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케지메

내위키
(이케시메에서 넘어옴)

活け締め.

생선을 잡아서 다듬기 전에 먼저 척수 신경을 죽이는 것. 이키시메 또는 이키지메(活き締め)라고도 하고 신케이지메(神経締め)라고도 하고 줄여서 그냥 시메(締め)라고만 부르기도 한다. 이케지메의 과정을 크게 둘로 나누어서 이키지메 혹은 시메, 그리고 신케이지메(神経締め)로 구별해서 부를 수도 있다. 가장 정확한 개념은 두 용어를 구분해서 쓰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이케시메'라고 표기된 글을 많이 볼 수 있는데 정확히는 이케지메(いけじめ, 活〆)다. 이케(活け)와 시메(締め)가 붙으면서 뒤의 '시'가 '지'로 연음화 된 것인데, 우리나라에서는 두 단어를 따로 따로 생각해서 그런 듯. 말 뜻을 풀이해 보면 活け는 '살아 움직이는' 정도의 뜻이고 締め, 〆는 '마감'이라는 뜻이다. 즉 살아 움직이는 것을 마감시킨다는 뜻 정도로 볼 수 있다. '신케이지메'는 신경을 마감한다는 뜻이 된다.

이유

스트레스 최소화

물고기를 잡아서 를 빼고 해체하는 과정은 당연히 물고기에게는 어마어마한 고통이다.[1] 수산시장에서 생선을 잡을 때 물고기가 계속해서 몸부림치는 장면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이케지메를 하면 물고기를 빠르게 뇌사상태에 빠뜨리고 이어서 신케지메로 척수 신경을 없애버리는 것이므로 물고기가 빠르게 의식을 잃고 고통도 최소화 된다. 가축을 도축할 때 전기충격이나 이산화탄소로 기절을 시킨 다음에 잡는데 물고기를 이케지메 시키면 비슷한 효과가 있다. 물론 순간적으로 격렬한 통증이 있겠지만 활어회를 뜰 때처럼 산채로 그대로 껍데기를 벗기고 를 치는 것보다는 훨씬 덜하다.

몸부림을 치면 내출혈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고, 내출혈이 있으면 고기에서 피비린내가 나고 품질이 나빠지는데[2] 이케지메는 몸부림을 짧고 굵게 최소화함으로써 그런 문제를 막을 수 있다.

사후경직 지연

숙성회를 선호하는 일본에서 이케지메가 발달한 이유. 물고기가 죽고 나면 대략 10분 정도 후부터 사후경직이 시작되고, 약 6시간 정도에서 경직 상태가 최고조에 달했다가 이후 풀어지기 시작한다. 사후경직이 풀어지면 탄력이 점점 떨어지고 식감이 흐물흐물해진다. 이케지메를 하면 사후경직의 속도가 지연되어, 많게는 이틀 넘게까지도 숙성이 가능하다고 한다. 더 이상 호흡을 통한 ATP 공급이 없는 상태에서 근육 속의 ATP 농도가 떨어지면 사후경직이 시작되는데[3], 이케지메를 하면 근육 안에 ATP가 많이 남아서 사후경직 속도가 늦어지는 것. 숙성회의 장점은 숙성 과정에서 활어회에 비하여 감칠맛을 내는 히스티딘과 같은 아미노산효소 작용을 통해 살 안에 많이 생성되는 것인데, 이는 사후 24시간 정도가 되었을 때 최고조에 이르므로 정상 상태에서 사후경직이 풀리는 시간에 비해 많이 늦다. 아미노산이 만들어지는 과정은 효소의 자가분해이므로 이 과정에서 살이 연해지는데[4] 여기에 사후경직까지 풀리면 의 식감이 영 물렁해지므로 이케지메를 통해서 이 미스매치를 없애는 것. 저온으로 숙성시켜서 추가로 지연시키면 사후경직 과정을 2~3일 정도까지 끌 수 있다.

뒤에 좀 더 자세히 나오갰지만 일본에서 이케지메가 발전한 것은 숙성회를 선호했던 문화 때문이 아니라 옛날에는 먼 곳으로 생선을 운송할 때 품질을 보존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일본은 지금도 산지에서 이케지메 처리를 하는 게 보통이다.

숙성회를 좋아하는 일본은 횟감용 생선을 잡으면 이케지메를 하는 것이 거의 당연시되지만 활어회를 좋아하는 한국에서는 이케지메를 보기가 힘들다. 그래서 활어회든 숙성회든 이케지메를 하는 경우가 거의 드물다 보니 숙성회는 씹는 맛이 없고 물컹하다는 인식이 널리 퍼진 건데, 이케지메가 제대로 된 걸 먹어보면 이게 우리가 아는 그 숙성회인가 싶을 정도로 식감의 차이가 크다. 활어회처럼 단단한 맛은 아니지만 물컹하지 않으며 여기에 감칠맛은 확실하게 돋는다. 일본에서는 심지어 연어 같은 수입 생선까지도 노르웨이와 같은 현지에서 이케지메를 해서 실어나른다. 이런 연어회를 파는 곳에서는 메뉴에 자랑스럽게 이케지메 했다고 써 놨다. 그만큼 일본인들에게는 이케지메가 친숙한 개념이고 의 맛에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과정

이케지메의 과정은 크게 이케지메, 그리고 신케이지메 두 단계로 나눌 수 있다.

이케지메

정수리를 뜻하는 노텐(脳天)을 써서 노텐지메(脳天締め), 혹은 그냥 노지메(脳締め)라고도 한다. 생선의 눈 사이를 뚫어서[5] 먼저 뇌수가 있는 부분을 찔러서 뇌를 파괴하고 뇌와 척수를 끊어냄으로써 물고기를 빠르게 뇌사 상태에 빠뜨린다. 눈 사이로 관통시킬 때에는 비교적 짧고 굵은 도구를 사용하는데, 끝이 갈라져 있다. 이 도구를 눈 사이의 급소, 또는 측선을 따라서 눈 옆쪽에 있는 지점에 정확하게 찔러 넣어서 아가미 위쪽에 있는 뇌와 척수 사이를 끊어버리는 것. 크기가 비교적 작은 편인 참돔이나 광어 같은 생선을 주로 이 방법으로 처리한다. 이때 잠깐 격렬하게 몸부림을 치므로 다른 한 손으로 구멍 뚫는 부위 근처를 잘 눌러줘야 한다. 그 다음에는 아가미 안쪽으로 칼을 넣어서 동맥을 끊어 피를 빼낸다. 이케지메를 시전하고 나면 얼음물에 담그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생선살에 열이 오르기 때문에 이를 빠르게 식혀줘야 식감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확하게 급소를 찾아서 찔러야 하고 어종마다 찌르는 위치가 조금씩 차이가 있기 때문에 초보자가 정확히 위치를 찾고 찔러 넣는 건 쉽지 않다. 일단 이케지메에 성공하면 물고기는 뇌사 상태가 되지만 심장 박동은 얼마간 지속되므로 아가미를 따서 물에 담가 피를 뽑아낸다. 이를 치누키(血抜き)라고 한다. 선물용으로 쓴다거나 해서 최대한 모양을 유지하고자 할 때에는 아가미 안쪽을 통해서 찔러서 최대한 바깥에 상처를 안 내는 방법도 있다. 이케지메 → 치누키 → 신케이지메가 정석으로 통하지만 이케지메 → 신케이지메 → 치누키로 가는 사람들도 있다.

참치 같이 덩치가 큰 생선은 이케지메를 하기가 까다로운데, 몸부림이 크기 때문에 다칠 위험도 있고 뇌를 뚫기도 두껍기 때문이다. 그래도 숙련된 기술자들은 참치도 신속하게 이케지메를 한다. 그리고 일본에서는 낚시로 참치를 잡을 때에는 전기충격을 줘서 기절시킨 다음 끌어올리기 때문에 기절 상태에서 이케지메를 하면 좀 덜 힘u 들다.

신케이지메

이케지메를 끝내고 피를 빼낸 물고기를, 이케지메로 뚫은 구멍을 이용하거나 꼬리 쪽에 구멍을 뚫고 이곳에 꼬챙이나 긴 금속줄을 밀어 넣어서 척수를 관통하고 휘젓거나 앞뒤로 쑤셔대면서 척추 쪽 신경을 날려버리는 과정이다. 참돔 같은 물고기는 콧구멍을 통해서 금속줄을 넣으면 이케지메 때 뚫린 구멍을 타고 척추신경 쪽으로 들어간다. 이케지메를 하고 피를 빼면 물고기는 사실상 죽은 상태지만 여전히 몸은 자극에 반응해서 몸부림을 칠 수 있으며[6], 사후 15분쯤 지나면 경련이 시작된다. 물고기의 뇌만이 아니라 몸 전체가 정말로 죽어가는 과정에서 사후경직이 시작되는 것. 이 때 척추의 신경을 없애버리면 경련과 경직을 억제할 수 있기 때문에 근육 속 ATP를 최대한 유지할 수 있다. 큰 생선은 이케지메가 힘들기 때문에 꼬리 쪽을 따서 신케이지메만 하기도 한다. 피를 빠르고 원활하게 빼기 위해서 아가미와 꼬리를 같이 따는 경우도 많다.

아래에 이케지메를 시연하는 몇 개의 동영상이 나오는데 생선을 잡는 장면이 나오니 이런 거 보기 싫은 분들은 주의.

위 동영상은 다양한 물고기를 가지고 이케지메를 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여기서는 2단계로 이케지메를 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먼저 눈의 급소를 찔러서 뇌와 척수를 끊는, 즉 이케지메를 먼저 한 다음 피를 빼고, 그 다음 그 찌른 구멍으로 꼬리 근처까지 닿을 정도로 금속선을 넣어서 척수를 날리는 신케이지메를 보여준다. 첫 번째 이케지메는 뇌사 상태에 빠뜨려서 부림치지 않게 하되 심장 박동은 유지해서 피를 빼기 위해서, 두 번째 신케이지메는 완전히 죽기 전까지 혹은 해체할 때 몸부림치지 않게 하기 위해서라고 보면 된다. 이렇게 처리를 한 다음 운송을 위해 포장하는 방법까지 나온다. 아무래도 좀 잔인해 보일 수 있으므로 주의. 영상을 눈여겨 보면 처음 해보는 사람은 좀 서툴러서 이케지메를 할 때 정확히, 그리고 충분히 뚫지 못해서 물고기가 길게 몸부림치는 것을 볼 수 있다. 숙련된 전문가일수록 빠르고 정확하게 처리해서 신속하게 움직임을 억제한다.

일본에서는 이런 식으로 아예 산지에서 이케지메를 해서 운송한다. 그러면 소비처에 도착해서 를 뜰 때쯤이면 상당히 숙성이 진행되어 맛이 좋은 상태가 된다. 일본에서 이케지메가 발달한 주요한 이유도 산지에서 소비지까지 최대한 맛을 유지하면서 운송하기 위해서였다. 지금이야 고속도로에 항공 운송까지 있으니 먼 거리도 몇 시간 정도면 가지만 옛날에는 하루 온종일로 모자라서 1박 2일 이상이 걸릴 수도 있었다. 차에다가 수조를 달아서 활어 상태로 실어나른다고 해도 장시간을 좁은 수조에서 온갖 진동을 다 받다 보면 스트레스란 스트레스는 다 받는다. 장시간 운송에도 어떻게 하면 생선 맛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인가 고민한 산물이 이케지메라고 할 수 있다.

꼬리 쪽으로 관통시킬 때에는 꼬리 지느러미와 몸통 사이를 칼로 자르는데, 그러면 척추뼈의 단면이 보인다. 그 위 아래로 구멍이 하나씩 있는데 배쪽 구멍은 혈관이고 등쪽 구멍은 척수다. 즉 등쪽 구멍으로 금속줄을 아가미 정도까지 빠르게 밀어 넣은 다음 여러 번 앞 뒤로 당겼다 밀었다 쑤시면서 척수를 해체한다. 주로 참치방어 같은 큰 생선을 처리할 때 이 방법을 쓴다. 이렇게 꼬리를 통하면 척수의 통로가 잘 보이므로 눈 사이를 찌르는 쪽이 난이도가 좀 더 높다. 물론 온전한 모양을 유지하려면 앞쪽을 통해 신케이지메를 하는 게 좋다. 앞쪽으로 하든 뒤쪽으로 하든 측선을 따라 전신의 신경을 다 파괴시켜 줘야 확실하게 신케이지메가 된다.

이케지메를 할 때 사용하는 금속선은 주로 스테인레스제가 많이 쓰이는데, 물고기의 종류에 따라서 굵기가 다르다. 너무 얇은 것을 쓰면 척수가 제대로 제거되지 않고, 너무 굵은 것을 쓰면 잘 들어가지 않거나 주변에 상처를 내기 때문. 형상기억합금으로 만든 것도 많이 쓰인다. 계속 쓰다 보면 구부러지거나 할 수 있는데 형상기억합금으로 만든 건 끓는 물에 담그거나 하면 원래대로 펴진다. 철사를 쓰지 않고 가는 노즐로 높은 수압의 물줄기를 신경 구멍에 쏴서 처리하는 방법도 있다. 참치처럼 큰 생선을 처리할 때에는 신경 통로도 굵기 때문에 나사선 혹은 스프링 모양으로 된 굵은 철사를 사용하기도 한다.

그밖에

물고기 종류 말고도 오징어문어도 이케지메를 한다. 눈 위쪽을 찔러서 중추신경을 파괴하는 방식으로 움직임을 억제할 수 있지만 다리가 꼼지락거리는 것까지 막지는 못한다. 다리 부위는 칼로 썰어도 한동안은 꼼지락거리는지라.

일본은 낚시꾼들 중에도 경력이 좀 되는 사람들은 이케지메를 손수 한다. 유튜브에 가면 일본 낚시꾼들이 이케지메를 하는 영상을 많이 찾을 수 있다.

인간도 신케이지메를 하는 경우가 있다. 죽이려고 그러는 게 아니라 치료 목적이고, 물론 척수를 날리는 건 더더욱 아니다. 바로 치과에서 하는 신경치료. 말은 '치료'라고 하지만 사실은 죽이는 것이다. 치수 속의 신경을 긁어내서 통증을 없애는데, 그러면 그 치아는 죽은 상태가 되고 보철의 도움을 받아 그 자리와 기능만 유지하는 것이다.

각주

  1. 물고기가 사람이나 다른 동물이 느끼는 고통을 느끼는가에 관해서는 과학자들 사이에 여러 이견들이 있긴 하지만 적어도 격렬하게 몸부림을 치는 것으로 보면 어떤 식으로든 강한 스트레스는 있다고 보는 게 옳다.
  2. 이건 육고기도 마찬가지라서 내출혈이 있으면 등급외로 분류한다. 도축을 할 때 전기충격과 같은 방법으로 빠르게 기절시키고 나서 경동맥을 자르는 이유도 고통을 줄이는 것 외에도 몸부림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다.
  3. 일반적으로 살아 있을 때의 85% 농도 이하로 떨어지면 사후경직이 시작되고, 15% 정도에서 최고조에 다다랐다가 이후 풀리기 시작한다.
  4. 육고기는 물고기에 비해 결합조직이 훨씬 강하기 때문에 갓 도축한 고기는 오히려 질기다 싶을 정도이고 며칠씩 숙성을 해도 괜찮지만 물고기는 훨씬 빨리 흐물흐물해진다.
  5. 물고기에 따라서 위치는 조금씩 다르다.
  6. 아예 머리를 잘라버린 상태에서도 신케이지메를 하면 잠깐 몸부림을 치는 모습을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