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케지메
活け締め.
생선을 잡아서 다듬기 전에 먼저 척수 신경을 죽이는 것. 신케이지메(神経締め)라고도 하지만 이케지메란 말을 더 많이 쓴다. 우리나라에서는 '이케시메'라고 표기된 글을 많이 볼 수 있는데 정확히는 이케지메(いけじめ, 活〆)다. 이케(活け)와 시메(締め)가 붙으면서 뒤의 '시'가 '지'로 연음화 된 것인데, 우리나라에서는 두 단어를 따로 따로 생각해서 그런 듯. 말 뜻을 풀이해 보면 活け는 '살아 움직이는' 정도의 뜻이고 締め, 〆는 '마감'이라는 뜻이다. 즉 살아 움직이는 것을 마감시킨다는 뜻 정도로 볼 수 있다. '신케이지메'는 신경을 마감한다는 뜻이 된다.
이유
스트레스 최소화
물고기를 잡아서 피를 빼고 해체하는 과정은 당연히 물고기에게는 어마어마한 고통이다.[1] 수산시장에서 생선을 잡을 때 물고기가 계속해서 몸부림치는 장면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이케지메를 하면 먼저 척수 신경을 없애버리는 것이므로 물고기가 빠르게 의식을 잃고 뇌사 상태에 빠지며 고통도 최소화 된다. 가축을 도축할 때 전기충격이나 이산화탄소로 기절을 시킨 다음에 잡는데 물고기를 이케지메 시키면 비슷한 효과가 있다. 또한 맛이라는 면에서도 장점이 있다. 과학적으로 본다면 아데노신삼인산(ATP)이 그 이유다. ATP는 근육의 에너지원이다. 이케지메를 하지 않으면 물고기를 잡는 과정에서 격렬한 몸부림을 치면서 오랜 시간 고통스럽게 죽어간다. 이 과정에서 근육은 많은 양의 ATP를 소비하게 된다. 반면 이케지메를 하면 빠르게 의식을 잃으므로 움직임이 훨씬 줄어들며 그에 따라 ATP 소비도 적어서 근육에 ATP가 많이 남는다. 또한 상대적으로 근육에 젖산의 양도 적기 때문에 이 역시 맛에 도움이 된다. 어차피 죽이는 과정이라면 물고기는 고통이 그나마 줄어들고 생선의 맛도 좋아지는 효과가 있다.
사후경직 지연
선어회를 선호는 일본에서 이케지메가 발달한 이유. 물고기가 죽고 나면 곧바로 사후경직이 시작되고, 약 6시간 정도에서 경직 상태가 최고조에 달했다가 이후 풀어지기 시작한다. 이케지메를 하면 사후경직의 속도가 지연되어, 많게는 2~3일 정도까지도 숙성이 가능하다고 한다. 더 이상 호흡을 통한 ATP 공급이 없는 상태에서 근육이 ATP를 모두 소비하고 나면 사후경직이 시작되는데, 이케지메를 하면 근육 안에 ATP가 많이 남아서 사후경직 속도가 늦어지는 것. 선어회의 장점은 숙성 과정에서 활어회에 비하여 감칠맛을 내는 아미노산이 효소 작용을 통해 살 안에 많이 생성되는 것인데, 이는 사후 24시간 정도가 되었을 때 최고조에 이르므로 정상 상태에서 사후경직이 풀리는 시간에 비해 많이 늦다. 아미노산이 충분히 만들어지기 전에 사후경직이 풀리면 회의 식감이 점점 물렁해지므로 이케지메를 통해서 이 미스매치를 없애는 것.
선어회를 좋아하는 일본은 횟감용 생선을 잡으면 이케지메를 하는 것이 거의 당연시되지만 활어회를 좋아하는 한국에서는 이케지메를 보기가 힘들다. 그래서 활어든 선어든 이케지메를 하는 경우가 거의 드물다 보니 선어회는 씹는 맛이 없고 물컹하다는 인식이 널리 퍼진 건데, 이케지메가 제대로 된 걸 먹어보면 이게 우리가 아는 그 선어회인가 싶을 정도로 식감의 차이가 크다. 일본에서는 심지어 연어 같은 수입 생선까지도 현지에서 이케지메를 해서 실어나른다. 이런 연어회를 파는 곳에서는 메뉴에 자랑스럽게 이케지메 했다고 써 놨다. 그만큼 일본인들에게는 이케지메가 친숙한 개념이고 회의 맛에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방법
생선의 눈 사이, 또는 꼬리 쪽에 꼬챙이나 긴 금속줄을 밀어 넣어서 척수를 관통하고 휘젓거나 앞뒤로 쑤셔대면서 척수를 무용지물로 만드는 것이 기본이다.
눈 사이로 관통시킬 때에는 비교적 짧고 굵은 도구를 사용하는데, 끝이 갈라져 있다. 이 도구를 눈 사이의 급소에 정확하게 찔러 넣어서 아가미 위쪽에 있는 뇌와 척수 사이를 끊어버리는 것. 크기가 비교적 작은 편인 참돔이나 광어 같은 생선을 주로 이 방법으로 처리한다. 이렇게 급소를 찌른 다음 구멍을 낸 곳에 긴 금속선을 척수의 통로로 넣고 꼬리 지느러미 근처까지 밀어 넣은 뒤 앞뒤로 여러 번 밀고 당겨서 척수를 완전히 날려버린다. 정확하게 급소를 찾아서 찔러야 하고 어종마다 찌르는 위치가 조금씩 차이가 있기 때문에 좀 더 난이도가 있다. 반면 장점은 빠르게 움직임을 잠재울 수 있으며 아래에 설명하는 방법과 달리 꼬리 지느러미를 자르지 않아도 되므로 생선을 온전한 상태로 운송할 수 있는 것 역시 장점. 일단 급소를 찌른 다음 아가미 쪽의 혈관을 칼로 따고 찬물에 담가서 피를 뽑은 뒤에 척수를 날려버리기도 하고, 척수까지 다 날린 다음에 피를 뽑기도 한다.
아래에 이케지메를 시연하는 몇 개의 동영상이 나오는데 잔인해 보일 수 있으니 주의.
위 동영상은 다양한 물고기를 가지고 이케지메를 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눈의 급소를 찔러서 뇌와 척수를 끊은 다음 피를 빼고, 다시 그 찌른 구멍으로 금속선을 넣어서 척수를 날리는 방식을 보여준다. 이렇게 처리를 한 다음 운송을 위해 포장하는 방법까지 나온다. 아무래도 좀 잔인해 보일 수 있으므로 주의.
꼬리 쪽으로 관통시킬 때에는 꼬리 지느러미와 몸통 사이를 칼로 자르는데, 그러면 척추뼈의 단면이 보인다. 그 위 아래로 구멍이 하나씩 있는데 배쪽 구멍은 혈관이고 등쪽 구멍은 척수다. 즉 등쪽 구멍으로 금속줄을 아가미 정도까지 빠르게 밀어 넣은 다음 여러 번 앞 뒤로 당겼다 밀었다 쑤시면서 척수를 해체한다. 주로 참치나 방어 같은 큰 생선을 처리할 때 이 방법을 쓴다. 척수의 통로가 잘 보이므로 눈 사이를 찌르는 쪽이 난이도가 좀 더 높다. 하지만 먼저 꼬리 지느러미 쪽을 잘라내야 하며 물고기가 의식을 잃기까지 시간이 걸리는 문제가 생긴다. 아래 동영상은 꼬리 쪽에서부터 척수를 관통하는 방법의 이케지메.
아무튼 숙련된 고수가 하면 잠깐 격렬하게 몸부림을 치다가 금새 잠잠해진다.
이케지메를 할 때 사용하는 금속선은 주로 스테인레스제가 많이 쓰이는데, 물고기의 종류에 따라서 굵기가 다르다. 너무 얇은 것을 쓰면 척수가 제대로 제거되지 않고, 너무 굵은 것을 쓰면 잘 들어가지 않거나 주변에 상처를 내기 때문.
그밖에
인간도 이케지메를 하는 경우가 있다. 죽이려고 그러는 게 아니라 치료 목적이고, 물론 척수를 날리는 건 더더욱 아니다. 바로 치과에서 하는 신경치료. 치수 속의 신경을 긁어내는 거기 때문에 원리는 꽤 비슷하다.
- ↑ 물고기가 사람이나 다른 동물이 느끼는 고통을 느끼는가에 관해서는 과학자들 사이에 여러 이견들이 있긴 하지만 적어도 격렬하게 몸부림을 치는 것으로 보면 어떤 식으로든 강한 스트레스는 있다고 보는 게 옳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