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제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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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가루를 반죽한 다음 작은 크기로 손으로 뜯어내서 적당하게 편 다음 국물에 넣어서 익히는 음식. 또는 이러한 음식에 넣는 밀가루 반죽을 뜻한다. 보통은 멸치육수감자, 호박, , 양파와 같은 채소를 썰어 넣어서 맛을 낸 국물을 사용한다. 물론 고기육수나 해물육수를 사용할 수도 있고 된장을 풀어서 넣을 수도 있고 김칫국으로 김치수제비를 끓일 수도 있다. 칼국수와 닮은 점이 많으므로 칼국수 국물로 쓰인다면 수제비 국물로도 쓰일 수도 있다. 몇몇 칼국수 전문점은 칼국수와 수제비를 함께 넣은 칼제비를 팔기도 한다. 밀가루 반죽을 할 때에도 전문 음식점은 콩가루감자녹말을 사용하기도 한다. 뜯어 넣는 밀가루 반죽의 모양은 일정하지 않지만 얇고 평평하게 펴서 넣어야 빨리 익거나 속이 설익는 일이 없다.

중국에서는 530∼550년 사이에 제작된 <제민요술(齊民要術)>이라는 책[1]에 처음으로 기록이 나오는데 박탁(餺飥)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하고 있다. 우리나라에는 언제부터 수제비를 만들어 먹었는지에 관해서는 뚜렷힌 기록이 나오지 않는다. 조선시대로 오면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朝鮮無雙新式料理製法)>에 운두병(雲頭餠)이라는 이름으로 조리법이 등장하는데, 닭고기를 삶아낸 장국물을 썼으며, 밀가루, 고기, 파, 기름, 후춧가루, 계핏가루와 같은 재료들이 등장한다.[2] 조선시대보다는 훨씬 이전부터 만들어 먹었을 것으로 추정하는데, 조선시대 요리법에 나오는 재료에서도 볼 수 있듯이 조선시대에는 서민음식이라기보다는 양반가의 음식이었다고 보는 게 옳을 것이다. 옛날에는 밀가루보다도 귀했기 때문에 고급 음식이었을 수밖에 없다. 국수도 옛날에는 보통 사람들은 혼례 같은 특별한 날에나 먹을 수 있는 음식이었으니 수제비 역시 비슷했을 것이다. 다만 쌀가루 반죽으로 수제비를 만들어먹기도 했으며, 강원도 쪽은 메밀을 많이 길렀기 때문에 메밀국수나 수제비 같은 음식을 만들어 먹기도 했다. 감자전분으로 만든 옹심이도 수제비와 친척지간이라 할 수 있다. 밀가루에 감자전분을 넣어 만드는 수제비도 있고 제품으로도 나와 있다.

조선시대와는 달리 현대에 들어서는 어려웠던 시절을 상징하는 음식 중 하나로 꼽힌다. 수제비가 서민 음식으로 내려온 것은 한국전쟁 후. 미국의 원조로 식량 부족을 해결해야 했던 시절, 은 없고 원조로 들어온 밀가루로 끼니를 해결해야 했던 사람들은 질리도록 수제비를 먹었다. 국물도 있으니까 물로 배를 채울 수도 있고, 국수에 비해서는 반죽을 손으로 대충 뜯은 다음 적당히 펴서 국물에 투입하면 되니 집에서 만들기도 간편했다. 그 시절을 산 사람들은 수제비라고 하면 고개를 절래절래 흔든다. 지금이야 수제비에 멸치육수 혹은 고기, 사골육수를 내고 고기채소 건더기도 들어가서 푸짐하지만 그 당시는 희멀건 소금 국물에 수제비도 많이 들지도 않았다. 그러니 물배 채우듯 허기를 달래야 했던 음식이 어려웠던 시절의 수제비였다. 그래서 지금도 수제비는 가난을 상징하는 말로 종종 쓰이곤 한다. 그때 수제비로 끼니를 때워야 했던 사람들 중에는 당시의 기억이 너무 지긋지긋해서 지금도 수제비라면 쳐다도 안 보는 사람들도 있다.

반죽으로서 수제비는 다른 음식에 국수사리처럼 쓰이기도 한다. 예를 들어 샤브샤브를 다 먹고 남은 국물에 칼국수 또는 수제비를 익혀 먹기도 하고, 민물매운탕에 수제비를 뜯어 넣기도 하는 식이다. 아예 감자수제비처럼 제품으로 나와 있는 것도 있다. 횟집 같은 곳에서 쓰는 수제비는 대부분 제품. 일부 민물매운탕으로 유명한 곳은 반죽을 가져와서 끓고 있는 매운탕에 직접 수제비를 뜯어서 넣어 주는 걸로 유명한 집도 있다.

울산에서는 '던지기탕'이라는 이름으로도 부른다. 중앙시장에는 지역에서 유명한 칼국수 골목이 있는데, 이 이름의 유래가 꽤나 재미있다. 1983년 여름 울산공업축 때 울산대학교 민속극연구회 동아리인 '얼쑤'의 회원들이 농악 길놀이를 하고 태화강 고수부지에서 민속극 공연을 했다. 이렇게 한바탕 공연을 하고 나면 젊은 학생들은 배가 고플 터. 값싸고 양 많은 칼국수 골목을 찾았는데, 50명이 넘는 회원들이 우루루 몰려들었으니, 칼국수집에서 한꺼번에 이 많은 학생들에게 칼국수를 일일이 밀고 썰고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생각한 게 반죽을 손으로 떼어내어, 즉 수제비로 만들어서 길가에 걸어놓은 물솥에 훅훅 던져넣은 것. 이걸 보고 '얼쑤' 회원이자 국어국문학과 학생이었던 김종훈 "아저씨, 그 던지기탕 나도 주소" 하고 즉석에서 이름을 붙였는데 그게 마음에 들었는지 다른 학생들도 던지기탕이라고 부르기 시작했고, 학생들에게 인기를 끌어서 아예 칼국수집의 메뉴에 정식으로 올라갔다고 한다.[3]

'수제비 뜨기' 혹은 '물수제비'라는 말도 있는데, 작은 돌을 최대한 각도를 낮춰서 물 위에 던지면 돌이 물에 몇 차례 통통 튀면서 나아가는 모습을 뜻하는 말이다.

일본에도 수제비가 있다. 스이톤(水団, すいとん)이라고 부르며, 몇몇 지역에는 향토요리로 정착되어 있다. 쿠마모토현의 다고지루(だご汁), 이와테현의 힛츠미(引っ詰み, ひっつみ) 같은 음식들이 있다.

각주[편집]

  1.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농서로(農書)로 여러 가지 농사법과 요리법, 이나 된장 담는 법까지 기록하고 있다.
  2. "수제비",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3. "중앙시장 칼국수골목에서 탄생된 ‘울산 던지기탕’", <울산매일>, 2020년 1월 2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