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인주
쌀이나 옥수수와 같은 곡물을 사람이 입으로 씹은 것을 재료로 만드는 술. 침에는 녹말을 당분으로 바꿔주는 당화효소인 아밀라아제가 있어서 밥을 꼭꼭 씹으면 단맛이 난다. 이 점을 이용한 것. 그런데 사람이 씹은 밥으로 술을 만든다고 하면 왠지 꺼림칙하잖아? 그래서 나온 결론이 미인주. 미인이 씹은 밥으로 만드는 술이니 남자들로서는 거부감이 덜했을 것이다.
'입으로 씹어 만드는 술'이라는 뜻으로 구작주(口嚼酒)라고도 부른다. 중국이나 대만은 이 말을 쓴다.
미인주라는 말이 나온 것은 이수광의 <지봉유설>인데, 그보다 훨씬 전인 고구려 시대부터 사람이 밥을 씹어서 술을 담았다는 기록이 있다. 그때는 누룩 빚는 기술이 발달하지 않아서 밥을 씹어서 놓아두면 공기 속을 떠다디던 야생 효모가 붙어서 술을 만들었다. 허영만의 만화 <식객>에서도 미인주 이야기가 나온다.
미인주라고 들어 봤어? 어여쁜 색시들이 쌀을 조근조근 씹어 당화시켜 만든 술인데 그 단맛이 이만저만 아니야. 설탕 단맛이 수학공식이라면 미인주 단맛은 시의 운율처럼 변화무쌍하고 아름답다고 할 수 있지.
우리나라에만 있었던 것도 아니라서 일본도 옛날에는 밥을 씹어서 뱉는 방법으로 니혼슈를 만들기도 했다는 기록이 일본 서기를 비롯한 여러 문헌에 남아 있다. 대략 8세기 경부터 기록이 있다고 한다. 일본어로 '양조하다'라는 단어가 카모스(かもす, 醸す)인데, 'かも'는 '씹다'라는 뜻의 '噛む'와 발음이 비슷하기 때문에 여기서 온 말이 아니겠냐는 설이 있다. 여기서 일본어로는 쿠치카미자케(口噛み酒)라고 부르며, 특히 신카이 마코토의 애니메이션 <너의 이름은 .>에서 쌀을 씹어서 술을 만드는 장면이 등장해서 우리나라에서도 관심이 늘었다.
중국은 물론 서양권에도 여러 나라에 비슷한 기록이 있다. 예를 들어, 남아메리카에서 오래 전부터 만들었던 옥수수술인 치차는 옛날에는 여자들이 옥수수를 씹어서 물에 뱉어내면 몇 주 동안 놔둬서 자연 발효시키는 방법도 썼다고 한다. 페루의 마사토 역시 유카라는 식물의 뿌리를 잘 씹어 뱉은 것으로 술을 담았다.
술을 담을 만큼 많은 양의 밥을 꼭꼭 씹어야 하니 한두 사람이 필요한 게 아니라서 진짜 미인주를 만들려면 돈이 많이 들었다. 기생들을 동원하기도 했고, 어린 처녀가 씹은 밥으로 만든 술이 특히 귀했다고 한다. 그러나 어린 여자 침이라고 특별히 술이 더 맛있어진다거나 하는 건 없다. 그냥 지들끼리 만족하는 것. 그런 거 없고 그냥 동네 주민들이 씹어서 만드는 것도 많았다. 그냥 인간주
침이밥의 녹말을 당화시키고, 그 이후 과정은 보통의 술을 만들 때와 같다. 누룩 만드는 기술이 발달하고 나서는 떠다니는 효모를 기대하기보다는 누룩을 넣었을 것이다. 사람의 침을 통해 당화가 이루어졌기 때문에 효모만 넣어도 술이 되지만 옛날 사람들이 미생물에 대해서 제대로 알지도 못했을 것이고, 누룩 안에 누룩곰팡이와 효모가 들어 있어서 각각 하는 일이 다르다는 것은 더더욱 몰랐을 것이다. 누룩을 투하하면 녹말 먹으러 갔던 누룩곰팡이는 조금 남은 찌꺼기 먹고 나면 그냥 시망이고 효모만 살판 난다.
물론 집에서도 밥을 꼭꼭 씹은 다음 뱉은 것으로 발효시키면 미인주를 만들 수 있다. 단, 자신이 미인인 경우에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