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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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그대로 신발에 부어 마시는 술을 뜻한다. 하지만 인터넷에서 검색해 보면 신발 관련 주식 얘기만 줄줄이 나온다.

알고 보면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것으로, 기원전 유적에서도 신발 모양의 잔이 발견된 바가 있고, 중부 유럽에서도 신발 모양 잔이 발견된 바 있다.[1]

한국의 신발주

우리나라에서는 90년대 초까지는 군대를 중심으로 있던 문화로 알려져 있다. 군화에 술 부어서 벌컥벌컥 원샷 때리는 무대뽀 문화가 나름대로 신발주의 원조였던 셈. 사실 우리나라의 회식자리 술문화, 특히 군대나 검찰, 언론과 같이 선후배 군기가 군대 수준으로 센 집단의 회식자리에서는 온갖 지저분하거나 엽기적인 술문화가 난무했다. 신발주도 그 중의 하나였던 셈. 그래서인지 군대 문화가 많이 배어 있는 검사들 사이에서도 신발주가 있었다는 이야기들이 있고, 신입생 환영회 때나 군대 가기 전 술자리에서도 신발주가 있었다.[2]

서양의 신발주

신발주 문화는 우리나라에서는 회식 문화의 변화와 함께 슬슬 자취를 감춰가고 있는데 난데없이 2016년 경부터 서양권에서 화제가 되고 있다. 오오 한류 문화 서양에서는 shoey라고 부르는데 호주에서 나온 말이다. 신발주 문화가 유행한 곳이 호주라서 호주 냄새 풀풀 나는 이 단어가 신발주를 뜻하는 영어 단어로 정착된 듯. 특히 이게 F1에서 대박 화제를 불러 일으키고 있는데 그 주인공은 호주 출신 드라이버인 대니얼 리카르도. 2016년 F1 독일 그랑프리에서 포디엄에 올라 신발에 샴페인을 따라 마시는 퍼포먼스로 팬들에게 충격과 공포를 선사했다. 이 날 리카르도는 2위를 차지했을 뿐만 아니라 F1 데뷔 후 100번째 레이스를 찍는 날이어서 나름대로 기념한 것. 2주 전 네덜란드에서 열린 바이크 레이스인 모토GP[3]에서 역시 호주 출신 라이더인 잭 밀러가 포디엄에서 신발에 샴페인을 따라 마셨는데 이걸 보고 따라한 듯하다. 나중에 인터뷰에서 어땠는지 물어보는 기자의 질문에 "delicious, scrumptious."(맛있었다, 아주 맛있었다)라고 답했다.

이게 화제가 되고 재미도 들렸는지, 리카르도벨기에 그랑프리에서 포디엄에 올라서도 신발주를 시전했다. 이 때는 인터뷰를 위해 올라왔던 같은 호주 출신의 전 F1 드라이버 마크 웨버[4]도 나눠 마셨다. 말레이시아 그랑프리에서는 데뷔 후 첫 우승을 차지하면서 다시 한번 신발에 샴페인을 따라 마셨다. 이걸로 끝난 게 아니라 2위를 차지한 팀 동료 막스 페르스타펜과 3위 니코 로즈베르크, 거기에 컨스트럭터 우승 트로피를 받으러 온 레드불 레이싱 감독 크리스천 호너까지 줄줄이 신발주를 시전하면서 그야말로 대박 유행 조짐이다. 심지어 포디엄에서 이걸 금지해야 하나 말아야 하냐는 논쟁까지 벌어지는 판. 즉 지저분하게 신발에 술 따라 마시는 게 시상식의 격을 떨어뜨린다는 주장과 이게 뭐 어떠냐 재밌기만 하구먼... 하는 주장에 맞부딪치고 있다.

서양에서는 신발주가 호주에서 나온것으로 보고 있다. 1800년경부터 독일에서는 장화 모양의 맥주잔을 사용했는데 여기서 힌트를 얻은 거 아닌가 하는 의견도 있다. 아마 호주의 누군가가 한국에서 신발주 마시는 걸 보고 갔겠지. F1에서 잇달아 신발주를 시전한 리카르도 역시 '신발주는 아주 호주스러운 문화'라고 말하고 있다. 그는 신발주를 시전한 이유로 "다른 호주 사람들이 자랑스러워하는 일을 한 것."이라고 이야기한다.[5] 아니라니까 임마. 원조는 한국이야! 2021년 이탈리아 그랑프리에서 3년만에 레이스 우승을 거머쥐자 중계하던 캐스터들도 '오늘 신발주 제대로 보겠네' 하는 반응이었고, 역시나 오래간만에 승자의 신발주를 제대로 시전했다. 2위를 차지한 팀 동료인 란도 노리스, 그리고 컨스트럭터 우승 수상자 자격으로 포디엄에 올라온 맥클라렌 팀 단장 잭 브라운에게도 신발주를 시전했다.[6]

신발주 문화가 이미 한물 간 한국에서는 오히려 '쟤들 지금 뭐 하는 거임?' 하는 분위기도 있다. 이것들아 원조는 한국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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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언급한 장화 모양의 맥주잔은 '비어 부트'라고 하는 것인데, 부트(boot)는 부츠(boots)의 단수형이다. 신발은 한 짝만으로는 쓸모가 없기 때문에 복수를 쓰는데, 맥주잔이야 하나만 있으면 되므로 단수형을 쓰는 것. 작은 것은 500 ml 짜리도 있지만 보통 1 리터의 큼직한 용량을 자랑하며 심지어 맥주의 나라 독일은 2 리터짜리가 기본이고 5 리터짜리도 있다.[7] 옥토버페스트에서는 크고 아름다운 비어 부트로 맥주를 마시는 풍경을 많이 볼 수 있다.

독일어로는 Bierstiefel 혹은 Stiefel이라고 하는데, 영어권에서는 Das Boot라는 이름으로 많이 알려져 있다. 사실 이건 잘못된 독일어인데, 독일어 명사 Boot는 남성형으로 쓰일 때는 '장화'를 뜻하지만 중성형으로 쓰일 때에는 '배'를 뜻한다. Das는 중성 명사 앞에 붙어서 '저것'을 뜻하기 때문에 그래서 장화 모양 맥주잔을 뜻하는 Das Boot도 어법으로 본다면 '부츠'가 아니라 '배'를 뜻한다. 즉, '저 배'라는 뜻이 된다.[8]Stiefel도 장화를 뜻하는 명사로, 독일에서는 Boot보다 Stiefel을 널리 쓴다.

독일이 비어 부트로 유명하지만 그보다 앞서 19세기 초 잉글랜드에서도 사냥꾼들 사이에 장화 또는 장화 모양 잔에 술을 마시는 게 한 때 유행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유행은 오래는 가지 않았고, 오히려 독일에서 신발에 술을 따라 마시는 게 유행하기 시작했다.[9] 특히 군대에서 이런 문화가 흥했는데, 신입 신고식으로 이 짓을 하거나 제1차 세계대전 때에는 독일군이 전투에서 승리했을 때 장군의 군화에 술을 따라 병사들이 돌려마시는 문화가 있었다고 한다.[10] 그 이전에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프로이센의 장군이 전투를 앞두고 그 결과에 따라 병사들에게 자신의 장화에 술을 마실 수 있도록 하겠노라고 연설했다는 설도 있다.[11][12] 이게 제2차 세계대전 후에 미국으로 넘어갔지만 별 인기가 없다가 2006년에 독일의 옥토버페스트를 소재로 한 코미디 영화인 <비어페스트>에서 장화 모양 잔을 시원하게 들이키는 모습이 나오면서 다시 화제가 되었다. 앞서 장화 모양 잔을 뜻하는 잘못된 독일어인 Das Boot도 이 영화에서 나왔다.

앞서 모터스포츠 포디엄에서 신발주를 시전한 선수 중 F1 드라이버인 대니얼 리카르도보다 바이크 라이더인 잭 밀러가 이쪽에 좀 더 가깝다. F1 선수들은 복숭아뼈까지 오는 신발을 신는 반면 모토GT 라이더들은 부츠를 신기 때문.

모터스포츠 선수들이 신발주로 샴페인을 마시기 이전에도 이런 문화가 유행한 적도 있었다. 20세기 초 미국에서는 여성용 슬리퍼에 샴페인을 따라 마시는 게 유행이었다.[13] '엥? 앞이 뻥 뚫린 슬리퍼에 어떻게 술을 따라 마셔?' 할 수 있는데, 앞이 뚫리지 않은 슬리퍼도 있고, 실제 사진을 보면 지금 관점으로는 말이 슬리퍼지 실제로는 하이힐에 가깝다.

각주

  1. "The Bierstiefel: A Brief History of Das Boot", Brewer World, 12 December 2019.
  2. 술은 술이다, <전자신문> 2007년 5월 9일.
  3. 바이크 레이스계의 F1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인지도는 F1이 넘사벽으로 높지만.
  4. 사실 웨버F1에서 은퇴하면서 레드불 레이싱의 빈 자리를 리카르도가 이어 받은 거나 마찬가지다.
  5. Daniel Ricciardo explaining his ‘shoey’ is the most Australian thing ever, SBS, 1 August 2016.
  6. 신발은 리카르도가 벗었고 샴페인은 잭 브라운이 따라줬다.
  7. 단, 2 리터 이상의 큰 잔은 아무리 맥주를 물처럼 마시는 독일 사람들이라고 해도 부담스럽다. 이런 큰 잔은 보통 여러 명이 잔돌리기를 하거나 술게임을 할 때에나 쓴다.
  8. 우리에게는 '유보트'로 잘 알려진 독일의 잠수함을 소재로 한 독일 영화 <특전 유보트>도 독일어 원제는 Das Boot다.
  9. "Why drink beer from a boot? (The History of Das Boot)", The Alpine Village, 1 March 2015.
  10. 우리나라도 군대 또는 대학교 신입생 환영회 때 신발에 술을 부어 먹는 문화가 유행했던 것을 이와 같은 맥락으로 해석할 수 있다.
  11. "Beer Boot Buying Guide",OktoberfestHaus.
  12. 전투에서 이겼는데 왜 병사들에게 그런 지저분한 짓을 시키느냐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달리 생각해 보면 전쟁 중에 병사가 술을 마실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엄청난 특혜다.
  13. Aaron Goldfarb, "Champagne Toe-sts: The Strange History of Drinking Bubbly From Women’s Shoes", Vinepair, 29 November 2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