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채무불이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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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그대로 국가가 채무를 이행하지 않겠다고 선언해 버리는 것. 디폴트라는 말을 많이 쓰고 우리나라에서는 국가부도사태라는 말도 자주 쓴다. 한마디로 국가가 망했어요. 모라토리엄은 채무 상황을 일방적으로 연기하는 것, 즉 갚기는 갚을 건데 갚는 날짜를 좀 미루겠다는 뜻이라면, 디폴트는 아예 지금도 돈이 없고 앞으로도 돈이 없을 거라서 빚을 못 갚겠다고 배째라를 외치는 것에서 차이가 있다. 모라토리엄의 경우 대규모 재해와 같은 예기치 못한 사건으로 일시적으로 벌어질 수도 있지만 디폴트는 정부 재정이 망가질 때까지 망가졌다는 뜻이다.

국가는 다양한 이유로 국채를 발행한다. 국채는 정부가 발행하는 채권이므로 정부가 지급 책임을 진다. 정부가 돈이 필요하면 돈을 마구 찍어내면 되는 거 아니냐... 하고 할 수도 있지만 그랬다간 엄청난 인플레이션으로 나라 전체 경제가 결딴난다. 짐바브웨가 대표적인 경우.[1] 돈이 필요한 경우가 아니어도 침체기에 경기 부양을 위해서 풀어놓은 돈을 다시 거둬들이기 위해서도 통화안정증권이라는 국채를 발행한다.

아무튼 다양한 이유로 발행한 국채가 이제 지급 만기가 되어 원금과 이자를 줘야 하는데 정부가 돈이 없다면? 다시 국채를 발행하려고 해도 사는 사람이 있을 리가 없다. 친하고 돈많은 나라로부터 급하게 돈을 꾸든가, IMF로부터 구제금융을 받든가 해야 하는데 최후의 수단은 그냥 배째라... 그게 국가채무불이행이다. 즉 정부 스스로 "우리는 신용불량자요!" 하고 선언해 버리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우리나라의 IMF 외환위기를 '국가부도'라고 종종 표현하는데, 정확히는 정말 부도가 난 건 아니고, 부도 위기에 몰려서 구제금융을 받은 것이다. 모라토리엄이나 디폴트까지 가면 진짜로 국가가 부도 난 것.

공식적으로 디폴트는 민간 부채를 상환하지 못했을 때 성립된다. 즉 IMF 구제금융과 같은 공공 성격의 부채를 상환하지 못했을 경우는 디폴트가 아니라 연체라고 부른다. 일종의 말장난.

아예 돈을 안 갚아버리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랬다가는 정말 그 나라는 미래가 없다. 나라를 재건하려면 결국은 국채를 발행해서 돈을 끌어와야 하는데, 돈도 안 갚는 나라의 국채를 누가 사겠나? 보통은 부채스와프라는 방법으로 협상을 가장한 협박을 한다. 다수의 국채를 가지고 있는 투자자에게 '새 국채 줄게 헌 국채 다오' 하고 제안을 하는 것이다. 단순히 만기가 돌아온 채권을 연장해 달라는 데서 그치는 게 아니라, 탕감을 해달라고도 한다. 예를 들어 구 채권 1 달러를 새 채권 0.3 달러로 쳐서 바꿔주겠다, 이런 식이다. 국채 1억 달러를 가지고 있다면 새 국채 3천만 달러로 교환해 주겠다는 것이니 7천만 달러를 손해보는 데다가 새 채권으로 바꾸니 만기도 연장되는 꼴이지만 그래도 그거라도 건져야지... 하는 생각에 울며 겨자먹기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다. 이쯤되면 협상이 아니라 협박에 가깝다.

물론 그 대가도 혹독하다. 일단 국채의 신용도[2]가 바닥으로 추락하므로 이후에 발행되는 국채는 금리를 엄청 높이지 않는 한은 살 놈이 없다. 그 나라의 기업들 역시도 채권 발행이나 은행 대출 같은 자금 조달에 문제가 생긴다. 채권 중에서 가장 안전한 게 국채인데, 국채가 부도가 나버렸으니 그 나라 기업의 회사채가 무사하면 이상한 일이다. IMF 구제금융이든 뭐든, 제대로 된 나라라면 그냥 디폴트나 모라토리엄으로 배째라 하지 않고 어떻게든 부도를 막으려고 하는 이유도 국채 하나로 끝나는 게 아니라 기업의 돈줄까지 막혀버리기 때문이다.

어떤 나라가 디폴트를 선언해 버리면 그 나라 국채를 가진 채권자들은 그냥 눈뜨고 당하는 걸까? 좀 복잡하다. 만약 나라 안의 문제라면 소송을 해서 재산이나 소득을 압류한다든가 국제 간 문제라고 하더라도 관할권이 있는 나라의 법원에 소송을 낸다든가 할 수 있는데 먹튀의 주체가 국가라면 까다로워진다. 디폴트를 내지른 해당 국가의 법원이 채권자 편을 들리는 만무하니 말이다. 만약 채권자의 나라에 먹튀한 나라의 자산이 있으면 소송을 통해 압류하는 방법이 있다. 꼭 자국이 아니더라도 소송을 받아주는 나라라면 가능은 하다. 그러나 시간과 비용이 워낙 엄청나니 정말 쉬운 문제가 아닌 건 분명하다.

주요한 사례들

2002년에는 아르헨티나가 디폴트를 선언한 후, 부채스와프를 제안해서 92.1%가 이를 받아들였으나... 엘리엇매니지먼트한테 제대로 걸려서 10년 이상을 소송전에 시달리고 군함까지 압류당하는 굴욕을 겪었다. 자세한 내용은 엘리엇매니지먼트 항목 참조. 2020년에는 코로나-19 사태로 경제가 크게 위축되는 바람에 또 다시 디폴트를 선언했다. 21세기 들어서 벌써 두 번째 디폴트 선언이다.[3]

2015년 7월 1일, 그리스국제통화기금구제금융을 만기일까지 상환하지 못함으로써, 사실상 디폴트 상태가 되었다. 여기서 '사실상'이라고 말하는 것은, 공식적으로 디폴트는 민간 채무를 상환하지 못했을 때 성립되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민간이든 IMF선진국으로 분류되는 국가 중 만기일까지 부채 상환을 못 한 사례는 이번이 처음이다. 공식적으로는 디폴트가 아닌 연체 상태로 분류되지만 국제적인 분위기는 그거나 그거나... 뭐가 달라? 어쨌거나 국가부도 난 거지 뭐... 다.

각주

  1. 다만 요즈음 들어 많이 얘기가 나오는 현대통화이론(MMT)에 따르면 짐바브웨 같이 경제가 엉망진창인 경우가 아니라면 정부는 돈을 무제한 찍어내도 된다고 본다. MMT는 애초에 화폐의 발행 목적을 기존 경제학과는 다르게 본다.
  2. 우리가 흔히 '국가신용등급'이라고 하는, 국제 신용평가 기관이 각 나라마다 매기는 신용등급은 바로 이 국채의 신용등급이다. 즉 국채가 부도날 위험이 어느 정도인지에 따라 등급을 매기는 것.
  3. "Argentina in default for second time this century", Deutsche Welle, 22 May 2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