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머리국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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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의 머리 부분의 고기와 뼈를 푹 고아서 곰탕을 낸 후, 밥을 말아서 내는 국밥 요리. 다만 요즘은 밥과 국이 따로 나오는 따로국밥식으로 나오는 곳이 많은 편이다.

우리나라는 소고기를 워낙에 사랑했던 나라인지라, 조선 태종 때는 농사일에 써야 할 중요한 동력인 소를 잡아먹지 못하도록 막았고 세종 때는 금살도감(禁殺都監)이라는 기관까지 설치해 감시할 정도였지만 뒤로는 밀도살이 성행했다. 소 한 마리를 잡으면 정말 알뜰하게, 남김 없이 먹었고 소머리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소머리로 끓인 곰탕이나 국밥에 관한 기록은 1909년에 나온 <조선만화(朝鮮漫畫)>가 처음이다.[1] 여기에는 국밥집 진열대에 살코기를 발라낸 소머리뼈와 등뼈를 그린 그림이 실려 있어서 적어도 이 때에는 소머리국밥이 있었음을 나타내고 있다. 초기에는 소머리는 물론 뼈, 껍질, 우족까지 넣어서 끓였고 간장고춧가루로 양념했다. 설렁탕, 우족탕과 함께 소머리국밥은 소고기와 뼈로 끓인 곰탕으로 많은 인기를 끌었던 것으로 보인다.

수도권을 중심으로 소머리국밥으로 가장 유명한 곳은 경기도 곤지암으로, 최미자소머리국밥, 골목집소머리국밥, 구일가든, 배연정소머리국밥, 사랑방, 동서소머리국밥집과 같은 여러 가게들이 있다. 이 중에서 원조로 치는 곳은 최미자소머리국밥인데, 1980년대 초반부터 자그마한 가게로 시작했다가 이쪽에 골프장들이 생기기 시작하면서 골프 치러 오가던 사람들이 들르고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고 한다. 또한 1988년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이른바 '혐오시설'을 서울 밖으로 쫓아내던 정부의 눈에 소머리국밥을 비롯해 소 부산물을 사용하는 음식 역시 혐오스러운 모습으로 보여 서울 밖으로 밀려나면서 곤지암 소머리국밥 골목이 커지고 이미 터잡고 장사하던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덕을 보았다고 한다.[2]

소머리국밥의 스타일은 아주 심플하다. 소머리와 소뼈를 손질해서 여러 시간 동안 푹 고은 후, 탕과 소머리에 붙은 여러 부위의 고기를 함께 넣어서 토렴으로 밥을 말아 내거나 따로국밥으로 낸다. 채썬 대파 정도가 고명으로 들어가거나, 채썬 달걀지단을 올려주는 곳도 있다. 양념도 소금고춧가루 정도로 아주 단순하다. 다만 경상도 쪽은 여기에 무, 숙주나물, 토란대를 넣고 고춧가루를 좀 더 많이 넣어서 빨갛게 국물을 내는 곳이 많다. 재료들을 보면 육개장의 소머리 버전이라도 해도 될 정도. 다만 육개장보다는 기름이 조금 적고 더 깔끔한 편이다. 경상도 쪽에서는 그냥 '소고기국밥'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가정에서 끓이기는 사실상 불가능. 일단 소머리 자체가 크기 때문에 사가지고 오기도 쉽지 않고, 가정에서 소머리를 고을 솥이나 들통을 가지고 있지 않을 것이고, 가정용 가스레인지에 그 큰 놈을 고아내기도 힘들다. 그리고 껍질을 벗겨낸 소머리의 생김새가 일반 가정에서는 무척 혐오스럽기도 한다. 소머리국밥집은 대부분 커다란 가마솥을 사용한다. 예전에는 장작불로 고았지만 요즘은 업소용 고화력 가스버너를 사용한다.

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