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 슬링
Singapore Sling.
칵테일의 일종으로 말 그대로 싱가포르가 그 기원이다. 더 정확히는 1915년 싱가포르의 래플즈호텔에 있는 롱바(Long Bar)의 바텐더 니암 통 분(Ngiam Tong Boon)이 처음으로 만들었다는 것이 정설이나, 이미 비슷한 레서피의 칵테일이 싱가포르에 돌고 있었다고도 한다. 지금도 롱바가 운영되고 있어서 원조 싱가포르 슬링을 찾는 사람들로 늘 붐빈다. 예약 안 해도 되고 그냥 깔끔한 옷이면 티셔츠에 반바지라고 해도 딱히 출입 제한도 없기 때문에 싱가포르에 갔다면 부담 없이 한 번 가 보자. 대신 원조 답게 좀 비싸긴 하다. 2016년 2월 기준으로 한 잔에 31 SGD. 우리 돈으로 2만 5천원쯤 한다.
만드는 법
오리지널 싱가포르 슬링, 또는 싱가포르 슬링 래플즈 스타일의 레서피는 다음과 같다.
- 진 30 ml
- 체리 히링 리커 15 ml
- DOM 베네딕틴 7.5 ml
- 쿠앙트로 7.5 ml
- 사라왁 파인애플 쥬스 120 ml
- 라임 쥬스 15 ml
- 그레나딘 10 ml
- 앙고스투라 비터즈 약간
- 파인애플 슬라이스와 체리를 가나슈로 장식한다.
그런데 심지어 래플즈호텔 롱바에서 판매하는 '오리지널' 니암 통 분의 레서피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현재의 레서피는 롱바의 바텐더 사이에서 내려오는 것과, 여러 가지 기록들을 종합한 결과물이기 때문에 현존하는 레서피 중에서는 오리지널에 최대한 가깝다고는 말할 수 있어도 정확히 오리지널인지는 확실치 않다.
위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다량의 리큐르와 쥬스가 들어가기 때문에 술 같지 않고 단맛이 많이 나지만 체리 계열의 리큐르와 파인애플 및 라임의 신맛이 무척 조화를 잘 이룬다. 너무 달달할라치면 산뜻한 신맛과 진과 비터의 약한 쓴맛이 균형을 잡아주는 스타일. 열대 기후의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칵테일이다.
사실 칵테일 치고는 들어가는 재료가 많기 때문에 대부분은 간략화된 버전으로 만든다. 이쪽 버전은 좀더 단맛 쪽으로 기울어져 있다. 균형 잡힌 복잡한 맛의 깊이는 확실히 래플즈 스타일이 한수 위. 일반 바에서 주문하려면 래플즈 스타일이라고 얘기해 줘야 하지만 저 재료들이 다 있으리라는 보장도 없고, 사실 바텐더 중에는 저 레서피를 정확히 모르는 사람들도 꽤 있을 것이므로 어지간히 급이 있는 전문 칵테일 바 아니면 괜히 잘난척 한다고 래플즈 스타일 어쩌고 하지 말자.
이런저런 이야기
싱가포르항공 기내에서 주문하면 싱가포르 슬링을 제공한다. 미리 믹스된 농축액에 파인애플 쥬스와 진을 타서 만드는 식으로 아주 간략화되긴 했어도 마셔 보면 그냥저냥한 바에서 파는 것보다 낫다. 싱가포르항공 탔다면 꼭 한 번 마셔보자. 기내 면세점이나 싱가포르공항 면세점에서도 싱가포르 슬링 믹스를 판다.
창이국제공항 면세구역에도 래플즈호텔 롱바가 생겼다. 제3터미널 A 구역 근처에 있는 2층 구조의 대형 주류판매점 2층에 자리잡고 있다. 싱가포르 환승 예정인데 공항 바깥으로 나갈 여유가 없다면 여기서 래플즈 스타일로 마실 수 있다.
래플즈호텔 롱바에서는 자매품으로 슬링 1887이라는 것을 판다. 1887년에 나온 레서피는 아니고 그럼 싱가포르 슬링보다 더 오래 됐다는 얘기잖아 래플즈호텔이 문을 연 해가 1887년이다. 125주년 기념으로 만든 칵테일이라고 하니 역사는 싱가포르 슬링보다 어마어마하게 짧다.[1] 파인애플 쥬스 대신 스파클링 와인을 넣는 것이 가장 큰 차이이고 세부 레서피에도 약간 차이가 있다. 결과적으로 보면 들어가는 재료의 종류는 이쪽이 조금 더 많다. 그래서 1 SGD 더 받는다. 마셔보면 파인애플 쥬스의 단맛 대신 톡 쏘는 탄산가스와 좀더 드라이한 스파클링 와인의 맛이 드러난다. 싱가포르 슬링이 너무 달다고 생각한다면 이쪽을 마셔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고, 싱가포르 슬링 한 잔만으로는 좀 부족하지만 한 잔 또 마시기에는 뭣할 때 선택할 만한 칵테일이다. 그럴 것 같아서 일부러 만든 것일지도.
롱바는 싱가포르 슬링의 원조라는 것 말고 또 한 가지 유명한 게 있는데, 바로 땅콩이다. 테이블, 그리고 바 이곳저곳에 조그만 땅콩 포대가 하나씩 있는데, 겉껍질까지 있는 볶은 땅콩이 들어 있다. 이걸 먹을 때 껍질을 까서 그냥 땅바닥에 버리면 된다. 바에 가 보면 바닥이 땅콩껍질 천지다. 껌도 마음대로 못 씹도록 공공질서를 엄청 세게 강요하는 싱가포르 사회에서 나름대로 일탈을 해 볼 수 있는 곳.
각주
- ↑ "A New Sling at Raffles", Lunch Magazine, 14 September 20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