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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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어로는 폐계(廢鷄)라고 하며, 폐닭 요리가 유명한 평택에서는 '폐계닭'이라고 부르기도 하지만 鷄가 '닭 계'자이므로 폐계닭은 겹말이다.

늙은 닭을 뜻하는데, 보통은 알을 낳을 능력이 사라진 산란계 닭을 뜻한다. 사람으로 치면 폐경기, 즉 노인이라기보다는 중년이 된 암탉으로, 대략 생후 2년이 지나면 달걀 낳는 능력이 떨어지기 시작한다. 또한 알껍질도 약해져서 깨지기 쉬워진다. 초기에는 사료에 칼슘성분을 추가하는 방법이 있지만 점점 나이가 들면 칼슘 보충으로도 한계가 있다. 완전히 달걀을 낳지 못하는 정도까지 안 가더라도 산란 능력이 어느 이하로 떨어지면 그냥 새 닭으로 교체하는 게 낫기 때문에 계속 기를 이유가 없다. 폐닭은 잡아서 고기로 쓴다. 아예 더 늙은 것은 '노계'라고 부르는데, 실제로는 산란계 쪽은 폐계와 노계를 그다지 구분하지 않고 쓰고 있다. 농장주로서는 폐계가 된 닭을 굳이 더 길러서 진짜 노계가 될 때까지 살려둘 필요가 없다. 우리나라에서는 보통 75주령 이상 된 산란계는 산란율이 저하되어 노계로 취급하여 도태시킨다.[1]

삶으면 고기가 무지하기 질기기 때문에 그냥 삶아서는 먹기 힘들 정도다. 압력솥에 넣고 두어 시간은 푹푹 고아야 먹을 만하다. 그런데 이렇게 푹 고아 보면 쫄깃쫄깃한 육질이 일품이다. 사실 우리나라의 삼계탕이나 치킨에 쓰는 닭은 성체가 아니라 중병아리 수준인데, 육질은 연하지만 세포가 충분히 성숙되지 않아서 맛은 떨어진다. 덩치는 크고 값은 저렴한 편이라 폐닭 백숙에 맛 들이면 이것만 찾는 사람들도 있다. 산란을 위해 품종개량된 닭이라 맛이 없을 것 같지만 조직이 충분히 성숙된 닭고기이기 때문에 중병아리보다 감칠맛이 좋다.

평택시가 폐계닭 요리로 유명하다. 평택과 안성 일대에는 1970년대부터 양계장이 많았는데, 그만큼 알닭도 많이 나왔기 때문에 이를 활용한 요리가 많았던 것. 알닭이란 달걀을 위해 품종을 개량한, 산란계 닭을 뜻한다. 특히 유명한 것은 매운 양념에 양파를 넣고 볶아낸 요리로, 군계폐계닭, 평택폐계닭, 쌍용폐계닭을 흔히 3대 폐계닭 요리점으로 치며 그밖에도 여러 폐계닭 전문점이 포진하고 있다. 지역의 유명한 요리들이 그런 경우가 많지만 유명한 요리점들은 외지인들이 많이 오며 현지 주민들이 애용하는 숨은 맛집들도 있으니 인터넷 검색을 해 보면 이것저것 정보들이 나온다. 폐닭 값이 원래 싼 데다가 성체라서 크기도 크기 때문에 평택 폐계닭 볶음도 가성비가 좋다는 평가가 많다. 2018년에는 평택시에서 '알닭페스티벌'이라는 행사도 개최했다.

육수를 낼 때에는 아주 좋은 재료로, 육수로는 폐닭을 최고로 꼽는 요리사들이 많다. 다 자란 닭은 충분히 익히면 고기도 감칠맛이 좋은데 육수가 맛이 없을 리가 없다. 평양냉면 육수도 원래는 꿩 또는 폐닭을 사용하는 게 정석이었다. 설날에 먹는 떡국도 원래는 꿩 육수를 써야 하지만 꿩은 비쌌기 때문에 서민들은 을 대신 썼는데[2], 여기서 나온 속담이 '꿩 대신 닭'. 조선 순조 20년 정약용이 엮은 <이담속찬(耳談續纂)>이라는 책에도 "꿩을 잡지 못하니 닭으로 그 수를 채우다(雉之未捕 鷄可備數)"라는 구절이 나온다.[3] 닭곰탕도 오래 고기를 고아 만들고 저렴한 요리라는 이미지가 있다 보니 저렴하면서도 육수의 감칠맛이 좋은 폐닭을 주로 사용한다.

육계보다 물량도 적고 소비층도 주로 음식점 위주다 보니 일반인들이 폐닭을 구하기는 어렵다. 슈퍼나 마트 같은 곳에는 없고 일반 정육점에도 거의 없다. 전통시장에 있는 정육점 중에 폐닭을 취급하는 곳이 가끔 있어서 폐닭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이런 곳을 알아뒀다가 단골로 찾는다. 서울이라면 경동시장이 그나마 폐닭이나 노계를 구할 수 있는 곳. 인터넷 쇼핑몰에서도 '노계'로 검색해 보면 폐닭을 구할 수 있다.

해외에도 우리나라 폐닭의 수요가 있다고 한다. 동남아시아는 쫄깃한 식감의 닭고기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어서 베트남을 비롯한 동남아시아로 수출했다고 하는데 심지어는 수출 물량이 많아서 국내에서 품귀현상이 벌어진 적도 있었다고 한다.[4]

각주

  1. 강근호, "산란노계 활용 현황", <월간양계> 2006년 9월호. p. 134.
  2. 잘 날아다니는 꿩보다는 닭이 집에서 키우기도 쉬웠고, 사료 먹는 양이 소나 돼지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적은 데다가 덤으로 달걀도 낳으니 마당이 있는 집이라면 닭 몇 마리 정도는 키우는 게 보통이었다.
  3. "꿩 대신 닭", 한국민속대백과사전 : 한국세시풍속사전.
  4. "폐닭·노계 아닌 ‘알닭’ 맛보세요", 한국농어민신문, 2020년 12월 1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