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로스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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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ffee Roasting.

커피에 열을 가하여 물리적, 화학적 성질을 변화시키는 것. 우리나라에서는 일본에서 들어온 한자어인 '배전(焙煎)'이 많이 쓰였는데 요즈음은 '볶음'이라는 말도 종종 쓰이고 있다. 과거에는 약배전, 중배전, 강배전과 같은 말을 주로 썼다면 요즘은 약볶음, 중볶음, 강볶음, 혹은 아예 영어로도 많이 쓴다. 로스팅을 전문으로 하는 사람을 '로스터(roadster)'라고 한다.

커피나무에서 딴 커피 열매가 우리가 마시는 커피와 같은 맛과 향, 색깔을 내려면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공정으로, 로스팅 전의 생두는 연한 녹색을 띠고 있으며 맛과 향이 별로 느껴지지 않을 뿐더러, 생두를 바로 갈아서 물에 우려 마셔도 맛과 향은 커피와는 전혀 다르다. 실제로 생두를 갈아서 에스프레소 머신으로 내려본 어느 용자의 경험담에 따르면 색깔은 잿물 같고 풀잎 냄새만 풀풀 날렸다고 한다.[1][2]

분류

왼쪽부터 차례대로 약볶음, 중볶음, 강볶음한 커피. 생두는 모두 같은 케냐 키앙고이 AB.

로스팅의 분류로 가장 널리 쓰이는 기준은 얼마나 약하게 혹은 강하게 볶았는가이다. 미국의 전미커피협회(National Coffee Association)는 다음과 같은 분류를 제시하고 있다.[3]

세분화된 분류의 이름은 지역 및 문화권마다 다를 수 있으며, 저거보다 더욱 세분화된 이름도 있지만 대략 저 정도 분류 기준이면 충분하다.
볶는 강도 라이트 로스트 미디엄 로스트 미디엄-다크 로스트 다크 로스트
세분화된 분류 라이트 시나몬 미디엄 하이 시티 풀 시티 프렌치 이탈리안

로스팅으로 일어나는 변화

물리적인 변화

일단 열을 가하기 때문에 수분이 증발한다. 커피의 종류, 수분 함량, 로스팅 방법이나 정도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대략 20% 정도 감소한다. 따라서 커피 1kg을 만들려면 생두는 1.2kg 가량이 필요하다. 수분은 줄어들지만 반대로 열을 먹으면서 오히려 부피는 커지는데, 이는 커피의 밀도가 감소하고 내부의 구조가 성기어진다는 뜻으로, 미세한 구멍이 많이 생겨서 물을 먹었을 때 성분이 더 잘 빠져나오는 구조로 변한다. 또한 생두에는 그린 빈 바깥쪽에 실버 스킨이라는 얇은 막이 있는데 로스팅 과정에서 수분이 증발하면서 실버 스킨을 밀어내기 때문에 떨어져 나간다. 다만 커피의 품종이나 로스팅의 정도, 방법에 따라서는 실버 스킨이 일부 남아 있을 수 있는데 이걸 '체프'라고 한다. 어떤 커피를 갈아 보면 커피 가루 사이사이에 유난히 색깔이 밝은 것들이 끼여 있으며 살살 바람을 일으키면 가볍게 풀풀 날리기도 한다. 이게 체프라고 보면 된다. 체프가 커피 맛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는 의견이 분분하지만 대체로 좋지는 않다고 보는데, 로스팅이 잘 되었다면 남아 있는 체프가 맛에 미치는 영향은 별로 없다고 생각하는 로스터들이 많다. 그래도 로스팅 후에 남아 있는 체프를 최대한 제거하려고 하는 로스터들도 있다.

화학적인 변화

생두가 열을 받으면 음식을 조리할 때 흔히 나타나는 두 가지 변화, 즉 다당류가 분해되는 캐러멜화와 단백질이 분해되는 마이야르 반응이 일어난다. 옅은 녹색의 생두가 로스팅 과정에서 갈색으로 변하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4]

커피 안에 있는 기름 성분도 열을 받으면 변화가 일어난다. 일단 기름이 녹기 쉬운 상태가 되는 데다가 커피의 조직이 부풀어 다공질이 되므로 쉽게 바깥으로 배어나온다. 강하게 볶은 커피를 보면 겉에 이름이 반질반질할 정도가 되는데, 기름이 열을 많이 받을수록 산패가 진전되는 데다가 밖으로 배어나와 공기와 더 쉽게 만나기 때문에 강하게 볶은 커피일수록 빨리 소비해야 한다. 바리스타마다 의견 차이는 있지만 강하게 볶은 커피는 길어야 2주 정도인데 반해 약하게 볶은 커피는 3~4주까지는 버틸 수 있다고 보는 게 중론이다.

가스

로스팅 과정에서 일어나는 화학적 변화의 산물로 이산화탄소를 비롯한 여러 가지 가스가 만들어진다. 대부분은 로스팅 과정에서 바깥으로 빠져나가지만 일부는 갇혀 있게 되는데, 이 때문에 로스팅이 끝난 원두를 비닐봉투에 공기가 통하지 않도록 밀봉하면 시간이 지나면서 봉투가 부풀어 오른다. 채 빠져나가지 않은 가스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천천히 빠져나오기 때문. 이렇게 시간을 두고 가스가 빠져나오는 것을 디개싱(degassing)이라고 하는데, 로스팅이 막 끝난 커피보다는 며칠 지나서 어느 정도 디개싱이 된 커피가 맛있다는 의견도 있고, 빨리 소비할수록 좋다는 의견도 있다. 커피에 따라서 다른 문제라 어느 한 가지 정답이 있는 건 아니다. 로스팅한 원두를 포장한 봉투를 보면 작은 구멍이 뚫려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그냥 구멍이 아니라 안에서 나오는 가스는 바깥으로 빠져나가지만 바깥 공기는 봉투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도록 하는 아로마 밸브가 붙어 있다.

디개싱이 덜 된 커피라고 해도 분쇄를 하면 다시 가스가 상당부분 빠져 나오지만 그래도 가스가 조금 남아 있기 때문에 로스팅한지 얼마 안 된 원두는 드립 과정에서 뜸을 들일 때 물을 먹은 커피가 거품을 내면서 부풀어오르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약하게 볶으면 그만큼 가열에 따른 화학반응도 덜 일어나고, 가스도 적게 만들어지지만 강하게 볶았을 때보다 조직이 단단하기 때문에 가스가 잘 빠져나가지 못한다. 따라서 약하게 볶은 커피 쪽이 오히려 디개싱에 시간이 더 걸린다.

기구

커피 로스팅은 그야말로 '볶는 것'이기 때문에 집에서 취미 삼아 조금만, 즉 몇십 그램 정도만 로스팅을 해 볼 요량이라면 뚜껑이 있는 프라이팬으로도 할 수 있다. 프라이팬에 생두를 올려놓고 가열을 해서 볶을 수 있다. 타지 않도록 불 조절도 잘 해야 하고 잘 휘저어 줘야 한다. 또한 연기가 많이 나오기 때문에 후드는 필수다. 연기가 많이 난다는 것은 미세먼지도 많이 나온다는 뜻이므로 커피를 볶을 때 미세먼지 차단 마스크를 쓰든가 후드가 연기를 잘 빨아들여 배출시켜야 한다. 아웃도어 활동을 즐기는 사람들 가운데는 캠핑을 가서도 로스팅을 해 보는 사람들도 있다. 노련한 사람들은 이렇게 해도 꽤 괜찮은 결과물을 내지만 아무래도 전문 도구를 쓰는 것보다는 생두가 열을 고르게 먹기 힘들고 열을 조절하는 것도 쉽지 않아서 잘 볶이지 않는다.

각주

  1. "생두를 갈아서 에스프레소머신에 내려 먹어보았습니다.", 생각이 자라는 나무, 네이버 블로그, 2016년 7월 20일.
  2. 한 때 커피 생두를 이용한 다이어트가 유행한 적이 있다. 생두에는 클로로겐산이 많이 들어 있어서 신진대사를 촉진하고 체지방 감소 효과도 있으며, 혈당도 안정화시켜 주는 게 원리라고 한다. 로스팅 과정에서 약 60%가 손실되므로 생두로 섭취하는 게 효과가 좋다는 게 생두 다이어트다. 앞 각주의 블로그 글쓴이가 생두를 에스프레소로 마셔 본 이유도 다이어트 때문.
  3. "A Guide to Roasting Types", National Coffee Association Blog, 11 November 2015.
  4. 어떤 자료에서는 생두의 엽록소가 파괴되는 것도 이러한 색깔 변화의 원인이라고 하는데 잘못된 이야기다. 생두가 연한 녹색을 띠고 있긴 하지만 엽록소 때문은 아니다. 엽록소는 광합성으로 당분을 생성하는 물질로, 식물의 잎에 들어 있는 물질인데, 열매는 땅 속에 묻혀 있으면서 싹을 틔우는 것이므로 햇빛을 받아서 영양분을 만들 필요가 없다. 입록소가 전혀 없이 희멀건 씨앗들도 싹이 터서 잎이 나면 엽록소가 듬뿍 있기 때문에 씨앗 때부터 엽록소를 가지고 있을 이유가 없다. 다만 생두의 얇은 겉껍질인 실버스킨에는 엽록소가 약간 있긴 한데, 이건 로스팅할 때 아예 떨어져 나가 버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