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동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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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havioral Economics.

쉽게 말하면 경제학심리학을 엮은 학문이다. 즉 인간의 심리가 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연구하는 경제학의 일종이다.

사실 대다수 경제학 이론이나 법칙은 인간이 합리적으로 생각하고 일관된 성향의 결정을 내린다는, 즉 '합리적 인간'을 바탕으로 세워져 있다. "경제 이론의 행위 주체는 합리적이고, 이기적이고, 취향에 변화가 없다."는 말로 정리할 수 있다. 수많은 경제학 이론은 이 토대 위에서 구축되어 왔다.

그런데 이 전제 조건은 심리학자들이 보기에는 완전 개소리다. 심리학자들이 알고 있는 인간은 편향이나 착각, 오류에 잘 빠지고 종종 논리에 어긋나거나 일관되지 못한 판단을 하고 행동으로 옮기기까지 하다. 즉, 인간의 의사결정은 생각보다 허술하다. 이렇게 인간을 보는 두 학문의 관점 차이에 다리를 놓으려는 시도가 행동경제학인 것. 경제학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심리학자들은 "합리적 인간 같은 소리 하고 있네, 인간은 적당히 합리적이지만 실제로는 여러 가지 편향에 휩쓸려서 일관되지 못한 결정을 내릴 때가 많다고!" 하고 주장했다. 자, 그렇다면 이렇게 허술하고 약점이 많은 심리를 가진 인간이 하는 활동이 경제인데, 이러한 심리는 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어떤 현상으로 나타나는가? 를 체계적으로 규명하려고 한 결과물이 행동경제학이 되었다.

행동경제학 분야를 개척한 선구자로 노벨경제학상까지 받은 대니얼 카너먼(그런데 이 사람은 심리학자다)은 행동경제학의 기본적인 바탕을 이렇게 설명한다. 인간의 심리에는 시스템 1과 시스템 2라는 두 가지 시스템이 있다. 시스템 1은 어떤 상황이 닥쳤을 때 빠르게 반응하고 주로 직관에 바탕을 둔 판단을 한다. 시스템 2는 상대적으로 느리게 반응하고, 좀 더 이성에 바탕을 둔 판단을 한다. 만약 기존 경제학의 이론대로 '합리적인 인간'만이 있다면, 경제는 시스템 2에 바탕을 둔 판단으로만 돌아갈 것이다. 문제는 많은 경우에 시스템 1이 판단을 내리고 결정을 해버릴 때가 많으며, 이 시스템 1은 반응이 빠른 대신 온갖 편향과 착각에 취약하다. 결론적으로, 행동경제학은 시스템 1이 어떠한 종류의 편향과 착각을 일으키며, 시스템 1이 현실 경제의 현상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 규명하는 학문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렇게 편향에 잘 휘둘리고 문제가 많은 시스템 1이 우리의 행동과 사고를 지배하는 것일까? 그래야만 하는 장점이 있기 때문이다. 가장 큰 이유는 속도다. 시스템 2는 속도가 느려도 너무 느리다. 사람만이 아니라 동물은 시시각각으로 위기 상황에 놓일 수 있으며 최대한 빠르게 반응하는 게 중요하다. 잘못된 반응이 아무 반응도 안 하는 것보다 나을 때도 많다. 예를 들어 맹수가 나를 잡아먹으려고 달려오는데 이성적으로 왼쪽과 오른쪽 중 어디가 더 안전한지를 계산하고 앉았을 틈이 없다. 즉 시스템 1은 이른바 '동물적 육감'에 가깝다. 우리가 더 이상 동물에게 잡아먹힐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는 시대이긴 하지만 그래도 직관은 중요하다. 운전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사람이 뛰어들었을 때, 이성적으로 판단할 새가 어딨나? 시스템 1의 순간적인 판단으로 자동차를 왼쪽으로 혹은 오른쪽으로 틀 것이다. 시스템 1이 2보다 우선권이 있는 것은 '동물'의 관점에서는 나름대로 합리적이다.

당연히 초기에는 주류 경제학계로부터 대차게 까였다. 일단 '심리학자가 어디 우리 나와바리를 건드려?' 하는 반감이 당연히 심했을 것이고, '합리적 인간'이라는 전제를 깨버리면 그에 의존하는 많은 경제학 이론들의 토대가 흔들리기 때문이다. 이것도 왠지 합리적인 반대가 아니라 경제학자들의 심리적 편향 때문이군. 또 한 가지는, 경제학 이론은 대개 수학적인 공식으로 패턴화 되지만 심리학은 이게 잘 안 되다 보니, 그냥 글만 줄줄 써 가지고 와서는 "이게 뭐야? 공식을 만들어 가지고 오라니까!" 하고 까이기 십상이다. 하지만 인지심리학의 발달로 점점 경제학 이론의 패턴처럼 수학적인 방법으로 이론을 설명할 수 있는 방법이 발달하고, 무엇보다도 기존 경제학 이론으로는 규명이 안 되는 현상을 행동경제학이 규명해 내면서 결국 차츰 인정을 받을 수밖에 없게 되었다. 이제는 엄연한 경제학 분야의 주류로 올라선 상태. 물론 여전히 행동경제학에 반감을 가진 경제학자들도 있다. 인간의 심리가 아직도 모호하거나 케바케인 경우들이 많고, 원인을 결과에 끼워 맞추는 해석을 하는 일도 있다 보니... 행동경제학이 약진하면서 여러 명의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를 배출하기도 했지만 그렇다고 고전경제학이 밀려난 건 아니고, 아직까지는 '합리적 인간'을 가정한 경제학이 주류다. 메인스트림에서는 아직까지도 행동경제학을 인정하지 않는 이들도 많고, 고전경제학이 설명하지 못하는 현상을 위한 보조 수단쯤으로 여기기도 한다. 사실 심리학 자체가 아직까지도 인간의 심리를 충분히 과학적으로 해석하고 예측하지는 못하고 있기 때문에[1] 행동경제학도 갈길이 멀다고 하겠다.

행동경제학의 가장 유명한 이론으로 이 분야가 주목 받게 된 계기이기도 하고, 대니얼 카너먼아모스 트버스키에게 노벨 경제학상을 안겨 준 이론이 전망이론으로, 기존의 기대효용법칙이 사람은 기대값이 큰 쪽을 택한다고 주장한데 반해, 전망이론은 수익이 기대될 때에는 위험 회피 성향을 보이지만 손해가 기대될 때에는 좀더 위험을 감수하는 다른 패턴을 보인다고 주장했고, 이를 반복된 실험을 통해 입증했다. 투자 시장에서 사람들은 조금만 올라도 팔고, 반면 떨어지면 빨리 손절매를 못 하고 손실을 키우는 경우가 많은데, 기대효용이론에서는 이게 잘 설명이 안 되는 반면 전망이론으로는 해석이 가능하다. 자세한 것은 전망이론 항목 참조.

각주

  1. 일단 이 심리를 좌우하는 뇌에 관한 것도 아직까지 규명하지 못한 게 훨씬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