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육소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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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nnis (토론 | 기여)님의 2020년 11월 25일 (수) 10:34 판

말 그대로 어육, 즉 생선살을 주성분으로 만든 소시지다.

생선살과 밀가루, 전분을 주성분으로 반죽을 만들고 나서 이를 케이싱(보통은 비닐)에 넣어서 모양을 잡고 가열해서 굳힌다. 그럼 어묵 아닌가? 여기에 당근이나 파프리카 같은 채소 다진 것을 조금 섞어서 야채소시지라는 이름을 달아 팔기도 한다. 분홍색을 띠고 있어서 분홍소시지라고도 부르는데 발색제아질산나트륨으로 색깔을 낸 것이다. 원래 일본에서 등장한 것으로 魚肉ソーセージ가 한국으로 건너온 것. 어묵이나 어육소시지나 뭐. 패전 후에 먹을 게 빈궁한 일본에서는 싸구려 재료를 사용해서 그보다 비싼 음식을 흉내낸 갖가지 제품과 음식들이 쏟아져 나왔는데 어육소시지도 그 중 하나인 셈.

어육에 고기를 섞어서 만드는 것도 있는데 분류가 조금 달라진다. 어육이나 알 등의 함량이 전체 육류 함량의 20% 이하이면 혼합소시지로 분류되고, 어육이 그 이상이면 어육소시지가 된다.[1] 혼합소시지가 되면 축산물가공품으로 분류되고, 어육소시지 쪽으로 가면 수산물가공품으로 분류된다. 검역 소관부처도 각각 농림축산물검역본부와 국립수산물품질관리원으로 달라진다. 어육과 다른 고기의 혼합 비율에 따라서 다시 혼합어육소시지와 그냥 어육소시지로 세분화된다.

그런데 성분표를 보면 어육이라고 쓰지 않고 연육이라고 쓰는 게 보통이다. 진주햄의 설명[2]에 따르면 '껍질과 내장 뼈를 깨끗하게 제거하고 급속 동결하여 블록(block) 형태로 가공한 생선살 원료'라고 한다. 말장난이야 말장난. 생선이라고 대놓고 쓰기 싫으니까. 설명을 좀 더 보면, 연육은 배 위에서 바로 가공해서 냉동 처리하는 선상(배 위)어육과 항구로 가져온 다음 육지에서 가공하는 육상연육으로 분류되는데, 신선도로 본다면 잡자마자 바로 가공해서 냉동시키는 선상어육이 더 좋을 것은 당연한 얘기다. 물론 배 위에 가공 시설과 인력을 태워야 하기 때문에 가격은 좀 더 비쌀 것이다. 진주햄의 어묵 디스에 따르면 기름에 튀겨 만드는 어묵류가 대부분 저가의 육상연육을 사용하는 것과는 달리 어육소시지는 레토르트 방식으로 만드므로 신선도가 중요하다고 한다. 하지만 어떤 생선을 쓴다고는 말 안 했다. 그냥은 맛없어서 먹기 힘든 생선들을 사용하는 게 보통이다. 어차피 이것저것 조미료 넣고 발색제 넣고 해서 생선 맛도 안 나는 거라. 이쯤 되면 <설국열차>의 단백질 블록 수준이다.

어육소시지는 어묵 맛이 나면 곤란하기 때문에 MSG발색제를 비롯한 조미료와 첨가물의 투입량이 어묵보다 많고 밀가루 함량도 더 많다. 그냥 먹어도 먹을 만한 소시지와는 달리 어육소시지는 그냥 먹으면 맛이나 식감으로나 정말 못 먹을 맛이다. 고기로 만든 소시지는 뭔가 씹히는 맛이 있는 반면, 어육소시지는 그냥 먹으면 스르륵 부스러지면서 이에 진득하게 달라붙기도 하면서 영 별로다. 다만 김밥에 넣을 때에는 익히지 않고 그대로 넣는 게 보통이다. 맛이 이상하긴 하지만 레토르트식으로 한번 가열해서 익힌 거라 날것은 아니니 걱정할 건 없다. 기름에 지져보면 더 확실히 알 수 있는데 발색제로 낸 분홍색은 그대로 남아 있는 한편으로 밀가루가 익으면서 갈색으로 변하면서 묘한 부조화를 일으킨다. 먹어보면 푸석푸석하다.

보통은 둥글고 긴 튜브 모양에 크고 아름다운 용량을 자랑한다. 야구방망이로 써도 되겠다 싶을 정도. 가격도 싸다. 작은 것도 있는데 슈퍼마켓에서 천원이면 산다. 작은 것이라고 해도 몇 명이 밥반찬으로 충분히 먹을 수 있을 정도의 양은 된다. 한편으로는 그냥 먹을 수 있는 어육소시지도 있는데, 천하장사, 맥스봉과 같이 간식용으로 나오는 작은 크기의 소시지가 그것.이쪽은 밀가루 함량을 좀 더 줄여서 식감이 좀 더 탱탱하다. 주로 아이들 간식으로 많이 먹던 거라 첨가물 문제에 관심이 높아진 이후로는 방부제발색제 같은 것은 거의 뺀 상태이고, 치즈를 첨가한 제품이 많아서 노란색을 띠기까지 한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냥 상온에 보관하고 꽤 오래 간다.

원래 어린이 간식으로 나온 거지만 의외로 어른들 중에도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고, 안주로 먹는 사람들도 많이 있다. 천하장사가 오랫동안 거의 독점하다시피 하다가 CJ의 맥스봉이 어느 정도 시장 점유율을 먹는 데 성공했는데, 맥스봉은 아예 포장에서부터 아이들보다는 젊은 여성들을 겨냥하는 차별화 전략을 썼다. 어른들을 겨냥해서 스마트폰 터치 대용 스타일러스펜 기능을 추가했나보다. 한마디로 첨단 IT 소시지.

가장 흔한 조리법은 기름이 부쳐서 먹는 것. 2~3 mm 정도 두께로 썰어서 그냥 기름에 부치거나 달걀물을 입혀서 부친다. 우리나라에서는 80년대까지만 해도 달걀에 부친 어육소시지는 도시락의 인기 메뉴였다. 솔직히 달걀이라도 안 묻히면 맛이 별로다. 70년대에야 제대로 고기를 넣은 이나 소시지는 드물고 비쌌고, 스팸은 미군을 통해서 나오는 것들이 대부분이라서 부잣집 도시락에나 들어갈 반찬이었다. 80년대까지만도 어육소시지가 단골 도시락 반찬이었지만 80년대 말을 기점으로 슬슬 고기가 많이 들어간 햄이나 소시지가 그 자리를 차지하기 시작한다. 김밥 속재료 중 고기도 어육소시지의 차지였지만 차차 에게 자리를 내주고, 90년대 중반 이후로는 점점 밀려난다. 솔직히, 고기 제대로 들어간 이나 소시지에 비하면 맛도 없고 요리할 수 있는 폭도 좁은것이 사실이고, 어차피 어육소시지란 게 못 먹던 시절 진짜배기의 대용품이니, 진짜가 값이 싸지면 인기가 떨어지는 건 당연한 일.

2010년대 들어서는 다시 살아나고 있는데, 일단 추억팔이 열풍으로 어렸을 때 그 맛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다시 찾으면서 고깃집이나 편의점 같은 곳에 '추억의 도시락'이 등장하고 있다. 여기 주로 들어가는 게 달걀 프라이, 볶음김치, 그리고 달걀에 부친 어육소시지다. 음식점의 반찬으로도 종종 모습을 보이고 있다.

건프라에서 주로 샤아 아즈나블의 전용기 색깔을 두고 종종 '분홍소시지', 혹은 '불량소시지' 색깔이라는 말을 쓴다. 특히 예전에는 샤아 전용기 건프라의 색깔이 원작과는 뭔가 다른 애매한 분홍색으로 뽑혀 나올 때가 많았는데, 그런 색깔을 깔 때 주로 분홍소시지에 빗댄 것, 최근에는 반다이의 기술이 워낙에 좋다 보니 정말 색깔을 잘 뽑아내서 그런 말은 좀 줄어들었지만 그냥 습관적으로 샤아 전용기 건프라 색깔을 두고 '불량소시지'라고 하는 사람들도 꽤 있다.

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