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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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만으로 보면 불에 구운 고기라는 뜻이지만 얇게 썬 고기를 양념에 재운 다음[1], 불에 구워서 먹는 음식. 한국음식을 대표하는 요리 중 하나다. 외국인들에게 한국음식을 물어보면 김치와 함께 꼽는 게 불고기.

사실 한국음식에서 양념에 재워 굽는 고기는 꽤 많이 있다. 갈비도 양념에 재운 다음 불에 굽지만 이쪽은 양념갈비라고 하지 불고기라고는 안 한다. 고깃집에 가면 갈빗살이나 안창살을 비롯한 여러 가지 고기들을 두툼하게 썰고 간장 양념을 해서 불에 구워먹기도 하지만 이렇게 두툼한 녀석 역시 불고기라고는 잘 안 한다.

소고기는 기본적으로 간장을 베이스로 단맛을 넣은 양념에 재운다. 단맛은 설탕으로 내기도 하고, 배즙이나 양파[2]을 사용해서 내기도 한다. 아무 수식어 없이 그냥 '불고기'라고만 하면 이 소고기 불고기를 뜻한다.

돼지고기는 두 가지 스타일이 있는데, 고추장을 베이스로 한 양념에 재운 것이 있고 간장 베이스 양념에 재운 것도 있다. 고추장불고기와 제육볶음이 아주 비슷하다. 고깃집에서는 불에 구워서 먹지만 가정에서는 프라이팬에 굽거나 볶는 식으로 조리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인데, 사실 볶아서 만든다면 제육볶음하고 차이는 없다. 반면 간장 베이스 불고기는 숯불이나 연탄불에 구워 먹는 게 정석으로, 특히 돼지불백[3]을 주력으로 하는 기사식당 중에 유명한 곳들이 많다. 어느 스타일이든 소고기보다는 조금 두께가 있는 편이다. 더 자세한 내용은 돼지불고기 항목이 따로 있으니 이곳을 참조.

분식집이나 이것저것 하는 백반집에서 종종 '뚝배기불고기'라는 것을 볼 수 있는데, 뚝배기에 고기와 함께 양념국물을 좀 많이 붓고 양파, 같은 채소와 당면을 넣어 한소금 끓이는 식으로 만든다. 불고기 양념을 기반으로 하지만 자작한 탕에 가까워서 불고기라고 하기는 약간 애매한 음식.

그밖에 특이하게 해산물오징어를 주 재료로 하는 오징어불고기도 있는데, 이건 사실은 오징어볶음에 가깝다. 보통 통통한 몸통살에 가로세로로 칼집을 넣어서 만든 것을 오징어불고기라고 하는 경향이 있다. 오징어삼겹살을 같이 매운양념에 볶아 만드는 오삼불고기도 있다.

불고기덮밥 기내식.

덮밥의 좋은 재료이기도 하다. 불고기덮밥은 기내식으로도 인기가 많다. 일본에는 소고기 조림을 얹은 덮밥규동이 아주 인기가 많은데, 불고기덮밥과 꽤 통하는 점이 많다.

외국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한국음식으로 종종 손꼽힌다. 영어로는 Bulgogi, 또는 한국식 고기구이를 통틀어 이르는 Korean BBQ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한식이 본격 인기를 얻기 이전에도 불고기는 알고 좋아하는 외국인들이 꽤 있었다. 한국음식 하면 우리는 김치를 가장 먼저 떠올리지만 외국인들에게 김치는 매운데다가 특유의 발효향이 꽤나 호불호가 있는 음식임에 비해 불고기는 고추장 돼지불고기가 아니라면 맵지도 않고 낯선 향도 적은 편이라 채식주의자가 아닌 다음에야 호불호가 적은 편이다. 외국인한테 한국음식을 뭐 대접하면 좋을지 모를 때 고기를 먹는지 물어보고[4] 불고기를 대접하면 별로 실패하지 않는다. 한식 세계화를 한답시고 이명박정부가 떡볶이를 밀었을 때 불고기를 비롯해서 외국인들이 좋아할 요리도 많은데 왜 하필 저걸... 하고 아연실색한 사람들이 많았다.

유래

불고기의 유래는 멀리 거슬러 올라가면 고구려의 '맥적'으로까지 닿을 수 있다. 장과 마늘을 이용해서 양념한 고기구이인 맥적은 기본 개념이 확실히 불고기와 맞닿는다. 불교가 융성해서 육식을 금했던 고려시대 정도를 제외하고는 우리나라는 고기 요리가 꽤 발달했으며, 따라서 불고기와 같은 양념구이 역시 계속 내려왔을 것으로 보고 있다. 오늘날 언양불고기와 떡갈비의 조상뻘이라 할 수 있는 궁중음식인 너비아니 역시 불고기와 여러 가지 차이가 있긴 해도 간장을 주 재료로 한 양념 고기구이라는 공통점은 가지고 있다.

1849년에 편찬한, 우리나라의 세시풍속을 기록한 책인 <동국세시기>에는 음력 10월에 한양의 풍속으로 '난로회'가 있었다고 한다. "숯불을 지핀 화로를 가운데 놓고 번철을 올려 소고기에 기름, 간장, 파, 마늘, 고춧가루로 조미하여 굽거나 볶아서 둘러앉아 먹었다."[5]고 기록하고 있는데, 고춧가루를 빼고 설탕을 넣으면 지금의 불고기와 거의 같은 양념이다. 이 때 사용한 번철은 벙거지를 거꾸로 한 모양, 즉 가운데가 움푹 패인 것으로 서울식 불고기에서 쓰는 불판과 반대 모양이라 할 수 있다. 가장자리의 평평한 판에는 고기를 굽거나 볶고, 가운데 움푹 들어간 곳에는 장국을 부어 끓였다. 고기를 구운 다음 장국에 담가 먹었는지는 확실치 않은데, 그래도 전골 형태의 요리였던 것만큼은 분명하며, 이것이 서울식 불고기의 원형이라고 볼 수 있다.

한국의 대표적인 음식 중에 하나인 '불고기'라는 말이 문헌에 처음으로 나온 것은 일제강점기인 1920년대였다. <운수 좋은 날>로 유명한 소설가 현진건의 <타락자>라는 소설 가운데,

궐의 얼굴은 마치 이글이글 타는 숯불 위에 놓여 있는 불고기 덩이 같았다. 모르면 모르되 나의 얼굴빛도 그러하였으리라.

현진건, 타락자", <개벽> 19-22, 1922[6]


1932년 3월 20일자 <동아일보> 4면에 실린 "기호,습관을 떠나 보건식픔을 취하라 (二)" 기사를 보면 여러 가지 식품의 열량을 나열하는 대목이 있는데, 이 가운데 '불고기한점 一五(15)'라는 구절이 있다. 심지어 1935년 5월 5일 석간 5면에는 "牡丹臺名物(모단대명물) "불고기"禁止(금지)"라는 기사가 실렸는데, 모단대(모란대) 송림의 명물인 불고기 굽는 연기 때문에 소나무가 시들시들 마르고 고기 굽는 냄새가 주변 사람들에게 불쾌감을 줘서 민원이 잇따르자 야외영업을 금지시키기로 결정했다는 내용이다. 평양에서는 무척이나 인기였던 모양이다. 그밖에도 불고기에 관련된 기사는 1930년대부터 꾸준하게 나온다. 다만 이 당시의 불고기는 지금 우리가 먹는 불고기보다는 좀더 넓은 개념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1938년에 나온 박향림의 노래 <오빠는 풍각쟁이> 가사 중에 '불고기 떡볶이[7]는 혼자만 먹고 / 오이지 콩나물만 나한테 주구'라는 구절이 있다. 즉 일제강점기 때에 이미 '불고기'란 말이 널리 쓰였다는 것을 알 수 있는 확실한 증거다. 널리 쓰이지도 않는 말을 당시의 대중가요 가사에 넣었을 리는 없기 때문이다.

다만 평양에서는 불고기라는 말이 널리 쓰였지만 서울을 비롯한 이남지역에서는 평양만큼은 아니었던 듯하다. 해방 직후인 1947년에 김기림이 쓴 글을 보면,

화석이 숨을 쉴 수가 없으며 종이꽃에서 향기가 날 리 없듯, 옛날 말 학자의 먼지 낀 창고에서 파낸 죽은 말이나 순수주의자의 소꿉질 대장간에서 만든 새말이 갈 곳은 대체로 뻔하다. 이윽고는 대중의 냉소와 조롱 속에 잊어버려지고 마는 것이 고작이다. 물론 간혹 그중에는 대중의 필요와 입맛에 맞는 것이 있어서 국어 속에 채용될 적도 있으나 그것은 실로 어쩌다 있는 일이다. '초밥'('스시')과 같이 비교적 잘 되어 보이는 순수주의자의 새말조차가 얼른 남을 성싶지도 않다. 거기에 대하여 '불고기'라는 말이 한번 평양에서 올라오자 얼마나 삽시간에 널리 퍼지고 말았는가.

김기림, "새말의 이모저모", <학풍> 2권 5호, 1947


국어학자 이기문 역시 1947년까지는 서울에 불고기집이 거의 없었다고 한다.

1947년 봄이었는데 그때에는 서울 장안에 ‘불고기’ 음식점이 없었다. 남대문 시장 같은 데서 평안도 피난민들이 하는 허술한 음식점에서나 볼 수 있었을 뿐이다. 그러던 것이 한두 해 사이에 이것이 온 장안에 널리 퍼지게 되었다.

이기문, "'불고기' 이야기", <새국어생활> 제16권 제4호(2006년 겨울).


사전에 올라온 것은 1950년에 편찬한 한글학회의 <큰사전> 제3권이 최초다. 지금으로서는 1930년대 이전에는 '불고기'란 말이 있었는지는 증거가 없다. 그러다 보니 나중에 나오겠지만 불고기가 일본의 야키니쿠를 번안한 말이라는 주장이 나오기도 한다.

불고기란 이름이 늦게서야 문헌 기록에 나타난 이유로 크게 두 가지 설이 있는데 하나는 불고기가 궁즘음식인 너비아니에서 유래한 것인데, 불고기는 민간에서 쓰이던 속어라 좀 상스럽게 여겨서 문헌에는 잘 안 썼다는 설이다. 두 번째는 불고기는 원래 평안도에서 널리 쓰던 말인데 분단과 함께 피란민들이 남한으로 내려오면서 서울을 중심으로 퍼졌다는 설이다. 앞서 언급한 김기림의 글이나 평안도 출신 국어학자인 이숭녕, 이기문의 증언을 그 근거로 볼 수 있다. 그런데 1930년대에 이미 신문에 '불고기'란 말이 자주 등장하고 대중가요 가사에까지 '불고기'가 나타난 것으로 봐서는 한국전쟁 전까지는 평안도 쪽에서만 썼다고 보기에는 애매한 측면도 있다.

종류

아래의 분류는 주로 지역 기반이며 모두 소고기 불고기다.

서울식 불고기

흔히 불고기라고 하면 서울식 불고기를 뜻한다. 서울식 불고기는 상당히 국물이 많은 편이라서 전골이 아닐까 싶을 정도이고, 이 특성을 이용해서 분식집이나 백반집에서는 뚝배기에 불고기를 끓이다시피 조리해서 국물이 자작한 탕에 가까운 뚝배기 불고기를 팔기도 한다. 가장자리는 움푹하고 가운데가 솟아오른 불판을 사용해서 가장자리에 양념 육수와 고기, 채소, 버섯, 당면 같은 재료들을 돌려 깔아준 다음 불판 위로 고기채소를 올려서 굽는 방식을 많이 사용한다. 양념 육수고기채소를 적시면서 익혀간다. 이러다 보니 황교익은 아래에서 다루는 내용처럼 서울식 불고기가 스키야키의 영향을 받은 게 아니냐는 설을 제기하기도 했다. 즉 한국의 고기구이가 일본으로 건너간 다음, 나베요리로 발전한 스키야키가 다시 한국의 불고기에 영향을 준 것이라는 주장이다. 그러나 국어학자 이기문의 증언에 따르면 해방 전까지는 서울에는 불고깃집이 없었고, 분단 후 북에서 피란민들이 대거 내려온 이후에 나타나기 시작했다고 한다.[8] 원래는 평안도에서 해먹던 음식이었다는 얘기다. 물론 평안도에도 평양이라는 대도시가 있었고 상업적으로도 잘 나가던 곳이었으니 여기라고 일제의 영향이 없었겠냐고 반박할 수는 있을 것이다.

언양불고기

Eonyang bulgogi.jpg

말 그대로 울산광역시 언양에서 발달한 불고기로, 이쪽에 가면 아예 언양불고기 마을이 있고 많은 불고기집들이 모여 있다. 부산에도 광안리를 중심으로 언양불고기 전문점이 성업 중이고, 그밖에 서울 수도권에도 언양불고기를 내세운 음식점들이 있다. 서울식 불고기는 국물이 자작한 상태에서 먹지만 언양불고기는 석쇠에 굽는 방식이기 때문에 국물이 별로 없는 양념구이 같은 느낌이다. 이쪽 방식이 너비아니에 가깝다. 또한 서울식보다는 단맛이 적어서 그 반작용으로 간장맛이 좀 더 강하게 부각되지만 간 자체가 그리 세지 않기 때문에 좀 더 고기 본연의 맛을 느낄 수 있다. 즉 재료가 나쁘면 티가 난다. 정통 방식 언양불고기는 미리 주방에서 구운 상태로 석쇠째 나와서 테이블에서는 끝마무리, 혹은 온도 유지 정도로만 굽거나 아예 테이블에 불이 없을 수도 있는데, 외지에 있는 언양불고기집은 국물이 거의 없는 것 말고는 테이블에서 굽도록 하는 곳도 있다. 이런 경우는 부드러움을 잃지 않도록 조금씩 올려서 살짝만 구워서 먹어야 한다. 보통 고기구이 하듯이 듬뿍 올려놓았다가는 금방 타버린다.

광양불고기

전라남도 광양시 일대에서 발달한 형태의 불고기. 언양불고기처럼 석쇠에 구워먹는다. 서울식과는 달리 석쇠에 굽는다는 공통점 때문에, 그리고 이름이 처음 한 글자만 다르기 때문에[9] 종종 언양불고기와 비교되곤 한다. 언양불고기는 결대로 고기를 다듬어서 조금 두툼하지만 광양식은 종잇장처럼 얇게 저민 고기를 쓴다는 점이 가장 큰 차이며, 언양불고기는 미리 주방에서 구워서 나오지만 광양불고기는 테이블에서 구리 석쇠 위에 올려놓고 숯불에 빠르게 구워서 먹는다. 또한 언양불고기는 양념에 하루 이틀 재운 것을 쓰지만 광양불고기는 굽기 바로 전에 양념에 재우기 때문에 숙성시키지 않는다. 언양처럼 광양에도 불고기 특화거리가 조성되어 있다. 광양불고기 전문점은 수도권에도 꽤 진출해 있지만 언양불고기는 부울경 바깥에서 보기는 쉽지 않다.

바싹불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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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념한 고기를 석쇠에 얇게 펼쳐서 센불에서 빠르게 뒤집어 가면서 구워내어 말 그대로 국물이 거의 없도록 한 불고기. 석쇠로 구워서 국물이 거의 없다는 점에서는 언양불고기와 비슷하지만 석쇠째로 내서 테이블의 불에 올려놓고 마무리하는 언양불고기와는 달리 바싹불고기는 주방에서 강한 연탄불로 다 구워서 접시에 담아 나온다. 또한 언양불고기보다 고기가 얇기 때문에 다 바싹 구워져서 겉보기에도 수분과 기름기가 더 없이 있다는 느낌을 준다. 하지만 제대로 하는 집이라면 겉은 불맛이 파삭하게 날 정도지만 씹으면 안은 촉촉하게 육즙이 있다는 느낌도 받을 수 있다. <역전회관>을 원조급으로 친다. 원래는 이름처럼 용산역 앞에 있었는데 용산역 재개발과 함께 마포로 자리를 옮겼다. 지하철 5호선 마포역전 회관[10] 여기에 영향을 받은 바싹불고기를 파는 가게들도 여럿 있지만 대체로 <역전회관>의 독특한 느낌에는 미치지 못한다. 편의점 도시락이나 김밥에도 등장할 정도지만 물론 <역전회관>의 그것과는 전혀 다르고 그닥 '바싹'하지도 않다. 요즈음은 언양불고기도 '언양식 바싹불고기'라고 부를 정도로 바싹불고기라는 이름의 인지도가 높다. 일단 이름만 들어도 그 정체를 딱 알 수 있으니.

일본 유래설?

맛 칼럼니스트 황교익이 '불고기'라는 이름이 일본에서 온 것이라는 주장을 펼쳐서 한바탕 논란이 일었다. 더 나아가 지금의 이른바 서울식 불고기는 일본식 스키야키의 영향을 받았다는 주장까지 했다. 황교익의 주장은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 불고기라는 말이 등장한 건 그리 오래되지 않았으며 일제강점기 이전에는 불고기라는 말이 나온 기록을 찾을 수 없다.
  • 우리나라에서는 음식 이름을 통상 재료 + 조리법으로 붙인다. 떡볶이, 갈비탕, 김치찌개와 같은 방식이다. 반면 불고기는 정 반대 조합법인데, 이건 일본식 조어법이다. 즉 야키니쿠(구운+고기)가 우리나라로 건너와서 불고기가 되었다.
  • 예전에는 고기를 얇게 져며서 자작한 국물과 함께 익혀 먹는 방식이 없었다. 양념 고기구이라면 대표적인 방식은 너비아니인데, 서울식 불고기와는 영 딴판이고 언양불고기가 오히려 이쪽에 가깝다. 국물이 자작한 방식의 불고기는 한국식 양념 고기구이일본으로 건너가서 스키야키에 영향을 주고, 이 스키야키가 다시 한국에 영향을 미쳐서 나온 것이다.

한국의 대표 전통음식이라고 여겼던 불고기에 대한 이러한 직격탄 때문에 큰 논란이 있었고, 황교익을 비난하는 여론도 크게 일었다. 물론 황교익은 이러한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사실 논리적으로 보면 타당한 부분들이 일부 있다. 우리가 쓰는 말 중에는 겉으로만 한국어이고 조어법은 일본식인 게 은근히 꽤 많다. 대표적인 게 '먹거리'인데, 우리 조어법으로는 목적격 어미를 불인 '먹을거리'가 맞지 '먹거리'는 맞지 않는다.[11] 오히려 이는 일본식 조어법에 가깝다. '먹거리'에 해당하는 일본어인 타베모노(食べ物)는 '먹다'를 뜻하는 타베루(食べる)에서 어근만 남기고 '-거리'에 해당하는 모노(物)를 불여 만든 것이라 조어법으로 보면 '먹거리'가 '타베모노'에 가깝다. 사실 먹거리라는 말이 시민단체에서 식품 대신 우리말을 쓰자고 만들어낸 말인데, 그들도 이게 일본식 조어법인 걸 알면서 쓰지는 않았을 것이다. 모르는 새에 젖어든 것이다.

1922년에 현진건의 <타락자>에서 처음 문자로 등장하고, 1930년대부터는 신문에 이름이 등장한 '불고기'란 이름도 우리나라에서 만들어졌을 수 있지만 조어법으로 보면 일본식이라고 주장할 수도 있다. 물론 '고기불'이라고 이름을 붙이지는 않았겠지만 양념고기구이나 고기양념구이 같은 말을 쓸 수도 있었을 것이다. 짧아서 간편하다는 생각 때문에, 그리고 모르는 새 스며든 익숙한 일본식 단어 때문에 이런 말이 탄생했을 가능성은 있다. 일제강점기 이전에는 기록에 불고기라는 이름이 안 나오기 때문에 (요리가 아닌 이름이) 야키니쿠의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이 있기는 하다. 그러나 한식 중 세계에서 가장 인기 높은 음식 중 하나인 비빔밥은 비빔+밥으로 주재료가 뒤에 나오며 볶음밥이나 볶음국수 같은 예외도 있으므로[12] 단순히 '불고기'라는 이름만 가지고 일본식 조어법이라고 몰아붙이기에는 근거가 부족하다.

또한 '불'은 조리 방식이 아닌 재료 또는 도구로 보아야 하므로 황교익의 주장이 틀렸다는 국어학자들의 반박도 있다.[13]만두전골, 간장게장과 비슷한 맥락으로 봐야 한다는 것. 칼국수도 이와 비슷한 조어법으로 볼 수 있다. 이에 대해 황교익은 "일제강점기 중에 불+재료로 된 음식 이름이 하나라도 있으면 가져와 보라. 왜 오로지 불고기 뿐인가하고 반박했다."[14][15] 물론 이것도 논리적 비약이다. 굳이 들고 나오자면 언제부터 쓰였는지는 모르지만 '물회'의 '물'도 재료에 해당한다. 물회와 불고기는 전혀 연관관계가 없기 때문에 불고기에서 물회란 이름이 나왔다고 주장한다면 완전히 억지일 것이다. 물회에 상응하는 잘 알려진 일본음식도 딱히 없기 때문에 더더욱.

또 한가지 불고기라는 이름이 애매한 것은, 물고기와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물고기는 발음을 '물꼬기'라고 하는데 불고기는 '불꼬기'라고 안 하고 '불고기'라고 한다. 이 차이를 들어서 '불고기'가 역사가 짧고 식자층에서 만들어낸, 더 나아가서 야키니쿠를 번안한 조어라고 주장하는데, 국어학자들은 이 말이 평안도 방언에서 온 것이기 때문에 발음 차이가 일어난 것으로 보고 있하다. 평안도에서는 받침에 오는 'ㄹ'을 '르'로 발음하는 경향이 있어서 '물고기'도 평안도에서는 '무르고기'에 가깝게 발음한다고 한다. 따라서 평안도에서 먹던 고기구이가 서울로 내려오면서 '불고기'라는 이름, 그리고 된소리 없는 '불고기'라는 발음까지 이전된 것으로 보고 있다. 물론 '물고기'는 이전부터 쓰여오던 말이므로 평안도의 영향을 받을 일이 없다. 평안도 출신인 국어학자 이기문이 저서에서 자신이 어렸을 때 불고기라는 말을 자주 들었다는 이야기를 밝한 바 있으며, 이후 국어학자인 이숭녕[16]의 증언과 앞에서 언급한 김기림의 기록을 근거로 평안도 유래설을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다.[8][17] 그런데 1922년에 현진건의 <타락자>에 이미 '불고기'가 등장했고, 현진건은 대구에서 태어났고 고등학생 때 서울의 보성고등보통학교를 나온 후, 일본과 중국 유학생활을 거치고 쭉 서울에서 살았기 때문에 과연 평안도에서만 썼던 말인가에 대한 의문이 남는다. 이에 대해서는 현진건은 소설가였으므로 다양한 방언에도 관심이 많았을 수도 있고, 평양에 가 보았거나[18] 평양에서 서울로 온 사람들을 통해 불고기라는 단어를 알았을 수도 있다고 반박할 수 있을 것이다. 소설에는 사람들이 흔히 쓰지 않는 단어를 쓸 수도 있고, 직접 단어를 만들어서 쓸 수도 있긴 하다.

한편 황교익은 불고기가 야키니쿠를 번안한 말이라는 근거로 1965년 12월 20일자 <경향신문>에 실린 국어학자 김윤경의 인터뷰를 내세우고 있다.

처음에는 생소하고 듣기 어색했지만 '벤또' 대신에 '도시락'이, '돔부리' 대신에 '덮밥'이, '야키니쿠' 대신에 '불고기'라는 말이 성공한 것은 얼마나 좋은 예냐.

김윤경, "민족의 자주성 어떻게 살릴까... 국어학자 김윤경 씨에게 듣는다", <경향신문>, 1965년 12월 20일.


그러니까 일제강점기 때 학자들이 혹은 대중들이 일본어를 대신할 말을 찾았고, 그래서 '야키니쿠'를 번안한 '불고기'라는 말이 쓰인 거라는 게 황교익의 논리인데, 내용만 봐도 알겠지만 논리적 비약이다. 그렇다면 도시락[19]덮밥[20]도 모두 일본어 번안이라는 건가? 일제강점기 때 일본어가 우리나라에 퍼졌지만 한편으로 대중들은 나름대로 우리말을 쓰면서 결국은 우리말이 일본어를 밀어냈다는 정도의 의미이지, 저 말을 가지고 "그러니까 '불고기'는 야키니쿠를 번안한 거야."라고 주장한다면 논리적 비약이 심하다. '처음에는 생소하고 듣기 어색했지만'이라는 말도, 김기림의 글과 결부지어서 평양에서 내려온 말이라서 서울 사람들에게는 생소하고[21], 발음도 평안도 사투리의 영향으로 '불꼬기'가 아닌 '불고기'였다고 생각해 보면 수긍이 가는 대목이다. 또한 마찬가지로 종성에 ㄹ이 오고 뒤이어 초성에 ㄱ이 오는 불가마를 '불까마'라고 발음하지 않으며 말고기도 '말꼬기'라고 발음하지 않는다는 점을 생각하면 불고기를 꼭 '불꼬기'라고 해야 할 법칙이 있는 것도 아니다.

이 논란이 벌어지고 언론들의 자극적인 기사 제목까지 어울려서 마치 황교익이 불고기 자체를 일본음식이라고 주장했다는 왜곡된 인식도 퍼졌는데, 위의 주장을 보면 황교익은 불고기가 일본 유래라고 한 적이 없다. '불고기'라는 이름이 일본식 조어법으로 나온 것이고 여러 가지 양념 고기구이, 즉 불고기 중에 서울식 불고기가 스키야키의 영향을 받았다는 것이다. 우리의 고유문화가 이웃나라와 교류하는 과정에서 영향을 받는 일은 얼마든지 있고 자연스러운 일이다. 위에서 보았듯이 불고기의 종류도 다양하고 최근에 개발된 종류도 있다. 불고기에도 콜라키위를 넣거나 하는 식으로 우리나라에서 나지 않는 수입 재료를 쓰는 식의 개량도 이루어진다. 모든 문화가 그렇듯 음식문화도 살아 움직이며 발전하고, 분화하고, 영향을 주고받는다. 물론 일제강점기라는 식민지 역사는 단순한 교류도 아니고 우리의 문화가 많은 부분 왜곡 또는 말살되었지만, 그렇다고 서로 영향을 주고받았다는 그 사실 자체를 부정하기도 힘들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황교익이 주장하는 내용의 근거가 과연 타당한가 하는 문제는 얼마든지 비판할 수 있지만[22] 우리의 전통음식인 불고기에 일본을 들먹였다는 사실만 가지고 비난하는 것은 문화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아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도 신선로나 <동국세시기>에 기록된 난로회와 같이 소고기가 들어가는 전골 요리도 오래전부터 있었기 때문에 서울식 불고기가 스키야키의 영향을 받은 건지, 아니면 이미 우리나라에 있었던 전골의 영향을 받은 것인지는 알 길이 없다.

각주

  1. 고기가 얇기 때문에 오래 재울 필요가 없다. 오히려 너무 오래 재우면 흐물흐물해질 수 있다.
  2. 양파는 날것으로는 매운맛이 나지만 익히면 단맛이 난다.
  3. 불고기 백반을 줄여서 '불백'이라고 한다.
  4. 서양에는 채식주의자가 은근히 많다. 단계도 여러 가지라 해산물은 먹어도 고기는 안 먹는다는가, 가금류는 먹어도 소나 돼지는 안 먹는다든가...
  5. 상기숙, "난로회 (煖爐會)",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6. https://jbooks.jikji.org/1922/01/10/%ED%83%80%EB%9D%BD%EC%9E%90-%E5%A2%AE%E8%90%BD%E8%80%85/#i-4
  7. 여기서 말하는 떡볶이는 우리가 아는 고추장 떡볶이가 아닌, 간장 양념으로 만든 오늘날의 궁중떡볶이에 가깝다.
  8. 8.0 8.1 "'불고기' 이야기", 이기문, 새국어생활 제16권 제4호(2006년 겨울).
  9. 서울식 불고기를 '한양불고기'라고 바꿔서 한양, 언양, 광양을 묶어 '삼양불고기'로 부르기도 한다.
  10. 실제로는 마포역보다는 공덕역이 조금 더 가깝다.
  11. 이제는 '먹거리'가 복수 표준어로 인정되었지만, '먹거리' 식으로 말을 만들면 입거리(입을거리), 보거리(볼거리), 듣거리(들을거리), 일하거리(일할거리)와 같이 확 부자연스러워지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입거리는 일부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어거지로 쓰는 사람들이 있다.
  12. 다만 볶음밥이나 볶음국수는 전통 음식이라고 보긴 힘들며 이런 이름이 붙은 게 일제강점기 혹은 그 이후일 가능성도 있다. 찜닭은 1970년대에 안동의 한 치킨집에서 처음 개발된 것이다. 또한 위에서 보듯 구이 요리는 거의가 재료+구이로 이름을 붙인다.
  13. "황교익이 불지른 '불고기' 어원 논쟁..학자들 "'야키니쿠'설은 엉터리"', <경향신문>, 2018년 10월 12일.
  14. "황교익 반박, 국어학자 주장에 "내가 엉터리? 수준 놀랍다"(전문)", MBN, 2018년 10월 12일.
  15. '불닭' 같은 음식도 있긴 하지만 이건 2000년대에 등장한 거라 근거로 볼 수 없다.
  16. 대학을 졸업하고 1933년에 평양으로 가서 교편을 잡게 되었는데 취임 축하 모임에서 불고기를 처음 보았다고 한다. 그런데 이숭녕은 서울 태생이라 소고기를 많이 안 먹어봐서 불고기도 많이 못 먹었다는 것을 보면 주로 평양이 소고기 소비가 많았고 서울은 소를 그렇게 많이 먹지는 않은 듯하다.
  17. 다만 평안도 역시 큰 도시인 평양이 자리잡고 있기 때문에 거기라고 일제의 영향을 안 받았겠냐는 반박은 가능할 것이다. 아무튼 일제강점기 이전에는 '불고기'라는 말이 도통 기록에 없다는 게 이 논란의 떡밥이다. 이기문 역시 평양 방언에 관한 문헌에서 불고기라는 말을 찾을 수 없는 것을 아쉬워했다.
  18. 문헌에 기록된 것은 1932년에 평양을 비롯하여 단군의 전승이 남아 있는 여러 지역을 방문하고 이를 <단군 성적(聖跡) 순례>라는 기행문으로 동아일보에 연재했다. <타락자>를 발표한 시점과는 10년이나 뒤의 일이다.
  19. 도시락은 순수한 우리말로, 어원은 ‘도슭’이며 17세기부터 이렇게 쓴 기록들이 있다. 일제강점기 때 '벤또'에 밀려 거의 안 쓰게 되었다가 다시 발굴되어 '벤또'를 대체한 것이다.
  20. 덮밥은 일본어로 '돈부리'(どんぶり, 丼) 또는 줄여서 '동'(どん)이다. '돈부리'는 큰 사발 모양 밥그릇을 뜻한다. 돈부리는 정확히는 '돈부리메시'(どんぶりめし)에서 온 말인데, 이걸 번안했다면 '사발밥'이 되었어야지 '덮밥'이 될 수가 없다.
  21. 1894년 경기도 광주 출생으로 연희전문학교 문과와 일본 릿쿄 대학 사학부를 졸업했으며, 쭉 서울을 중심으로 활동했다. 평안도 쪽 말글에는 익숙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22. 예를 들어 불고기라는 말의 평안도 유래설은 기록 자료가 있지만 야키니쿠 번안설은 이를 뒷받침할 만한 자료가 국어학자 김윤경의 인터뷰 정도고 그나마 논리적 비약으로 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