '함흥에서 먹는 음식도 아닌데 왜 함흥냉면이라고 부르냐'라는 항변도 있을 수 있지만 어쨌거나 함흥냉면의 원류가 그쪽에서 내려온 실향민들이었고 이들이 남한에 정착하면서 수십 년에 걸쳐 이곳의 식자재나 기후, 입맛에 맞게 나름대로의 냉면 문화를 발전시켜 온 것이다. 이런 걸 가지고 가짜 운운하는 것은 지나치다. 한국의 떡갈비는 원래 궁중의 너비아니가 바깥으로 나가서 나름대로 발전한 것이다. 누가 떡갈비를 가지고 가짜 운운 하나? 있는 그대로 즐기면 그만이다.

우리나라는 물론 외국에도 음식에 붙은 지명이 실제 그 지역 음식이 아닌 경우는 흔하다. 일본 나고야에 가면 타이완라멘이라는 게 있다. 대만에 가면 그런음식은 없다. 그래도 나고야의 명물로 이름을 올리고 있다. 부산어묵은 얘기도 하지 말자. 그래도 안성탕면은 안성에서 만들지 않나? 다른 공장에서도 만드나? '가짜'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직접 돌아와서 체포될 각오 하고. 평양에 가서 먹는 것 빼고는 다 가짜일 수밖에 없다. 사실 평양냉면조차도 진짜 평양에 가서 먹는 평양냉면과는 결국 육수나 면이 차이가 있으니. 사실 재료는 북한보다 우리가 더 고급일 수도 있어.

사실 실향민들이 남한에 와서 본격 발전시켰기 때문에 남한 사람들의 입맛에 맞게 육수에 달달한 맛을 넣고 쫄깃한 면발을 강조한 함흥냉면과는 달리, 육수가 심심하고 면도 투박한 느낌의 평양냉면은 초심자들이 바로 맛들이기에 쉽지 않다. 한두번 먹어 보고 질색을 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그 문턱을 뛰어넘어서 평양냉면의 맛을 발견하는 사람들은 우월감을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사실 입맛에 안 앚는데 '이건 맛있는 거야, 미식가는 이런 걸 먹을 줄 알아야 해' 하고 자기최면을 걸면서 '넌 이런 거 모르지?' 하고 우월감을 느끼는 사람들도 있게 마련. 특히 평뽕들이 면스플레인이 심한 이유를 이 때문으로 볼 수 있다.

냉면을 왜 가위로 잘라? 이빨로 끊어 먹어야지

냉면을 주문하면 가위가 딸려나오거나 종업원이 가위로 잘라주는 게 당연한 문화에서 가위로 끊어 먹으면 냉면의 진정한 맛을 즐길 수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면을 죽죽 늘여가면서 이빨로 끊어먹는 게 함흥냉면의 진짜 식감을 느끼게 해 주는 것이라는 주장인데, 꼭 틀린 이야기는 아니다. 이빨로 끊어 먹는 게 함흥냉면의 질긴 식감을 좀 더 즐기기에는 좋을 수 있다. 또 한 가지는 원래 국수가 가졌던 의미가 '장수'라는 점이다. 즉 긴 국수 면발은 장수를 뜻하는데 이걸 자른다는 것은 명을 끊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그런데 이런 면에서 보면 가위든 이빨이든 국수를 끊어먹는 것 자체가 명을 끊는 행위가 된다. 즉, 끊지 말고 조금씩 면발을 모두 흡입하는 게 국수가 가진 '장수'의 뜻을 살리는 셈이 된다.[2] 북한에서도 그런 이유로 냉면을 가위로 자르지 않는다. 면발이 질기지 않아서 그럴 필요도 없고.

하지만 사람이 음식을 즐기는 이유는 한 가지가 아니다. 어떤 사람들은 냉면의 차고 시원한 육수를 좋아할 수도 있고, 가위로 자르더라도 입 안에서 쫄깃쫄깃하게 씹하는 맛이 좋아서 냉면을 먹을 수도 있다. 물론 면발=장수라는 인식이 강했던 옛날에야 가위로 잘라 먹었을리는 없지만 그거야 미신이고, 이빨로 끊어 먹는 것도, 가위로 잘라 먹는 것도, 나름대로 냉면을 즐기는 한 가지 방법인 거지 꼭 정답은 아니다. 이빨로 끊어먹느라 아동바동하고, 그러다가 주위로 국물 튀고 하는 게 매너로는 더 안 좋을 수 있다. 굳이 질기지 않은 쟁반짜장면 같은 것도 가위로 잘라먹는 사람들이 있는데, 긴 면발을 먹다 보면 국물이 옷으로 튀는 불상사를 줄일 수 있다. 파스타도 먹고 싶으면 젓가락으로 먹을 수도 있다. 서양에서 격식 차려가면서 먹는 자리 아니라면 우리나라에서 파스타를 젓가락으로 먹은들 뭐 좀 어떤가.[3]

다만 평양냉면메밀이 주성분이라서 굳이 가위로 잘라먹지 않아도 면이 잘 끊어진다. 물론 그래도 가위로 잘라 먹을지 여부는 각자 자유다. 그닥 질기지 않은 짜장면도 가위로 잘라먹는 사람들이 있는 시대이니 그냥 그러려니 하면 그만이다. 자기 명줄을 자기가 자르겠다는데 어쩌겠나.

비빔냉면을 왜 먹어? 그건 냉면이 아니라고

원래 평양냉면물냉면이 기본이기 때문에 비빔냉면은 가짜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함흥냉면은 원래 비빔국수에서 시작된 것이다. 오히려 함흥식 물냉면은 남한 사람들의 입맛에 맞게 만들어진, 진짜 함흥식과는 거리가 먼 냉면이다. 굳이 따지자면 '냉면'이라는 것은 평양식 물냉면에 따로 붙어 있던 이름이고, 다른 종류의 냉면들은 보통 회국수, 농마국수와 같이 '국수'라고 부르던 것들이 냉면이라는 이름을 달게 된 것이다. 하지만 모든 문화가 그렇듯이 음식 문화도 시간이 지나면서 발전하고, 변형되고, 이름이 바뀌기도 하는 것이다. 옛날에는 평양식 물냉면만 냉면이라고 불렀다고 해서 다른 것을 가짜 취급하는 것은 그야말로 꼴통스러운 태도다. 비빔냉면도 엄연히 수십 년 동안 발전 과정을 거쳐 오면서 우리의 음식 문화로 정착되었고, 무엇보다도 맛있는 비빔냉면은 맛있다! 최근에는 육수를 자작하게 넣은 물비빔냉면이라는 것까지 등장하고 있는 것처럼, 냉면도 시대에 따라 변하고 새로운 스타일도 나타나고 하는 것이다. 너무 원본 그대로만 고집할 건 아니다.

한편으로는 평양냉면은 물냉면만 진짜고 함흥냉면은 비빔냉면만 진짜라는 식의 면스플레인도 있다. 하지만 함흥냉면의 원조격인 농마국수는 원래 육수를 부어먹는 물냉면 스타일이었다. 남한에 와서 육수를 부어먹는 농마국수는 별 인기를 못 얻고 비빔냉면만 인기를 얻다가 동치미육수를 섞고 단맛을 가미한 스타일의 물냉면이 남한 사람들의 입맛을 사로잡아 인기를 끌면서 아예 함흥식 물냉면으로 굳어졌다. 오장동 흥남집 같은 곳에 가면 그냥 육수만 부어 먹는 심심한 스타일의 육수냉면을 먹어볼 수 있다. 이것도 진짜 함흥식 농마국수와는 또 다르지만... 지금으로서는 목숨 걸고 함흥 가서 먹어보는 수밖에는 없다. 북한에서는 지역에 관계 없이 국물이 없거나 자작한 정도로 비벼 먹는 국수는 냉면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사실 우리나라에서 비빔국수는 어딜 가든 차게 먹는 게 기본이긴 하니 따로 냉면이랄 것도 없긴 하다.

냉면식초를 왜 넣어? 맛을 망친다고

냉면식초겨자를 넣어 먹는 사람들이 많은데, 이게 냉면 고유의 맛을 망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즉 만들어 나온 그대로 먹어야 한다는 얘기. 하지만 냉면 장인들도 식초겨자를 넣는 것에 반대하지 않는다. 물론 무조건 기계적으로 넣는 것은 좋지 않지만 육수의 맛을 본 다음에 필요하다면 입맛에 맞게 식초겨자를 적당히 넣으라는 뜻이다. 또한 함흥냉면으로 유명한 서울 오장동의 흥남집은 아예 입맛에 맞게 설탕식초, 겨자를 치는 것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 고기를 소스에 찍어 먹거나, 추어탕에 입맛에 맞게 산초가루를 넣거나 하는 것처럼 생각하면 될 일이다. 물론 이 집이 맛있나 아닌가, 혹은 내 입맛에 맞나 안 맞나를 확인해 보려면 처음에 아무 것도 넣지 않고 맛을 볼 필요는 있다. 북한 평양의 옥류관과 같은 전문점에서는 평양냉면을 먹을 때 국물에 식초를 넣지 않고 면을 젓가락으로 떠서 면에 식초를 끼얹어 먹는 모습도 볼 수 있다. 김일성도 이렇게 먹는 걸 좋아했다고 한다. 국물에 식초가 많이 들어가지 않으면서도 새콤하게 면을 먹을 수 있다. 물론 양 조절을 잘 해야 한다.

전분 들어간 게 냉면이니?

옛날에는 함흥냉면이든 평양냉면이든 냉면은 당연히 메밀로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사실 함흥냉면메밀이 들어가지 않고 '함흥전분'이라는 이름으로 팔리는 고구마 전분을 사용한다[4]. 반면 평양냉면메밀을 주로 하고 전분이나 밀가루를 약간 섞어서 끈기를 준다. 그런데 이걸 가지고 시비 거는 사람들도 있다. 함흥냉면메밀도 안 들어가는 가짜라느니[5], 평양냉면전분 섞는 건 가짜고 100% 메밀로 만들어야 진짜라느니...

하지만 착각이다. 정통 평양냉면 레시피도 100% 메밀이 아니고 8:2 정도로 전분이 약간 들어가는 게 면의 식감이 가장 좋다. 메밀 100%면 찰기가 너무 떨어져서 면이 툭툭 끊긴다. 특히 차가우면 더더욱 퍽퍽해서 식감이 썩 좋지 않다. 사실 전분 들어간 면은 가짜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상당수도 이 퍽퍽한 식감을 억지로 먹으면서 잘난척 하는 것에 가깝다. 이러한 주장은 일본 소바에서도 나타나는데, 메밀 100%를 사용한 소바[6]가 진짜라고 고집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일본의 유명 소바 가게들 중도 100% 메밀, 그리고 메밀밀가루가 8:2로 배합된 면[7]을 선택할 수 있는 곳들이 많고, 이들 음식점 측에서는 대체로 100% 메밀보다는 약간의 찰기가 있는 8:2 배합이 최적이라고 이야기한다. 오히려 진짜 맛있는 면 요리를 즐기기보다는 100% 메밀이라는 그 타이틀에 집착하는 쪽이 미식가로는 더 하수라고 봐야 한다. 물론 100% 메밀이 정말로 더 맛있는 사람들은 예외지만.

그밖에

면스플레인이 주로 평양냉면에 집중되어 있지만 다른 국수 요리도 면스플레인들이 있다. 종종 타겟이 되는 건 메밀국수. 위에서도 냉면에 전분을 넣네 마네 시비 거는 문제를 언급했지만, 소바 쪽도 메밀이 100%여야 진짜고 밀가루가 들어간 것은 가짜라고 부르짖는 인간들이 있다. 메밀국수가 가장 흥한 일본에서도 메밀밀가루가 8:2인 하치와리가 맛과 식감이 가장 잘 조화된 비율로 보는 게 대다수 전문 음식점 요리사들의 견해다. 메밀 100%면 너무 찰기가 없어서 특히 차가워지면 면이 툭툭 끊어지고 식감이 거칠다.

또한 일본국수 문화 중 하나인, 후루룩거리면서 먹는 것도 면스플레인으로 떠오르고 있다. 일본을 제외하고 국수 문화가 발달한 중국이나 동남아시아에서도 후루룩거리면서 먹는 것은 실례되는 행동이고 우리나라도 먹을 때 시끄럽게 후루룩 짭짭거리는 것은 무례한 짓이었는데, 우리나라에 라멘, 우동, 소바와 같은 일본 국수들이 들어오고 인기를 끈 데다가 일본 여행을 가서 일본의 식문화를 보고 오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라멘이나 우동, 소바 같은 국수는 후루룩거리면서 먹어야 제맛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심지어 다른 사람들에게 설교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 문제는 일본에서도 '누들 하라스먼트' 또는 '누하라'라는 이름으로 논란이 있다. 자세한 것은 누들 하라스먼트 항목 참조.

각주

  1. 여자 앞에서 잘난척 하면서 설교하기 좋아하는 남자들의 행태를 비꼰 말이다.
  2. 특히 일본 우동은 한 가락씩 집어들고 쭉 흡입하듯, 씹지 않고 목으로 넘기는 게 정석이다.
  3. 서양에서 파스타를 포크로 돌돌 말아서 먹는 이유는 간단하다. 그 동네 식문화에는 젓가락이 없기 때문이다. 젓가락 문화가 있는 나라에서 국수를 포크로 돌돌 말아 먹지는 않는다.
  4. 북한에서는 감자 전분을 흔히 썼지만 남한은 고구마가 더 흔했기 때문에 고구마 전분으로 바뀌었다.
  5. 원래 함흥 지역에서는 냉면이 아니라 농마국수라고 불렀고, '농마'가 녹말을 뜻한다.
  6. 쥬와리(じゅうわり, 十割) 소바라고 한다.
  7. 하치와리(はちわり, 八割) 소바라고 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