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비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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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vignon.

프랑스 남동부의 프로방스알프코트다쥐르에 속한 도시.

북쪽으로는 론강이 흐르고 남쪽으로는 뒤랑스강이 흘러서 도시의 남북 경계를 이룬다. 사실 이 두 강은 아비뇽 서쪽 끝에서 합쳐져서 남쪽으로 방향을 튼 다음 바다로 향한다.

2015년 기준으로 인구 9만 2천 명 정도인 중소 규모의 작은 도시지만 교외 지역까지 포함한 아비뇽 권역은 33만 명을 넘어간다. 도시는 작지만 역사적으로는 아주 중요한 곳이라서 이름 정도는 아는 사람들이 많다. 14세기에 로마 교황이 7대에 걸쳐 아비뇽에 머무르게 된 아비뇽 유수의 바로 그 무대이기 때문. 그 이후에도 1791년까지는 교황 관할이었다가 프랑스 혁명이 터지고 혁명정부가 통치권을 가져간 이후 오늘에 이르고 있다.

아비뇽 성벽.

아비뇽에는 당시의 교황청(Palais des Papes)을 비롯해서 관련된 건축물이나 유적들이 시내 곳곳에 있으며, 시내는 지금도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다.

아비뇽 중앙역에서 바라본 아비뇽 성벽.

아마도 아비뇽으로 간다면 십중팔구 TGV를 타고 아비뇽 TGV역을 거쳐 아비뇽 중앙역(아비뇽 상트르)에서 내릴 텐데, 역 바깥으로 나가면 크고 아름다운 성벽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올 것이다. 성벽 바깥 둘레를 한 바퀴 돌면 약 4.7 km 정도다. 그 안에 있는 거대한 교황청과 각종 가톨릭 관련 건물과 문화재들, 고풍스러운 분위기가 확확 뿜어 나오는 시내의 오밀조밀한 골목들만 돌아다녀도 관광 본전은 뽑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교황청을 비롯한 주요 유적은 다 도시 중심부에 있고 도시 중심부의 규모도 작으므로 하루 날 잡아서 당일치기 관광을 해도 무리가 없다. 그리고 프랑스 와인 중 나름 한 세력 형성하고 있는 지방의 도시 중 하나이므로 와인을 좋아한다면 꼭 론 와인 맛은 보도록 하자.

기후는 남프랑스답게 여름에는 30도 중반에 이를 정도로 덥고 겨울에는 춥다. 내륙에 있기 때문에 일교차가 큰 편이고 열대야는 없다. 여름에는 건조한 편이라서 한국의 여름과 비교하면 기온은 더 높아도 불쾌지수는 훨씬 덜하다. 그래서인지 집이나 숙소에 에어컨 없는 데가 은근히 많은데, 여름이 건조한 편이라서 실내에서 햇볕 안 들어오게 창문 가리고 있으면 한여름에도 별로 안 덥기는 하다.

교통

파리에서 온다면 십중팔구는 TGV를 타고 온다. 파리 리옹역에서 출발하면 열차마다 정차역 차이는 있지만 아비뇽 TGV역 환승시간을 감안해도 2시간 40분~3시간 정도면 아비뇽 중앙역에 도착한다. 다만 거의 모든 열차는 아비뇽 TGV역에 정차하는데 여기는 허허벌판 분위기다. 택시 혹은 우버를 타거나 렌터카를 빌리지 않는다면 지역 열차인 TER로 갈아타고 아비뇽 중앙역으로 온다. 아비뇽 중앙역에 서는 TGV는 아침 점심 저녁에 한 번씩 꼴밖에 없는 데다가 이 열차들은 정차역이 많은 편이라 갈아타는 불편이 없는 것 정도 빼면 시간 이득은 별로 없다. 프랑스 열차는 정시성이 굉장히 좋은 편이고 때로는 1분 정도 일찍 출발하는 일도 있으므로 여유를 가지고 도착해야 낭패를 안 본다. 일부 열차는 파리 샤를드골공항역에서 환승 없이 바로 아비뇽으로 가는 것도 있다.

항공편으로 온다면 일단 파리 직항편으로 온 다음 TGV 혹은 BlaBlaBus[1] 같은 장거리 버스를 타고 들어오는 방법이 있고[2], 파리에 일정이 없다면 유럽 항공사의 경유편을 활용하고 곧바로 리옹이나 마르세이유로 들어오는 방법도 있다.[3] 루프트한자, 터키항공을 비롯한 여러 유럽 항공사들이 이쪽으로 항공편을 넣고 있다.

아비뇽으로는 항공편이 없으므로[4] 항공편이 있는 가장 가까운 도시가 저 둘 중 하나다. 아비뇽으로부터 거리로는 마르세이유 쪽이 리옹에 비해 3분의 1 수준으로 훨씬 가깝지만 시간만 맞으면 오히려 리옹에서 오는 게 10분 정도 시간이 덜 걸리는데, 마르세이유공항에서는 지역 열차인 TER를 타고 와야 하지만 리옹TGV로 오기 때문에 공항 옆 리옹-생텍쥐페리역에 TGV가 정차한다. 아비뇽 TGV역에서 아비뇽 중앙역으로 환승을 한 번 해야 하지만 그래도 시간만 맞으면 10분 절약된다. 물론 TGV 요금이 더 비싸고 환승을 한 번 더 해야 하는 귀찮음에 비하면 10분 차이는 큰 의미가 없으니, 마르세이유 쪽이 이점이 많다.

중소도시인만큼 대중교통은 버스 중심이다. 트랑스데브(Transdev)라는 프랑스의 대형 교통 기업의 그랑 다비뇽(Grand Avignon, 그레이터 아비뇽) 법인이 오리조(Orizo)라는 브랜드[5]로 대중교통망을 운영하고 있다. 다만 아비뇽에 간다면 보통은 다니는 곳도 시내 위주고 숙소도 시내 인근이므로 버스 탈일이 많지는 않다. 관광객들을 위한 시내 순환버스는 무료니까 이걸 잘 이용해 보자. 또한 시내에 마치 코끼리열차를 연상시키는 관광객용 버스가 돌아다니는 모습도 볼 수 있다. 그밖에는 택시나 우버를 이용할 수 있다. 2019년에는 트램 노선도 개통했고 노선 하나를 추가할 예정이다.

가볼 만한 곳

아비뇽 교황궁

아비뇽 유수로 유명한 곳인만큼 당연히 메인 관광지는 이 시기에 만들어진 크고 아름다운 교황궁(Palais des Papes)이다. 교황이 여기에 머물렀던 기간은 70년 남짓에 불과하지만 한 시대의 교황청이었고 18세기 말까지는 교황이 직접 관할하던 곳인 만큼 거대한 건축물과 조각품들이 즐비하게 굉장한 존재감을 과시한다. 지금이야 중소도시지만 100년도 안 되는 짧은 시기였어도 유럽의 중심이었던 곳인 만큼 주변에 박물관도 즐비하다.

가장 번화한 곳은 아비뇽 중앙역 앞으로 쭉 뻗어 있는 도로인 쟝-조레스 쿠르다. 이쪽에 은행, 상점, 음식점들이 줄지어 모여 있다. 하지만 아비뇽 자체가 인구가 10만도 안 되는 작은 도시다 보니 여기에 대단한 쇼핑 거리가 있을 거라고는 기대하지 말자. 성벽 밖으로 벗어난 외곽에 쇼핑센터인 미스트랄 7이 있긴 하지만 차 없으면 가기도 불편하고 어차피 도시 규모도 작아서 여기도 그리 큰 편은 아니다. 시내 한복판에는 재래시장인 알 다비뇽(Les Halles d'Avignon)이 있다. 아랍 이름에 자주 나오는 그 '알'이 아니다. Hall은 프랑스어로 '알'로 발음한다. 프랑스어에서 h는 묵음이기 때문. 실내시장으로 청과 가게, 정육점, 향신료 가게, 와인 가게, 빵집을 비롯한 여러 가게들이 자리 잡고 있으며 카페와 바도 있으니 지역의 정취를 느끼도록 한번쯤 가볼만 하다. 가게에서 해산물을 사서 옆에 있는 바에 가서는 술만 시켜서 먹을 수도 있고 돈을 주고 해산물 요리를 해 주기도 한다. 아비뇽판 초장집? 매일 새벽 6시부터 오후 2시까지 영업하며, 일요일에도 문을 열지만 일부 월요일이나 공휴일에는 쉰다. 이 주위에 노천카페, 슈퍼마켓, 바, 빵집을 비롯한 많은 상점들이 포진하고 있다.

문화 및 이벤트

와인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알아두고 갈 도시다. 아비뇽 유수 때 교황과 같이 온 로마인들이 이 일대에서 포도를 기르고 와인을 만들면서[6] 그 전까지는 이탈리아 와인에 비해 품질도 존재감도 변변치 않았던 프랑스 와인이 고급화의 길을 걸었고 결국 이탈리아를 제치고 유럽 와인 맹주 자리에 올랐다. 그야말로 우리가 좋아하는 프랑스 와인의 원조격이다. 그래서 아비뇽 일대는 론 와인, 특히 남부 론 와인의 본진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당장에 남부 론 와인 중에 가장 명성을 날리는 샤토뇌브-뒤-파프(Châteauneuf-du-pape)가 아비뇽 바로 북쪽에 있다. 이 이름 자체가 교황(pape)의(du) 새로운(neuf) 성(Château)이라는 뜻이다.

7월에 열리는 공연예술 축제인 아비뇽페스티벌과 아비뇽오프페스티벌이 유명하다. 원래는 아비뇽페스티벌이 먼저 시작했지만 지나치게 경직되고 제한된 분위기에 젊고 자유분방한 예술가들이 반발하여 만들어진 게 '오프'(off) 페스티벌이다. 기존의 아비뇽페스티벌은 '인'(in)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같은 시기에 열리는 두 페스티벌은 지금은 오프 페스티벌이 훨씬 규모가 커서 아비뇽페스티벌은 존재감이 확 떨어져 있지만, 그래도 명맥은 유지하고 있으며 교황청을 비롯해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대형 공연장들을 사용하고 있다. 그냥 둘을 구분 안하고 기존 페스티벌을 '공식' 아비뇽페스티벌, 그리고 나머지를 off로 보기도 하지만 둘은 주최 조직이 다르므로 별개 행사로 보는 게 맞다. 정말로 이 기간에는 어마어마하게 많은 공연이 열리고 그에 따른 홍보전도 치열해서 시내는 완전히 포스터로 도배가 되어버린다. 멋도 모르고 온 관광객들이 포스터 도배에 어안이 벙벙할 정도.

이 시기에는 예술가와 관광객들이 엄청나게 몰려들기 때문에 숙박 구하기도 힘들고 값도 많이 뛴다. 페스티벌 보러 올 게 아니면 이 시기는 피해서 관광을 오는 게 낫다. 물론 단순 관광 목적이라면 당일치기로 와도 되는 곳이므로 페스티벌의 떠들썩한 분위기를 느껴보거나 여유가 되면 공연이라도 한 편 보면 확실히 독특한 체험일 것이다. 렌터카를 이용할 경우에 주최측에서 행사에 필요한 차량에게만 발급하는 스티커가 없으면 오후에는 시내 진입을 못한다는 점에 유의하자.

그밖에

중소도시이고 시내도 작은 편이라 치안은 안전한 편에 속한다. 남쪽에 있는 프랑스 제2의 도시인 마르세이유프랑스에서 가장 치안이 나쁘기로 손꼽히는 것과는 차이가 난다. 밤늦게 으슥한 곳만 피하면 안전하다. 문제는 시내에도 으슥한 골목길이 너무 많아서... 다만 해진 뒤만 아니면 골목길이라고 해도 딱히 위험한 곳은 별로 없다. 어디든 외국 가서 밤에 으슥한 데 돌아다는 건 절대 피해야 한다.

대도시는 아닌지라 영어가 잘 통하는 편은 아니다. 흔히 프랑스인은 영어를 알아도 일부러 안 한다는 말도 있지만 그건 옛날 얘기고, 영어가 안 통하면 정말 몰라서 안 통하는 것이다. 영어를 알아도 안 한다기보다는 프랑스인들이 영어 공부를 열심히 안 하기 때문이라고 보는 편이 맞다. 오히려 어설픈 프랑스어로 얘기하면 눈치채고 영어로 대답해 주는 사람들도 꽤 있다. 안내 표지판에 영어가 없는 곳이 많아서 불편하긴 하지만 그래도 상점에는 최소한 간단한 영어는 그럭저럭 통하는 편이라서 어차피 너도 간단한 영어가 한계잖아. 관광 다니기에는 크게 불편하지 않다.

피카소의 유명한 작품 중에 <아비뇽의 처녀들>이라는 그림이 있다. 아비뇽을 잘 모르는 사람들 중에 아비뇽 얘기가 나오면 '아, 아비뇽의 처녀들?' 하고 반응한다. 그런데 작품 속 아비뇽은 스페인 바르셀로나에 있는 홍등가인 '아비뇽 거리'를 뜻하는 것으로 여기랑은 관계가 없다. 아비뇽 사람들은 오히려 불쾌해 할 수 있으니까[7] 아비뇽 사람들 앞에서는 아비뇽과 <아비뇽의 처녀들>을 연관짓는 얘기는 하지 말자.

각주

  1. 예전에는 Ouibus였는데 이름이 바뀌었다.
  2. 다만 파리에서 버스편으로 온다면 빨라도 9시간 넘게 걸린다. 몸은 축나도 야간버스로 숙박비 절약하겠다면 그것도 방법이긴 하지만.
  3. 프랑스솅겐조약 가입국이므로 프랑크푸르트암스테르담같은 다른 솅겐조약 가입국 도시를 경유해서 오면 경유지에서 입국심사를 받은 후 프랑스로 가는 항공편을 국내선처럼 이용할 수 있다.
  4. 아비뇽에도 아비뇽-프로방스공항이 있긴 하지만 플라이비(FlyBe)라는 저가항공사에서 계절편으로 사우샘프턴버밍엄 노선을 운항하는 게 전부다. 공항은 프랑스인데 항공편은 죄다 영국 노선.
  5. 예전에는 TCRA였다.
  6. 가톨릭 미사에는 와인이 쓰이기 때문에 특히 가톨릭의 본진 교황청은 좋은 와인이 아주 중요했다.
  7. 예전에 한국과 일본에서 목욕탕을 가장한 퇴폐업소인 '터키탕'이 유행한 적이 있었는데, 1980년 중반에 튀르키예(당시는 터키) 측의 항의로 일본은 '소프란도'로 이름이 바뀌었고 한국도 1996년경에 튀르키예 대사관 측의 공식 항의로 '증기탕'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당시 대사관이 보낸 항의 서한에는 "튀르키예에서 매음굴을 한국관이라고 하면 당신들 기분이 좋겠냐"고까지 할 정도였다. 아비뇽 사람들 앞에서 <아비뇽의 처녀들> 얘기를 꺼내면 그냥 허허 웃어넘기는 사람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기분이 좋을 리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