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맥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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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nnis (토론 | 기여)님의 2023년 7월 14일 (금) 14:20 판 (→‎이런저런 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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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호프브로이 뮌헨의 1리터 도르트문터 생맥주.

영어로는 live beer draught beer(영국) 또는 draft beer(미국). 철자는 달라도 둘 다 발음은 똑같다.

생맥주라는 단어는 살아 있는 혹은 신선한 맥주라는 뜻을 품고 있다. 즉 살균을 위해서 열처리를 하지 않은 상태의 맥주를 뜻한다. 그런데 draught beer는 단지 커다란 통에서 따라낸 맥주를 뜻한다. 비열처리 맥주는 unpasteurised beer라고 부른다.

열처리 하지 않은 맥주

옛날에는 모든 맥주가 생맥주였다. 문제는 시간이 지나면 맛이 시큼해진다는 것. 파스퇴르 박사가 우유는 안 만들고 맥주 맛을 오래 보존하는 방법을 연구한 끝에 가열처리법을 개발했다. 이걸 열처리(pasteurising, 파스퇴르의 이름을 딴 것)이라고 한다. 맛이 시큼해지는 이유는 당연히 세균 때문인데 미생물에 대한 개념도 없던 때였기 때문에 파스퇴르 이전까지 사람들은 고민만 하고 있었다. 물론 가열해서 세균을 죽이면 맥주 맛에는 크든 작든 영향이 간다.

이후 병맥주 혹은 캔맥주는 유통과 보관을 길게 하기 위해서 당연히 열처리를 하는 것이라고 여겨졌고, 업소에 대량 공급돼서 빨리 소비되는 캐스크 맥주는 생맥주로 판다고 생각했다. 열처리 과정도 결국 비용이 드는 것이니 빨리 팔릴 맥주를 굳이 열처리할 필요는 없었을 것이다. 이 개념이 모호햐진 것은 일본 삿포로맥주가 비열처리 살균법을 개발하면서부터다. 미세한 필터로 세균을 걸러내는 비열처리법으로 맥주 맛을 해치는 잡균을 제거하는 기술을 개발하고, 이렇게 세균을 없앤 병맥주를 생맥주라고 붙여 팔았다. 이 때문에 일본에서는 커다란 논란이 벌어졌다. 병에 담겨 있는데 생맥주라니, 말이 되나? 하지만 가열처리를 안 했으면 생맥주잖아? 이런 주장들이 정면충돌했다. 게다가 전자는 정부 쪽, 후자는 삿포로맥주 쪽의 주장으로 비화되었다. 결국 병맥주에 '생맥주'라는 말을 붙이면 안 된다는 정부의 주장에 삿포로맥주 측에서 반발해서 법정 공방까지 간 끝에, 법원은 삿포로맥주의 손을 들어주었다. 그날 삿포로맥주는 생맥주 파티 했겠지.

살균 방식으로는 생맥주와 병맥주(캔맥주 포함)를 구분할 수 없게 되었지만, 그래도 둘을 구분할 수 있는 차이점이 있다면,

  • 보관 : 생맥주는 대용량의 케그에 담겨 있고, 병맥주는 병에 담겨 있다. 캔맥주는 캔에 담겨 있고...
  • 가격 : 국산 맥주캔맥주가 더 비싸거나 비슷한 편이지만 수입 맥주는 확실히 생맥주가 두 배 가까이 비씨다. 이게 무슨 차이점이야. 그냥 바가지지.
  • 탄산가스 : 병맥주맥주에 미리 탄산가스를 주입하지만 생맥주는 케그에 탄산이 없다. 잔에 따르는 과정에서 탄산을 주입한다. 영국의 캐스크 에일 생맥주는 아예 탄산 없이 서빙되는 게 보통이다.

병맥주나 캔맥주도 비열처리를 하는 세상이다 보니, 이제 생맥주라는 말은 draught beer의 의미로 널리 쓰인다. 물론 이런 변화를 잘 모르는 사람들도 의외로 많다. 아니, 열처리라는 것 자체를 모르는 사람이 더 많을 걸? 그럼에도 여전히 병맥주캔맥주효모가 다 죽었고, 생맥주는 효모가 살아 있는 맥주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다. 아마도 생(生)이라는 말 때문에 더더욱 그렇게 착각하는 듯. 결론은 No다. 일부 크래프트비어나 집에서 직접 만드는 홈브루잉 맥주를 제외하고는 현대의 생맥주에도 효모가 없기는 마찬가지다.

생맥주의 개념을 파괴해버린 일본에서는 우리가 생각하는 생맥주. 즉 케그에서 따라내는 맥주를 樽生(たるなま, 한자를 우리 식으로 읽으면 준생)이라고 따로 부른다. 일본 술집에 가 보면 자주 볼 수 있는 문구 중 하나다. 하지만 주문할 때 굳이 '타루나마'라고 할 필요는 전혀 없다. '生ビール(나마비—루)' 또는 그냥 'なま(나마)'라고만 하면 된다.

큰 통에서 따라낸 맥주

beer on tap (수도꼭지에서 나오는 맥주), tap beer, keg[1] beer라고 부르기도 한다. 한국의 수도꼭지에서 나오는 건 맥주인지 수돗물인지...

맥주를 병에 담아서 팔면 운반할 때도 부피가 커지고 병이 깨지거나 하는 문제도 있다. 그러니 술 소비가 많은 업소에 술을 판매할 때에는 큰 통에 맥주를 담아서 팔고, 술집에서 알아서 따라 파는 식이 공급자도 좋고, 술집도 병맥주보다 싸니까 좋았던 것. 지금처럼 금속 통에 탄산가스를 충전해서 맥주가 쉽게 나오도록 하는 케그(keg) 방식은 20세기 초에 개발되었다. 한때는 영국에서 옛날의 탄산 없는 캐스크 에일을 케그 맥주가 빠르게 잠식했다. 일단 편하니까, 캐스크 에일은 가스 압력이 없어서 사람의 힘으로 퍼올려야 했다. 맥주를 따르는 손잡이가 길쭉해서 펌프질을 해 줘야 맥주가 나오는 것. 케그 맥주야 그냥 손잡이를 당기고만 있으면 죽 나오니까 편하다. 또한 캐스크 에일은 아무런 처리도 안 하기 때문에 (심지어 효모도 안 걸러낸다) 맥주가 빨리 상하는 반면 케그는 좀 더 오래 버텨준다. 사실 옛날처럼 효모가 살아 있는 진짜 생맥주는 영국에 가서 캐스크 에일을 마시든가 마이크로브루어리, 즉 맥주를 직접 양조해서 파는 곳에나 가야 한다. 케그에 담겨 있다면 필터링을 해서 걸러냈든 열처리를 해서 죽였든 살아 있는 효모는 없다고 봐도 된다.

영국에서 캐스크 에일이 점점 설 자리를 잃자 캠페인 포 리얼 에일(Campaign for Real Ale, CAMRA)이라는 소비자 운동이 벌어진다. 전통적인 캐스크 에일 맥주의 전통을 되찾자는 운동이 많은 호응을 얻고 활발하게 벌어지면서 캐스크 에일이 다시 늘어났다.

케그에 들어 있는 가스로도 부족하면 외부에 따로 탄산가스통을 두고 맥주를 따르는 과정에서 기계가 추가로 주입한다. 특히 지독한 탄산 덩어리를 맥주라고 마시는 우리나라에서는 아주 팍팍 들어간다. 맥주 반 탄산가스 반

요즘은 크림처럼 미세한 거품을 특징으로 하는 크림 생맥주가 꽤 인기 있다. 맥주 자체가 다른 건 아니고 기계가 좀 다를 뿐이다. 자세한 것은 해당 항목 참조. 이런 장난은 주로 일본이 많이 친다. 심지어 기린맥주슬러시까지 만들었다. 정확히는 맥주를 따르고 그 위에 거품 대신 슬러시를 얹는 식이다.

생맥주 맛이 차이가 나는 이유

같은 회사의 같은 브랜드 생맥주인데도 어디서 마시느냐에 따라서 차이가 많이 난다. 그 이유는 뭘까?

  • 회전율 : 일단 케그를 따고 나면 1~2일 안에 써야 한다는 게 정설이다. 아무리 잡균을 필터링한 생맥주라고 해도 일단 봉인을 열면 신선도가 떨어지기 시작한다. 맥주가 잘 팔리고 케그 한 통을 빨리 쓰는 집일수록 그만큼 맥주가 신선하다. 안 팔리는 집은 케그 한 통 꽂아놓고 며칠을 쓰는데 당연히 맛이 나빠진다. 일본맥주케그의 크기가 10 리터와 18 리터 두 가지인데, 판매량이 적은 집에서는 작은 케그를 쓰면 된다. 물론 맥주 한 잔 당 단가는 큰 케그가 저렴하기 때문에 돈 아끼는 데에만 관심 있는 곳은 무조건 큰 케그로 서서 며칠을 쓴다. 우리나라는 그냥 18리터 케그 한 가지.
  • 온도 : 온도가 낮을수록 시원한 느낌이 강하고 맥주도 탄산을 더욱 많이 품고 있게 된다. 물론 탄산이 많을수록 좋은 건 아니다. 한국맥주는 너무 탄산 과잉이다. 그러나 온도가 낮으면 거품이 더욱 잘고 고와지는 효과가 있다. 너무 차도 맥주의 향미를 제대로 느끼기 어려우니 좋은 건 아니고, 섭씨 5도 안팎의 온도를 잘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요즘 들어서 아사히 엑스트라 콜드 같이 영하의 온도로 서빙되는 맥주도 있지만 온도가 너무 낮으면 오히려 향미가 죽는다. 너무 차다면 천천히 마시자. 잔도 깨끗하고 차갑게 유지해야 한다. 잔에 물기가 제대로 마르지 않았거나 온도가 미지근하면 거품이 별로 안 좋아진다. 잘 씻어서 물기가 잘 빠지게 하면서 냉장 보관해야 하는데 어지간히 싸구려 아니면 요즘 이 정도는 다 한다.
  • 기계 관리 : 병맥주는 그냥 냉장고에 넣어 놨다가 꺼내주면 된다. 잔만 냄새 안 나게 잘 관리하면 된다. 반면 생맥주는 기계 관리를 잘 해야 한다. 생맥주가 맛있는 집과 맛없는 집의 가장 큰 차이가 기계 관리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제대로 하는 집은 날마다 기계 안의 호스 및 파이프를 청소한다. 안 그러면 잡균이 끼거나 찌꺼기가 붙어서 맥주 맛이 나빠진다.
  • 케그 관리 : 품질에 정말 신경 쓰는 쉽게 말해 맥주 덕후가 주인인 곳은 심지어 케그를 냉장 보관한다. 그냥 쓰는 곳과 냉장 보관하는 곳의 차이는 크다. 운반되는 과정도 냉장차를 쓴다면 더 좋겠지만 그것까지 바라기에는 현실은 시궁창.
  • 팍팍 버려라 : 탄산이 들어가는 맥주라면 따를 때 잔 위에 거품이 많이 나오는데, 걷어내고 따르고를 한두 번 되풀이해야 한다. 좋은 곳은 이런 거품을 버린다. 거품을 버리고 잠시 남은 거품이 좀 가라앉기를 기다렸다가 다시 맥주를 따른다. 제대로 된 이라면 이렇게 하는 게 보통이다. 혹시 그렇게 버리는 맥주피시 앤드 칩스 반죽하는 건 아니겠지? 서양에는 맥주로 반죽한 피시 앤드 칩스가 많거든. 국자로 위의 거품만 빠르게 휙 걷어내는 것도 괜찮다. 반면 안 좋은 곳은 거품을 숟가락이나 국자로 퍼내고 따로 담는데, 이런 도구를 제대로 씻거나 하지도 않으므로 그게 다시 맥주 안에 푹 들어가면 맛에 좋을 게 없고, 심지어 어떤 곳은 걷어내서 모아 놓았던 맥주를 재활용까지 한다. 거품은 시간이 지나면 가라앉아서 다시 액체 상태의 맥주가 된다. 부피로는 확 줄어들지만 그래도 모아 놓으면 양이 좀 나오는데 이걸 재활용하는 것. 티끌 모아 태산 이런 곳이 맥주맛이 좋을 리가 없다.

이런저런 얘기

맥주 사랑이 지독한 일본에서는 열차에서도 생맥주를 판다. 일본 기차 여행을 하는 맥주 팬이라면 식당차에 가 보자. 큐슈 쪽의 유후인노모리의 일부 편성을 비롯해서 관광열차 성격이 강한 열차에 식당칸이 있으면 생맥주를 파는 경우가 있다. 차창 밖 풍경을 바라보면서 생맥주 한 잔 하고 있으면 천국이 따로 없다.

전일본공수는 심지어 2010년에 기내 생맥주 서비스를 한 적도 있다. 원래 기내에 압축 공기, 특히 압축 이산화탄소를 들여오는 것은 폭발 위험이 있어서 안 된다. 높은 고도에서는 기압이 지상보다 크게 낮기 때문에 바깥과 압축 공기 안쪽의 기압차가 평소보다 훨씬 커지기 때문이다.[2] 전일본공수가 쓴 방법은 드라이아이스. 탄산가스를 얼린 것이고 폭발 위험이 없으므로 이걸 기화시켜서 맥주에 주입한 것이다. 단, 생맥주는 유료였고 그래서인지 오래 못 갔다. 2016년에는 KLM하이네켄과 제휴해서 이산화탄소가 아닌 공기를 압축해서 생맥주를 제공하는 서비스를 시험적으로 선보인 바 있다.

각주

  1. 케그. 생맥주를 담은 큰 금속제 통.
  2. 객실 내 기압은 여압장치를 이용해서 해발 2천 미터 수준으로 맞추지만 지상보다는 훨씬 높은, 한라산보다 높은 고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