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권자 손실분담: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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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세금으로 부실 금융기관을 구제하는 것도 싫겠지만 내가 예금하고 있는 [[은행]]이 부실해졌을 때 내 예금을 손해 보는 것도 싫을 것이다. 베일인의 딜레마도 여기에 있다. 둘 사이에서 얼마나 타협할 것인가, 여기에 따라서 예금주는 베일인 대상에서 제외하는 식으로 제도는 껍데기만 남을 수도 있다.
사람들은 세금으로 부실 금융기관을 구제하는 것도 싫겠지만 내가 예금하고 있는 [[은행]]이 부실해졌을 때 내 예금을 손해 보는 것도 싫을 것이다. 베일인의 딜레마도 여기에 있다. 둘 사이에서 얼마나 타협할 것인가, 여기에 따라서 예금주는 베일인 대상에서 제외하는 식으로 제도는 껍데기만 남을 수도 있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과연 예금을 채권이나 투자와 비슷하게 볼 수 있는가 하는 문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예금을 단지 돈을 보관하고 약간의 이자를 얻는 수단으로 사용한다. 예를 들어, 은행이 장사를 잘 해서 수익이 많이 난다고 해도 그게 일반 예금이나 적금에 가입한 예금주들에게 수익으로 돌아오는 것은 아니다. 이자는 미리 정해져 있으며, 보통은 완전히 고정되어 있거나 기준 금리에 연동되어 있으므로 이자는 개별 은행의 실적과는 무관하다. 심지어 입출금이 자유로운 예금은 거의 이자가 없다. 그런데 투자나 채권보다야 덜 책임을 묻겠지만 실적이 나쁘면 손해는 나눠서 지라는 것은 무리수라고 볼 수도 있다. 예금주는 투자자나 채권자라기보다는 고객에 가까운데 말이다. 일반 제품을 구매한 소비자는 회사가 망하면 사후서비스 문제 같은 것은 있을지 몰라도 제품 자체를 빼앗기지는 않는다. 그런데 은행 고객은 은행이 경영이 나빠지면 제품이라 할 수 있는 예금을 손해본다는 건, 어떻게 보면 청소기를 산 고객이 청소기 회사가 부실해졌다고 청소기 바퀴를 빼앗기는 것과 비슷할 수도 있다.


[[Category:금융]]
[[Category:금융]]

2016년 2월 14일 (일) 17:50 판

영어로는 베일인(bail-in)이라고 한다. 베일아웃과 상대되는 개념.

말 그대로 해석하면 쉽다. 금융회사가 부실화 되었을 때 부채의 일부를 이 금융회사의 채권자에게 분담시키는 것이다.

도입 배경

회사가 부실 위기에 빠지면 보통은 그냥 망하게 내버려둘 수도 있지만 덩치 큰 회사라면 그 여파가 장난이 아니다. 회사가 망하면 일단 직원과 가족들이 졸지에 수입이 끊기고, 그 회사와 거래하던 회사들도 줄줄이 피해를 본다. 회사의 주주, 채권자들도 당연히 개발살이 난다. 이 충격파가 이 정도로 그치면 다행이지만 도미노처럼 다른 회사들로 이어지면서 국가 경제 전체에 큰 충격을 몰고 올 수도 있다. 그러다 보니 덩치 큰 회사가 부실화될 때에는 구제책이 마련되는 경우가 많다. 한마디로 대마불사.

회사가 위기에 몰렸을 때 구제책은 보통 채권단에서 마련한다. 금융업체들이 가장 많은 채권을 가지고 있게 마련이니 주로 대출을 해 준 금융업체들이 채권단의 주도권을 가진다. 해당 기업의 부채를 일부 탕감하거나 부채를 출자로 전환하는 것과 같은 구제책을 마련하는데 물론 세상에 공짜는 없다.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비롯한 자구책을 회사에 요구한다. 그런데 경영진은 왜 보너스 잔치를 할까?

그런데 금융회사가 부실화되면 어떻게 하나? 1997년 IMF 구제금융을 받아야 했던 외환위기를 생각해 보면 빠르다. 금융업체들이 연쇄적으로 부실의 늪에 빠지자 정부가 나서서 공적자금을 투입했다. 당시 투입된 공적자금이 총 180조 원인데 이 중 회수불능으로 처리된 액수가 70조 원이다. 공적자금이 뭐냐고? 쉽게 말해서 우리 세금이다. 우리나라만 그런 건 아니라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 미국도 막대한 구제금융을 투입해서 월스트리트를 살려놓았다. 그랬더니 금융회사들이 뭘 했냐... 경영진들이 거액의 보너스를 챙기면서 돈잔치를 했다. 이게 2011년의 월스트리트를 점령하라 시위가 촉발된 계기였다.

이러한 사건들 이후로 금융회사의 부실을 세금을 처발라서 살려주는, 이른바 대마불사의 법칙을 그대로 놔두면 안된다는 여론이 일었고, 그에 따라서 G20 산하 금융안정국(Financial Stability Board, FSB)에서 몇 가지 제도 개선안을 내놓았는데, 그 중 하나가 채권자 손실분담, 곧 베일인이다.

어떤 회사에 투자를 하고 싶다면 두 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주식, 하나는 채권이다. 어느 쪽이 리스크가 높을까? 주식은 회사가 나빠지면 주가가 왕창 떨어지고 망하면 그냥 휴지조각이 된다. 반면 채권은 회사가 망하지 않는 한은 돈 받을 권리는 그대로 유지된다. 회사가 망하더라도 자산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일부라도 건질 가능성이 있다. 게다가 앞서 말했지만 금융회사는 위기에 몰릴 때 공적자금을 때려박거나 해서 구제하는 경우가 많다. 회사가 상태가 나빠지면 회사채 금리는 올라가는데, 대마불사를 믿고 오히려 투자가 몰리기도 한다. 그래서, 금융회사가 부실에 몰렸을 때에는 채권자들도 책임을 분담하라는 것이 채권자 손실분담의 목적이다.

제도의 운영

그렇다면 어떻게 손실을 분담할까? 채권의 일부를 주식으로 전환하는, 즉 출자전환을 하거나 더 심하면 아예 부채 일부를 탕감해 버리는 것이다. 언제? 망하고 난 다음에는 별로 약발이 없고, 부실화가 어느 정도 진전되었을 때다. FSB에서 권고하는 것은 BIS 자기자본비율이다. 즉 이 비율이 어느 선 이하로 떨어지면 금융회사가 부실 상태인 것으로 판단하고 정부에서 베일 아웃을 발동하는 것이다.

논란

금융소비자 부담

베일인 제도에 관해 가장 먼저 나오는 반론은 금융소비자 부담이다. 베일인이 시행되면 채권의 리스크가 커진다. 채권은 주식보다 리스크가 작다. 그런데 금융기관이 부실 상태가 되었을 때 채권의 일부가 주식으로 강제 전환 된다면 그만큼 채권의 리스크도 올라간다. 자, 채권의 금리는 리스크에 비례하므로 리스크가 올라가면 채권 금리가 올라간다.

그런데 금융회사의 대출 상품은 채권, 즉 회사채로 자금 조달을 하는 게 은근히 많다. 가장 대표적인 게 카드론이나 현금서비스. 카드 회사의 채권 리스크가 올라가면 회사채 금리가 올라가며, 이에 따라 대출 상품의 금리도 올라간다는 것이다.

하지만 기계적으로 회사채 금리 상승이 그에 비례해서 대출 금리 상승으로 직결된다고는 볼 수 없다. 대출 자금이 100% 회사채로 조달된다고 볼 수도 없으며, 회사들 사이에 경쟁이 있기 때문에 담합을 하지 않는 이상은 회사채 금리가 올라간 걸 그대로 대출 금리에 적용하기도 힘들 것이다. 그래도 크든 작든 영향은 있을 것이다.

예금 손실

베일인 제도는 채권자들에게 손실 분담을 요구한다. 이렇게 얘기하면 금융회사의 채권을 산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겠군... 하고 생각할 수 있을 텐데, 그게 끝이 아니다. 자, 내가 은행에 예금을 했다고 치자. 나는 은행에 돈을 빌려준 것이다. 즉, 내가 가진 돈을 은행에 맡기고 그걸 대출에 쓰라고 허락한 다음 이자를 챙긴다. 요구불예금이라면 내가 원할 때 아무 때나 찾을 수 있고 적금이라면 만기가 되면 찾는다. 다시 말해서, 예금도 일종의 채권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베일인 제도에서는 예금주도 손실을 볼 수 있다는 얘기다.

우리나라에서는 은행 예금을 비롯한 원금 보장 상품은 은행이 망해도 5천만원까지는 예금보험공사에서 지급을 보장한다. 모든 금융상품이 이러한 보장을 받는 것은 아니다. 심지어 은행 금융상품 중에도 투자성 상품은 원금 보장이 안 되므로 확인이 필요하다. 아무튼, 지금까지는 은행이 망해도 어쨌거나 5천만원까지는 최소한 원금은 건질 수 있었는데 베일인 제도가 도입되면 얘기가 달라진다. FSB의 권고에 따르면 지급 불능 상태까지 가지 않아도 BIS 자기자본비율이 일정 수준 이하로 떨어지면 베일인이 발동될 수 있다. 만약 예금주도 베일인 적용 대상이 되면 예금의 일정 부분이 주식으로 전환되거나 아예 채권과 상각처리가 돼서 돈을 잃게 된다.

만약 이렇게 돤다면, 어떤 금융회사의 BIS 자기자본비율이 베일인 발동 수준에 근접한다면 어떻게 될까? 예금주들은 불안해서 돈을 찾으려고 할 것이다. 즉, 뱅크런 사태에 불을 당기게 되고, 금융회사의 부실화를 더욱 부채질할 수 있다.

실제로 유럽에서는 베일인 제도를 도입하면서 예금주에게도 손실을 분담시켜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예를 들어 금융위기로 개발살이 난 그리스는 은행 부실이 발생할 경우 8천 유로 이상의 예금주들에게 예금액의 30% 이상을 부담시키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독일도 베일인 제도를 도입할 예청인데 예금주에게 손실을 분담하는 문제를 놓고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사람들은 세금으로 부실 금융기관을 구제하는 것도 싫겠지만 내가 예금하고 있는 은행이 부실해졌을 때 내 예금을 손해 보는 것도 싫을 것이다. 베일인의 딜레마도 여기에 있다. 둘 사이에서 얼마나 타협할 것인가, 여기에 따라서 예금주는 베일인 대상에서 제외하는 식으로 제도는 껍데기만 남을 수도 있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과연 예금을 채권이나 투자와 비슷하게 볼 수 있는가 하는 문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예금을 단지 돈을 보관하고 약간의 이자를 얻는 수단으로 사용한다. 예를 들어, 은행이 장사를 잘 해서 수익이 많이 난다고 해도 그게 일반 예금이나 적금에 가입한 예금주들에게 수익으로 돌아오는 것은 아니다. 이자는 미리 정해져 있으며, 보통은 완전히 고정되어 있거나 기준 금리에 연동되어 있으므로 이자는 개별 은행의 실적과는 무관하다. 심지어 입출금이 자유로운 예금은 거의 이자가 없다. 그런데 투자나 채권보다야 덜 책임을 묻겠지만 실적이 나쁘면 손해는 나눠서 지라는 것은 무리수라고 볼 수도 있다. 예금주는 투자자나 채권자라기보다는 고객에 가까운데 말이다. 일반 제품을 구매한 소비자는 회사가 망하면 사후서비스 문제 같은 것은 있을지 몰라도 제품 자체를 빼앗기지는 않는다. 그런데 은행 고객은 은행이 경영이 나빠지면 제품이라 할 수 있는 예금을 손해본다는 건, 어떻게 보면 청소기를 산 고객이 청소기 회사가 부실해졌다고 청소기 바퀴를 빼앗기는 것과 비슷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