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채: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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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수 요리의 하나. 채소와 고기를 길게 채썰어서 볶은 다음, 삶은 당면과 함께 버무린다. 다만 [[고추잡채]]나 [[부추잡채]]에는 당면이 들어가지 않는다. 사실 잡채라는 말을 한자로 풀어보면 雜菜, 곧 이것저것 채소를 섞은 것이다. 당면은 채소가 아니므로 잡채에 들어가도 되고 안 들어가도 된다. <s>그러면 [[피자]]는 [[미국]]에서는 [[채소]]니까 잡채에 들어가도 되겠네?</s>
국수 요리의 하나. 채소와 고기를 길게 채썰어서 볶은 다음, 삶은 당면과 함께 버무린다. 다만 [[고추잡채]]나 [[부추잡채]]에는 당면이 들어가지 않는다. 사실 잡채라는 말을 한자로 풀어보면 雜菜, 곧 이것저것 채소를 섞은 것이다. 당면은 채소가 아니므로 잡채에 들어가도 되고 안 들어가도 된다. <s>그러면 [[피자]]는 [[미국]]에서는 [[채소]]니까 잡채에 들어가도 되겠네?</s>


명절에 [[]]과 함께 꼭 만드는 음식 가운데 하나다. 가끔 구내식당 반찬으로도 나오긴 하지만 먹고 싶을 아무 때나 먹기는 의외로 힘들다. 음식점에서 먹으려면 [[중국집에 가는 게 가장 쉽다. 잡채밥도 팔고 잡채도 판다. 우리가 아는 잡채와 크게 다르지도 않다. 더 기름지고 고춧가루가 들어가는 게 보통이라는 정도가 차이라면 차이다.
[[당면]]이 [[중국]]에서 들어온 것이기도 하고, [[중국집]]에 가면 [[잡채]]를 파니까 이게 중국 음식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렇지는 않고, 잡채를 만들어 먹는 것은 조선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일사기문>이라는 책을 보면 "이충(李沖)은 잡채를 헌납하여 호조판서에 오르고, 한효순(韓孝純)은 산삼을 바치고 갑자기 정승이 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산삼정승을 사람들은 다투어 흠모하고(山蔘閣老人爭慕) / 잡채상서의 세력은 당할 수가 없네(雜菜尙書勢莫當)"는 세간의 풍자싯구도 소개하고 있다. <광해군일기>에도 이충에 대해서 "그는 진기한 음식을 만들어 사사로이 궁중에다 바치곤 했는데, 왕은 식사 마다 반드시 이충의 집에서 만들어오는 음식을 기다렸다가 수저를 들곤 했다"는 기록이 있었다고 한다. 잡채를 이충이 개발한 것인지는 모르지만 이충이 잡채로 광해군의 환심을 산 것은 이 당시 꽤나 널리 알려진 이야기인 모양이다.<s>요즘 쉐프들은 전부 다 영의정 한 번씩 해먹었겠네.</s> 그 이후에도 잡채 조리법에 관한 기록들이 종종 나오지만 조리법이 상당히 다르다. 여러 가지 채소와 고기를 양념하고 볶는다는 기본 방법만 같고, 양념도 다르거니와 무엇보다도 [[당면]]이 들어가지 않았다. 당면은 개화기에 들어온 거라서 당면 들어간 잡채는 한참 뒤다. 전통 방식으로 만드는 잡채는 재료가 호화스러워서 서민들은 엄두도 못내는 음식이다. 여기에 당면을 넣으면 맛도 괜찮고, 채소나 고기를 줄여서 값도 싸지면서 양은 푸짐하게 늘릴 수 있으니, 누가 개발한 것인지는 몰라도 이제는 누구나 잡채에는 당연히 당면이 들어간다고 생각한다.


명절에 고향집에 갔다가 돌아올 때가 되면 어머니가 주섬주섬 싸 주시는 음식 가운데 잡채도 낀다. 한 가지 좋은 점은 볶거나 전제레인지로 데우면 먹을만하다는 것.
이제는 명절에 [[전]]과 함께 꼭 만드는 음식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특히 아이들은 정말 좋아한다. <s>다만 [[채소]]는 골라내고 [[당면]]하고 [[고기]]만 열나게 먹는 게 문제.</s> 가끔 [[구내식당]] 반찬으로도 나오긴 하지만 먹고 싶을 때 아무 때나 먹기는 의외로 힘들다. 음식점에서 먹으려면 [[중국집]]에 가는 게 가장 쉽다. 잡채밥도 팔고 잡채도 판다. 우리가 아는 잡채와 크게 다르지도 않다. 더 기름지고 [[고춧가루]]나 [[고추기름]]을 써서 조금 맵게 만다는 곳이 많다는 정도가 차이라면 차이다. 좀 더 고급스러운 잡채로는 [[고추잡채]]나 [[부추잡채]]도 파는데 여기에는 당면이 안 들어간다. 우리나라에는 [[당면]] 대신 [[콩나물]]을 쓴 콩나물잡채가 있다. 이 때에는 머리는 따버리고 뿌리만 쓴다.
 
명절에 고향집에 갔다가 돌아올 때가 되면 어머니가 주섬주섬 싸 주시는 음식 가운데 잡채도 낀다. 식으면 당면이 불어서 맛이 없어지지만 볶거나 전제레인지로 데우면 다시 먹을만해진다.

2015년 7월 10일 (금) 04:40 판

국수 요리의 하나. 채소와 고기를 길게 채썰어서 볶은 다음, 삶은 당면과 함께 버무린다. 다만 고추잡채부추잡채에는 당면이 들어가지 않는다. 사실 잡채라는 말을 한자로 풀어보면 雜菜, 곧 이것저것 채소를 섞은 것이다. 당면은 채소가 아니므로 잡채에 들어가도 되고 안 들어가도 된다. 그러면 피자미국에서는 채소니까 잡채에 들어가도 되겠네?

당면중국에서 들어온 것이기도 하고, 중국집에 가면 잡채를 파니까 이게 중국 음식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렇지는 않고, 잡채를 만들어 먹는 것은 조선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일사기문>이라는 책을 보면 "이충(李沖)은 잡채를 헌납하여 호조판서에 오르고, 한효순(韓孝純)은 산삼을 바치고 갑자기 정승이 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산삼정승을 사람들은 다투어 흠모하고(山蔘閣老人爭慕) / 잡채상서의 세력은 당할 수가 없네(雜菜尙書勢莫當)"는 세간의 풍자싯구도 소개하고 있다. <광해군일기>에도 이충에 대해서 "그는 진기한 음식을 만들어 사사로이 궁중에다 바치곤 했는데, 왕은 식사 때 마다 반드시 이충의 집에서 만들어오는 음식을 기다렸다가 수저를 들곤 했다"는 기록이 있었다고 한다. 잡채를 이충이 개발한 것인지는 모르지만 이충이 잡채로 광해군의 환심을 산 것은 이 당시 꽤나 널리 알려진 이야기인 모양이다.요즘 쉐프들은 전부 다 영의정 한 번씩 해먹었겠네. 그 이후에도 잡채 조리법에 관한 기록들이 종종 나오지만 조리법이 상당히 다르다. 여러 가지 채소와 고기를 양념하고 볶는다는 기본 방법만 같고, 양념도 다르거니와 무엇보다도 당면이 들어가지 않았다. 당면은 개화기에 들어온 거라서 당면 들어간 잡채는 한참 뒤다. 전통 방식으로 만드는 잡채는 재료가 호화스러워서 서민들은 엄두도 못내는 음식이다. 여기에 당면을 넣으면 맛도 괜찮고, 채소나 고기를 줄여서 값도 싸지면서 양은 푸짐하게 늘릴 수 있으니, 누가 개발한 것인지는 몰라도 이제는 누구나 잡채에는 당연히 당면이 들어간다고 생각한다.

이제는 명절에 과 함께 꼭 만드는 음식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특히 아이들은 정말 좋아한다. 다만 채소는 골라내고 당면하고 고기만 열나게 먹는 게 문제. 가끔 구내식당 반찬으로도 나오긴 하지만 먹고 싶을 때 아무 때나 먹기는 의외로 힘들다. 음식점에서 먹으려면 중국집에 가는 게 가장 쉽다. 잡채밥도 팔고 잡채도 판다. 우리가 아는 잡채와 크게 다르지도 않다. 더 기름지고 고춧가루고추기름을 써서 조금 맵게 만다는 곳이 많다는 정도가 차이라면 차이다. 좀 더 고급스러운 잡채로는 고추잡채부추잡채도 파는데 여기에는 당면이 안 들어간다. 우리나라에는 당면 대신 콩나물을 쓴 콩나물잡채가 있다. 이 때에는 머리는 따버리고 뿌리만 쓴다.

명절에 고향집에 갔다가 돌아올 때가 되면 어머니가 주섬주섬 싸 주시는 음식 가운데 잡채도 낀다. 식으면 당면이 불어서 맛이 없어지지만 볶거나 전제레인지로 데우면 다시 먹을만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