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노우에 타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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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nnis (토론 | 기여)님의 2015년 9월 4일 (금) 20:54 판

일본의 피겨 스케이팅 선수만큼이나 빙글빙글 잘 돌았던 레이싱 드라이버. 포뮬러 1 역사상 최악의 드라이버를 꼽으라면 줄곧 제1순위로 꼽히는 인물. F1을 거쳐간 여러 일본인 드라이버들에게는 고마운 존재. "이노우에 타키보다는 그래도 낫잖아."

F1 최초의 본격 페이 드라이버로 간주되기도 한다. 이노우에 본인은 "나만 돈 들어 와서 자리 차지한 거 아니다." 하고 주장한다. 그 이전에도, 그 이후에도 스폰서 자금을 들고 와서 F1 시트를 얻는 일은 많았지만 이들은 스폰서들이 드라이버의 실력이나 가능성을 보고 투자하는 것이었다면 이노우에 타키는 근본적으로 F1을 탈 실력이 도저히 안 됨에도 불구하고 오로지 돈의 힘으로 자리를 차지했다는 점에서, 페이 드라이버모범적인 윈조 케이스로 손꼽히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노우에보다도 실력이 못한 것으로 의심되는 페이 드라이버도 없었던 건 아니지만 보통은 잠깐 나타났다가 존재감도 없이 사라져 버렸지만 이노우에는 한 시즌을 버티면서 갖가지 엽기적인 사건의 주인공이 되었기 때문에 F1 역사에 크지는 않아도 지워지지는 않을 발자국을 남겼다.

F1의 풍운아로 한 시대를 풍미하셨던 조니 허버트는 1995년에 베네통 팀에서 처음으로 테스트를 했을 때 같은 팀의 미하엘 슈마허보다 한 바퀴에 2초나 느린 기록을 냈다. 그때 허버트 선생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가 무슨 이노우에 타키가 된 것 같아." 무슨 소리야 메디컬카에 들이 받히는 정도는 해야 이노우에지.

당시 또 다른 일본인 F1 드라이버로 '움직이는 시케인'이라는 비웃음을 샀던 카타야마 우쿄조차도 이노우에 타키를 "쓰레기"라고 사돈 남말 할 정도였다. 도대체 이노우에란 인간이 얼마나 지랄맞았기에? 심했기에?

F1에 데뷔하기 전에는 1988년에 영국 F3에서 뛰었고 1989년부터 93년까지 전일본 포뮬러 3를 거쳐서 포뮬러 3000에 한 시즌 참가했다.

1994년에는 일본 그랑프리에서 심텍 팀을 통해 F1 데뷔전을 치렀다. 결과는? 당연히 리타이어. 이듬해인 1995년은 이노우에가 본격적으로 F1 풀 시즌을 뛰면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던 해였다. 물론 그게 성적이 좋아서 받은 스포트라이트일 리는 없다.

일단 이노우에라는 이름을 길이 남긴 첫 번째 사건은 모나코 그랑프리. 3차 연습주행 도중 늘 그렇듯이 이노우에는 스핀 후 트랙 바깥에서 멈춰서고 말았다. 연습주행이 끝난 후 이노우에의 차량은 견인되어 피트로 돌아가고 있었는데, 그 뒤를 세이프티카가 들이받았다. 당시 세이프티카랠리 드라이버 쟝 라뇨티가 몰고 있었는데, 그 사고로 이노우에의 차량은 전복되고 대파되는 바람에 폐차 신세가 되었다. 이노우에한테 스폰서 받은 돈보다 해먹은 차값이 더 나갈 기세. 문제는 이노우에가 차에 타고 있었다는 것. 지금이야 무조건 드라이버는 탈출해서 바운더리 드라이버가 피트까지 데려다 주지만 그때는 그냥 견인되는 차량에 타고 있었다. 다행히 큰 부상은 없어서 예선은 참가 못 해도 레이스에는 출전할 수 있었다.[1] 얘기하나마나 레이스 성적은 리타이어.

이노우에 타키의 F1 인생에 정점을 찍었던, 그를 가장 유명하게 만들었던 경기는 1995년 헝가리 그랑프리다. 그냥 아래 동영상을 보자.

처음에 나오는 부분은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를 보여주며, 사고의 완전한 장면을 보려면 1분 2초 경부터 보면 된다.

레이스 도중 엔진에 불이 나는 바람에 트랙 바깥에 차를 세운 이노우에는 마샬의 굼뜬 대응에 화가 났다. 연기는 계속 심해지고, 이노우에는 빨리 좀 끄라고 손짓을 하는데 마샬은 우물쭈물 하고 있으니 이게 얼마짜리 차인데 차라리 내가 직접 끈다! 하고 소화기를 가지러 간 이노우에, 그런데 메디컬카가 접근하고 있는 것을 몰랐다. 소화기를 가지고 차로 돌아가려던 이노우에는 메디컬카에 들이 받혀서 보닛 위에서 한 바퀴 빙글 돌면서 멋진 도마체조 동작을 선보인 뒤, 두 다리로 착지한 것까지는 좋았으나 옆으로 절뚝 절뚝 거리다가 결국 땅바닥 위에 큰대자로 드러눕고 만다. 훗날 <톱기어>와 인터뷰에서 이노우에의 말씀. "그래도 두 다리로 착지했잖아요. 아주 좋았어요. 완벽한 칙지 동작이었죠. 9.99점 짜리였다니까!"

이노우에의 인터뷰를 보면 사고 이후의 이야기도 웃기는데, 원래 F1 드라이버가 경기 도중 부상을 당하면 일단 메디컬 센터로 간 다음 추가 치료가 필요하면 헬리콥터로 병원에 후송된다. 그런데 헬리콥터가 안 떴다. F1 안전 대표인 찰리 와이팅 왈, 헬리콥터를 띄우면 경기를 중단시켜야 하니가 좀 기다리라고 했다고. 한 시간 정도 메디컬 센터에 있던 이노우에는 결국 헬리콥터 편으로 병원에 갔는데, 검사 결과 뼈에는 별 이상이 없었다. 그런데 이노우에의 말에 따르면 병원 측은 "신용카드를 내놔라. 그래야 치료해 주겠다."고 요구했다. 레이싱 복장 그대로 병원에 실려왔는데 웬 신용카드? 결제 먼저 안 하면 치료 못 해준다는 병원 측과 30분 동안 실갱이를 벌인 뒤 치료를 어찌어찌 받기는 했는데 그 뒤 2년 동안 병원에서 이노우에한테 계속 청구서를 날려보냈다고. 슈마혀였어봐라. 이렇게 취급했나.

아무튼 위와 같은 명장면들 말고도 이노우에 타키로 검색해 보면 주로 나오는 게 스핀이다. 이쯤 되면 거의 피겨 스케이팅 선수 수준이다. 약 7분 분량으로 그의 화려했던 F1 선수 생활을 요약한 동영상도 있다. 제목은 <Taki Inoue: The Movie>. 부제는 "No Talent, No Control, No Hopte(재능도 없고, 실력도 없고, 희망도 없는)" 아무튼 F1 드라이버들 중에서 가장 많은 조롱과 비웃음의 아이콘으로 어쨌거나 역사에 이름은 길이 남겼다.

동영상 초반에 나오는 사진을 잘 보면 이노우에의 수트에 대한항공 마크가 붙어 있다. 차에도 KOREAN AIR가 자랑스럽게 붙어 있는데, 심텍 팀의 스폰서지 이노우에의 스폰서는 아니다. 참고로 대한항공은 이후에도 베네통 팀에 스폰서를 넣었지만 지금은 F1 스폰서십에서는 손을 뗀 상태.

F1에서 통산 18 경기에 참가했고, 포인트는 당연히 0점. 그게 뭐죠? 멤버십 카드 내면 적립해 주는 거요?: 체커기 받은 것도 다섯 번에 불과하다. 하지만 그의 화려한 스토리를 보면 다섯 번이나! 하고 놀라게 된다.

1996년에는 미나르디에서 F1 선수 생활을 계속 하려고 했지만 막판에 스폰서 두 곳이 손을 떼버리면서 돈을 확보하지 못하자 미나르디는 쟝카를로 피지켈라를 선택하고 만다. 이로써 이노우에의 다사다난했던 F1 시대는 한 시즌 만에 막을 내렸다.

F1에서 물러난 이후로는 일본으로 돌아가서 국내 경기에 참가하다 현역에서는 은퇴했다. 지금은 일본인 드라이버 매니지먼트 일을 하면서 모나코에서 살고 있다. 자기 말로는 떼부자라서 거기 있는 건 아니라고 한다. 그렇다고 당신이 모나코에서 알바로 살고 있는 건 아닐 거 아냐. 레이스는 못하지만 입은 살아서 종종 SNS에 뻘글을 잘 쓰는 것으로 유명 혹은 악명이 높다. 악플의 달인. 자신의 화려한 전력을 별로 감추려고 하지도 않고 인터뷰도 잘 하는 편이라 잊을 만하면 가끔씩 그의 인터뷰가 F1 관련 매체에 실리곤 한다.

각주

  1. 사고로 차량이 망가졌지만 그 시절에는 스페어카가 허용되었기 때문에 레이스에 참가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