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아이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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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공기의 디아이싱을 위해 방빙액을 뿌리고 있는 모습.

Deicing.

어떤 표면으로부터 얼음이나 성에를 제거하고 일정 시간 동안은 다시 얼지 않도록 처리하는 작업을 뜻한다. 가장 널리 쓰이고 가장 잘 알려진 분야는 항공이지만 도로, 철도에도 디아이싱이라는 용어가 쓰인다. 한국어로는 '제방빙'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지만[1] 우리나라에서도 디아이싱이 훨씬 널리 쓰인다.

항공기의 디아이싱은 주로 항공기 표면에 생긴 얼음을 제거하고 일정 시간 동안은 얼음이 다시 붙지 않도록 하는 작업을 뜻한다. 엄밀히는 이미 붙어 있는 얼음을 제거하는 작업을 디아이싱, 항공기가 일정 시간까지[2] 얼음이 다시 붙지 않도록 처리해 주는 작업을 앤티아이싱(anti-icing)라고 구분하기도 한다. 추운 겨울, 특히 눈이 왔거나 비가 온 다음 기온이 뚝 떨어진 뒤에는 이륙 전에 디아이싱 작업을 하는 경우가 많으며, 그러면 못 해도 2~30분은 까먹는다. 공항에 이륙할 비행기가 많아서 혼잡할 경우에는 디아이싱 작업구역에도 비행기가 밀리기 때문에 시간 단위로 이륙이 지연될 수 있다. 그냥 게이트에서 받거나 미리 받으면 되지 왜 이렇게 시간을 까먹도록 작업을 하는가 의아해 할 수 있는데, 제빙액과 방빙액이 인체에 유해한 성분을 포함하고 있고 환경오염 문제도 있기 때문에 이러한 화학물질을 수집 처리할 수 있는 구역을 따로 마련해야 하며, 방빙액도 유효 시간인 Holdover Time, 줄여서 HOT라는 제한이 있기 때문에 그 시간을 넘겨서도 이륙을 못 하면 다시 디아이싱을 해야 한다. 따라서 디아이싱과 이륙 사이의 시간을 될 수 있으면 줄이는 게 좋다. 방빙액은 원액을 사용하거나 원액에 일정 비율로 물을 타서 쓰는데, 희석 비율이 높아지면 그만큼 HOT는 줄어든다. 그러나 방빙액 원액은 물에 비하면 당연히 비싸기도 하고, 인체에 독성이 있으며 환경오염 문제도 있다. 또한 기온이 낮을수록 HOT가 줄어들고 눈이 오거나 하면 더욱 줄어든다. 따라서 디아이싱과 이륙 사이 시간을 줄이기 위해 손님을 다 태우고 이륙을 위해 택싱을 하는 과정에서 별도로 마련된 디아이싱 패드로 와서 작업을 한다.

비행기는 영하 수십 도의 높은 하늘 위를 잘만 날아다니는데 왜 디아이싱이 필요한가 싶을 수 있지만, 그 정도로 높은 하늘은 아예 구름 위를 날아다니기 때문에 수분이 거의 없어서 얼음이 생길 일이 없다. 그 정도 고도까지 올라갈 때에는 구름층을 통과하거나 해서 얼음이 붙을 수는 있지만 비행 중에는 엔진이 뿜어내는 뜨거운 공기를 이용한 방빙 시스템이 작동한다. 문제는 이륙할 때다. 이미 얼어붙어 있는 얼음은 방빙 시스템으로는 떼어낼 수 없고, 이륙 과정에서 치명적인 사고를 일으킬 수 있으며, 실제로 여러 건의 추락사고를 일으킨 원인이 되었다.[3]

항공기의 디아이싱은 주로 날개(수평날개는 물론 수직날개도 포함), 엔진의 흡입구, 피토관, 조종실의 유리창을 대상으로 한다. 날개는 양력을 내기 위해 최적의 모양을 하고 있으며, 그 표면을 공기가 매끄럽게 흘러 나가야 충분한 양력을 얻을 수 있다. 그런데 날개 표면에 얼음이 붙으면 날개의 형상을 변형시키는 결과가 되며, 표면도 매끄럽지 못하게 되어 날개 표면의 공기 흐름이 바뀌는 결과를 낳는다. 그 결과 이륙 과정에서 양력을 충분히 얻지 못해서 추락할 수도 있다. 1982년의 에어플로리다 90편 추락 사고, 1989년의 에어온타리오 1363편 추락사고와 대한항공 175편 추락 사고가 바로 날개에 붙은 얼음이 원인인 된 사고다.

피토관에 얼음이 얼었을 때에도 위험하다. 피토관은 속도[4]와 압력을 측정하기 때문에 항공기의 각종 조종장치에 중요한 데이터를 제공한다. 잘 날아가고 있던 비행기의 피토관에 얼음이 얼어서 추락하는 사고도 있는데[5] 이륙 과정에서 피토관에 얼음이 붙어 있다면 그야말로 재앙이다. 엔진 흡입구 쪽에 얼음이 얼어 있다면 엔진이 공기를 흡입할 때 얼음이 떨어져 나가면서 엔진에 손상을 일으킬 수 있으므로 이 역시 디아이싱을 필요로 한다. 조종실의 유리창은 얼음이 붙어 있으면 시야를 방해하므로 당연히 제거 대상이다.

디아이싱을 할 때에는 엔진을 끄는 것이 원칙이다. 엔진이 뿜어내는 세찬 바람 때문에 작업 장비와 작업자가 위험에 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인체에 유해한 제빙액이나 방빙액이 기내로 유입될 수 있는 위험이 있다. 디아이싱 패드에 도착해서 엔진을 끄고, 디아이싱이 끝나면 엔진을 켜는 과정은 당연히 시간을 잡아먹는다. 장비가 엔진 뒤쪽의 기류를 견딜 수 있고 작업자도 충분한 보호를 받을 수 있는 경우, 그리고 항공기 기종이 제빙액과 방빙액이 공기에 섞여 기내로 유입되지 않도록 통제할 수 있는 경우에는 엔진을 켠 상태로 디아이싱을 받을 수도 있다. 인천공항도 일정한 조건을 갖춘 상황에서는 지정된 기종에 한정해서 엔진을 켠 상태로 디아이싱을 받을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엔진을 끄고 디아이싱을 받을 경우에는 평균적으로 빨라야 25분이 걸리는 반면, 엔진을 켠 상태에서는 빠르면 평균 8분이면 되므로 시간이 대폭 줄어든다.[1]

각주

  1. 1.0 1.1 인천국제공항, "인천국제공항항공기 제방빙 매뉴얼 (제6판)", 2021년 12월 6일.
  2. 항공기가 순항고도까지 올라가서 자체 방빙 시스템으로 얼음이 붙는 것을 막을 수 있을 때까지.
  3. 항공 관련 빡빡한 규정은 상당수가 실제 사고를 바탕으로 소 잃고 외양긴 고치는 식으로 만들어졌다. 오죽하면 '모든 비행규정은 피로 쓰였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4. 항공기의 속도는 지면 또는 해수면을 기준으로 한, 즉 지도 위에 어떤 위치에 있는가를 기준으로 하는 지상 속도(ground speed)와 실제 대기 속을 날아가고 있는 항공기의 속도를 뜻하는 대기 속도(air speed) 두 가지가 있다. 지상 속도는 GPS를 사용해서 측정하며 대기 속도는 피토관으로 측정한다. 대기 속도는 맞바람 또는 뒷바람의 영향을 받기 때문에 두 가지 속도는 보통 일치하지 않는다. 기내 엔터테인먼트의 에어쇼에 표시되는 속도는 지상 속도다.
  5. 2009년에 잘 날아가던 비행기가 대서양 한복판에서 추락한 에어프랑스 447편 추락사고가 대표적인 사고인데, 다만 이 사고는 피토관의 오류는 잠깐이었고, 곧 얼음이 녹았는데도 부기장의 잘못된 판단으로 추락에 이른 사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