쥘 비앙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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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les Bianchi.

프랑스 출신의 모터 레이싱 드라이버. 페라리 드라이버 아카데미 출신으로 F1 데뷔 후 꼴찌 팀 마루시아에 사상 첫 포인트를 안겨주면서 자신의 실력을 입증했다. 그 이후로 페라리 시트는 따논당상이라고 모두들 생각했고 언젠가 챔피언을 차지할 만큼의 실력을 지녔다고 평가 받았지만 한 순간의 사고로 모든 것을 잃고 결국 1994년 아일톤 세나 이후 21년 만에 (사망일 기준) 최초로 경기 도중 사고로 목숨을 잃은 F1 드라이버가 되었다.

포뮬러 1에서

페라리 엔진을 받고 있던 마루시아 팀을 통해 2013년 F1에 입성한 비앙키는 페이 드라이버맥스 칠튼 따위는 진작에 안드로메다로 관광 보내버리고 두각을 보였다.[1] 그래봐야 하위권에서 허덕이긴 했지만 그나마 마루시아보다는 상태가 나았던 캐터햄도 발라버리는 기량을 보여주면서 차세대 챔피언감으로 일찌감치 낙점을 받는다.

비앙키에게 2014년 모나코 그랑프리는 그에게는 최고의 날이었다. 꼴찌나 안 하면 대박이고 완주만이라도 해 다오, 하는 예상을 깨고 무려 7위를 차지한 것! 페널티 때문에 9위로 밀려나긴 했으나 애초에 포인트 따위는 포기하고 그냥 완주나 하면 축제 분위기인 마루시아에게 꿈도 못 꾸었던 2 포인트를 사상 최초로 안겨주었다. 모나코 그랑프리가 워낙에 변수도 많고, 도로 폭이 좁고 안전 지대가 없는지라 앞지르기가 힘들어서 일단 좋은 자리를 차지하면 웬만헤서는 자리를 안 빼앗기는 곳이긴 하지만 그것도 어지간해야... 상하위팀 사이에 차량 성능 격차라는 게 한 바퀴에 몇 초씩 차이가 날 정도로 어마어마한 데다가, 앞지르기를 돕는다고 DRS까지 쓸 수 있는지라, 온갖 공세를 다 막아내고 포인트를 안겨준 비앙키의 실력은 정말로 페라리가 왜 애지중지 키웠는지를 여실히 보여준 경기였다. 이 때까지만 해도 그의 앞날은 그야말로 탄탄대로였다. 나중에 루카 디 몬테제모로는 애초부터 키미 라이코넨의 후임으로 그를 점찍고 있었다고 고백한 바 있다. 뭐 말 안 해도 알고 있었다고. 아무튼 라이코넨은 2016년까지 계약을 연장했다.

사고, 그리고 타계

운명의 그날. 2014년 10월 5일에 개최된 일본 그랑프리. 태풍 접근으로 비바람에 부는 가운데 열린 레이스는 힘겨운 날씨 사정으로 사고가 잇따랐다. 43랩 째, 컨트롤을 잃은 비앙키의 차량이 트랙을 이탈해서 그라벨 트랩으로 돌진했다. 사실 이것만이라면 그날 있었던 흔한 사고 가운데 하나였는데... 하필 그라벨 트랩에는 트랙터 한 대가 비슷한 지점에서 트랙을 이탈해 타이어월을 들이받은 아드리안 슈틸의 차량을 들어올리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비앙키의 차량은 비스듬하게 트랙터로 돌진했다. 트랙터의 차제와 지면 사이 간격이 상당히 컸고, 프론트 노즈가 그 안으로 쑥 들어가버리는 바람에 차량의 속도가 별로 줄지 않은 상태에서, 비앙키의 머리가 트랙터 아랫 부분을 들이받았다. 의식을 잃은 그는 곧바로 메디컬센터를 거쳐 병원으로 후송되었다. 원래대로라면 헬리콥터로 후송되어야 했지만 악천후 때문에 앰뷸런스 편으로 병원까지 후송되었다. 하지만 이것이 그를 치명적인 결과로 몰아갔다고 보기엔 힘들다. 이미 부상 자체가 치명상이었기 때문이고, 일찍 갔다고 해서 딱히 손쓸 방도가 있는 것도 아니었으니.

검사 결과 가장 좋지 않은 병명을 진단 받았다. 미만성 축삭손상. 두개골 안에서 뇌가 회전하면서 바깥과 안쪽의 밀도 차이 때문에 서로 다른 속도로 회전한 것으로, 뇌세포신경들이 마구 뒤틀리게 된다. 일단 혼수상태는 기본이고 90%는 의식을 되찾지 못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다행히 의식을 되찾은 10%도 영구적인 뇌기능 손상을 안게 된다. 비스듬하게 부딪치면서 측면으로 충격을 받은 것이 이와 같은 치명상을 낳은 것으로 추정된다.

일본에서 프랑스로 후송되어 혼수상태 속에서 계속해서 치료를 받아 왔지만 사실상 할 수 있는 게 아무 것도 없었다고 과언은 아니었다. 그저 목숨만 살려놓은 채 기적이 일어나기를 바랄 뿐. 하지만 차도가 있다는 얘기는 전혀 들리지 않았고, 급기야 비앙키의 아버지는 '희망이 점점 사라져가고 있다. 차도가 있으려면 6개월 안에 뭔가가 있어야 하는데 이를 훌쩍 넘기고도 나아질 조짐이 보이지 않는다.'면서 절망적인 심경을 토로했다.

결국 9개월만인 7월 17일, 가족들은 비앙키가 세상을 떠넜다는 사실을 발표한다. 하필 그의 번호가 17인데, 이 날 세상을 떠날 거라 알고 정한 것은 아니겠지...

고향에서 거행된 장례식에는 현직 F1 드라이버 상당수 및 FIAF1 팀 관계자, 그리고 알랭 프로스트를 비롯한 전직 F1 드라이버들도 참석했다.

그 이후

비앙키가 숨진 후 처음으로 열린 F1 경기인 헝가리 그랑프리에서는 그리드에서 드라이버들이 원을 그리고 어깨동무를 하면서 그를 추모했다. 스크럼 안에는 드라이버들의 헬멧이 바닥에 놓여 있었고, 비앙키의 헬멧도 그 가운데에 있었다. 스크럼을 푼 드라이버들이 하나 하나 자신의 헬멧을 집어들고 나서 비앙키의 헬멧은 잠시 트랙 위에 머물러 있었다.

FIA는 그의 번호였던 17번을 F1에서 영구결번하기로 결정했다. 또한 트랙 상황이 위험해졌을 때 세이프티 카가 나오기 전에라도 경기 차량이 강제로 속도를 줄이도록 F1 규정에 가상 세이프티 카(virtual safety car)라는 개념이 도입되었다.

그동안 F1에 드라이버의 머리를 외부 충격으로부터 보호할 수 있는 추가 안전장치에 대한 논의가 있었는데, 쥘 비앙키의 사고는 이러한 논의에 더욱 불을 붙였고, FIAF1헤일로 장치를 들여오기로 결정했다. 쥘 비앙키의 사고가 헤일로 도입을 촉발시켰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은데, 실제로 FIA가 관련 연구를 시작한 것은 2011년부터였다. 2009년 영국 브랜즈해치에서 열린 포뮬러 2 경기에서 유망주였던 헨리 서티스[2]가 다른 차량으로부터 날아온 타이어에 머리를 맞고 사망한 사건이 결정적인 계기였다.

소송

2016년 5월 26일, 비앙키의 가족들이 FIA, FOM, 그리고 마루시아 팀[3]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는 소식이 나왔다.[4] 사실 경기 중 사고에 대해서는 미리 '주최 측 및 다른 경기 참가자에게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서약을 해야 하므로 단순 손해배상 소송이라면 이길 가능성은 별로 없다. 그러나 비앙키의 가족들은 FIA 사고조사위원회가 발표한 보고서에서 이 사고의 주요한 원인을 비앙키가 비 때문에 도로 상태가 나쁜데도 차량 조종을 할 수 있을 만큼 속도를 충분히 늦추지 않은 것으로 본 견해에 동의할 수 없다면서 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가족들은 소송을 통해 비앙키의 명예를 회복하고 승소할 경우 배상금은 젊은 드라이버 및 안전 향상을 위한 기금에 사용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재키 스튜어트는 비앙키 가족들이 '잘못된 길(wrong path)'로 가고 있다고 비판했다.[5] 이해는 하지만 소송을 제기함으로써 가족들의 고통만 더욱 길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모든 드라이버들은 위험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이건 탁구 게임이 아니다. 아주 기이한 사고가 일어날 가능성은 언제나 있다. 그리고 받아들여야 한다."라는 말도 남겼다.

각주

  1. 쥘 비앙키도 페이 드라이버이긴 했지만 페라리라는 막강한 스폰서가 차세대 드라이버로 키우기 위해서 집어넣은 거고, 오로지 돈빨로 들어간 맥스 칠튼과 비교할 바는 아니다.
  2. F1의 전설적인 드라이버 존 서티스의 아들이었다.
  3. 2016년에 마노 팀으로 바뀌었지만 2017년 초에 모회사인 저스트 레이싱 서비스(Just Racing Services)가 파산하며서 팀도 함께 접었다.
  4. "Jules Bianchi’s family launch legal action against FIA and Marussia", The Guardian, 26 May 2016.
  5. "Stewart: Legal action 'wrong path' for Bianchi family", F1-Fansite.com, 27 May 2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