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레튼우즈협정: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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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4년, 미국 뉴햄프셔 주의 브레튼우드애서 체결된 브레튼우즈협정을 기초로 한 국제금융체제로, [[미국 달러]]를 기축통화로 하여 [[금]] 1온스에 35$로 비율을 고정시켰다. 이로써 미국 달러 중심의 국제경제 및 무역체제가 구축되었다. 이전까지는 [[영국 파운드]]가 [[기축통화]]의 구실을 했지만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국력이 급속도로 쪼그라든 반면 미국은 막강한 파워를 손에 넣게 되었다. 결국 브레튼우즈협정을 통하여 영국의 [[금융]]패권이 공식적으로 [[미국]]에게 이양된 셈이다.
제2차세계대전이 막바지로 접어들고 있던 1944년, 미국 뉴햄프셔 주의 브레튼우드애서 44개국 대표가 모여 개최된 통화금융회의에서 체결된 협정. 이듬애인 1945년 12월에 30개국이 협정에 서명함으로써 협정이 효력을 발휘하고 브레튼우즈체제가 정식으로 출범하게 되었다.


브레튼우즈체제를 뒷받침하기 위하여 두 개의 국제금융기구가 탄생했는데 바로 [[세계은행]]과 [[국제통화기금]](IMF)이다.
협정의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브레튼우즈체제가 구축된 이후 세계는 전례없는 대호황기를 누렸다. 이른바 빅크런치 시대.
* [[미국 달러]]를 기축통화로 하고 금 1온스(31.1g)를 35 미국 달러로 고정하는 금본위제를 채택한다.
* 각국은 기본적으로 [[미국 달러]]에 대하여 환율을 고정하지만 1% 범위 안에서 이를 조정할 수 있다.
* 국제통화제도를 관장하고 유동성 부족으로 무역 결제 등에 어려움을 겪을 때 필요한 달러를 공급하는 기구로 [[국제통화기금]](International Monetary Fund, IMF)을 설립한다.
* 전후 복구 및 부흥, 후진국개발을 위한 [[국제부흥개발은행]](International Bank for Reconstruction and Development , IBRD)을 설립한다.


브레튼우즈체제는 공식적으로 무너졌지만 [[미국 달러]]는 여전히 국제무역의 기축통화로 입지를 공고히 하고 있다. 이를 신브레튼우즈체제라고 부른다.
이후 IBRD는 세계은행(World Bank, WB)으로 바뀐다.
 
이로써 [[미국 달러]] 중심의 국제경제 및 무역체제가 구축되었다. 브레튼우즈협정을 통하여 영국의 [[금융]]패권이 공식적으로 [[미국]]에게 이양된 셈이다.
 
=배경=
 
제1차세계대전 이전까지 각국의 통화제도는 [[금본위제]]였다. 어떤 나라의 중앙은행이 화폐를 발행하면 반드시 그 가치만큼의 금이 중앙은행에 있어야 하며, 화폐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은행에 이를 들고 가면 그 액수에 해당하는 만큼의 금으로 바꿔줬다. 이를 [[태환성]]이라고 한다. 이 당시 [[기축통화]] 구실을 했던 것은 영국 파운드였다. 당시 영국의 경제력은 지금의 미국과 비슷한 정도로 막강한 지위를 누리고 있었으므로 파운드화를 발행해면서 그만큼의 금을 확보하는 것이 별 문제가 없었다. 문제는 두 차례 [[유럽]]을 휩쓸고 간 세계대전. 전쟁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서 유럽 각국은 화폐를 많이 찍어내야 했는데, 그러다 보니 화폐의 가치는 떨어지고 반면 전쟁통에 생산 시설도 망가지고 경제나 무역 활동도 정상으로 굴러가지 못하니 금을 구하기는 더더욱 힘들어졌다. 결국 태환성을 유지할 금을 확보할 수가 없게 된 것.
 
결국 [[유럽]] 국가들은 [[금본위제]]를 포기하게 되었다. 특히 [[독일]]에게 집중 공격을 당한 영국은 경제 기반이 쑥대밭이 되었고, 결국 국제경제에서 차지하고 있던 막강한 지위도 완전 쪼그러들었다. 그 자리를 채운 게 [[미국]]. 대영제국의 영광을 누리면서 전 세계를 호령했던 <s>그리고 엄청나게 착취했던</s> [[영국]]으로서는 한때 식민지였던 미국이 자신들의 패권을 차지하는 것이 씁쓸한 일이었겠지만 결국 세상이 변했다는 것을 인정하고 하루 빨리 새로운 질서를 세워서 국제경제의 혼란을 바로잡아야 했다. 그래서 탄생한 것이 브레튼우즈체제이고, 이 체제의 기틀을 마련한 것이 브레튼우즈협정이다.
 
=붕괴=
 
브레튼우즈체제 출범 이후, 세계는 대호황기를 맞이하게 된다. 그러나 1970년 들어서 각국은 미국 달러 대비 환율의 변동 폭을 확대하게 되고, 이는 고정환율제 붕괴와 미국의 금태환 체제 포기로 이어진다. 이 때문에 브레튼우즈체제는 공식적으로 무너졌지만 [[미국 달러]]는 여전히 국제무역의 기축통화로 입지를 공고히 하고 있다. 이를 신브레튼우즈체제라고 부른다.

2015년 6월 22일 (월) 08:51 판

제2차세계대전이 막바지로 접어들고 있던 1944년, 미국 뉴햄프셔 주의 브레튼우드애서 44개국 대표가 모여 개최된 통화금융회의에서 체결된 협정. 이듬애인 1945년 12월에 30개국이 협정에 서명함으로써 협정이 효력을 발휘하고 브레튼우즈체제가 정식으로 출범하게 되었다.

협정의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 미국 달러를 기축통화로 하고 금 1온스(31.1g)를 35 미국 달러로 고정하는 금본위제를 채택한다.
  • 각국은 기본적으로 미국 달러에 대하여 환율을 고정하지만 1% 범위 안에서 이를 조정할 수 있다.
  • 국제통화제도를 관장하고 유동성 부족으로 무역 결제 등에 어려움을 겪을 때 필요한 달러를 공급하는 기구로 국제통화기금(International Monetary Fund, IMF)을 설립한다.
  • 전후 복구 및 부흥, 후진국개발을 위한 국제부흥개발은행(International Bank for Reconstruction and Development , IBRD)을 설립한다.

이후 IBRD는 세계은행(World Bank, WB)으로 바뀐다.

이로써 미국 달러 중심의 국제경제 및 무역체제가 구축되었다. 브레튼우즈협정을 통하여 영국의 금융패권이 공식적으로 미국에게 이양된 셈이다.

배경

제1차세계대전 이전까지 각국의 통화제도는 금본위제였다. 어떤 나라의 중앙은행이 화폐를 발행하면 반드시 그 가치만큼의 금이 중앙은행에 있어야 하며, 화폐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은행에 이를 들고 가면 그 액수에 해당하는 만큼의 금으로 바꿔줬다. 이를 태환성이라고 한다. 이 당시 기축통화 구실을 했던 것은 영국 파운드였다. 당시 영국의 경제력은 지금의 미국과 비슷한 정도로 막강한 지위를 누리고 있었으므로 파운드화를 발행해면서 그만큼의 금을 확보하는 것이 별 문제가 없었다. 문제는 두 차례 유럽을 휩쓸고 간 세계대전. 전쟁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서 유럽 각국은 화폐를 많이 찍어내야 했는데, 그러다 보니 화폐의 가치는 떨어지고 반면 전쟁통에 생산 시설도 망가지고 경제나 무역 활동도 정상으로 굴러가지 못하니 금을 구하기는 더더욱 힘들어졌다. 결국 태환성을 유지할 금을 확보할 수가 없게 된 것.

결국 유럽 국가들은 금본위제를 포기하게 되었다. 특히 독일에게 집중 공격을 당한 영국은 경제 기반이 쑥대밭이 되었고, 결국 국제경제에서 차지하고 있던 막강한 지위도 완전 쪼그러들었다. 그 자리를 채운 게 미국. 대영제국의 영광을 누리면서 전 세계를 호령했던 그리고 엄청나게 착취했던 영국으로서는 한때 식민지였던 미국이 자신들의 패권을 차지하는 것이 씁쓸한 일이었겠지만 결국 세상이 변했다는 것을 인정하고 하루 빨리 새로운 질서를 세워서 국제경제의 혼란을 바로잡아야 했다. 그래서 탄생한 것이 브레튼우즈체제이고, 이 체제의 기틀을 마련한 것이 브레튼우즈협정이다.

붕괴

브레튼우즈체제 출범 이후, 세계는 대호황기를 맞이하게 된다. 그러나 1970년 들어서 각국은 미국 달러 대비 환율의 변동 폭을 확대하게 되고, 이는 고정환율제 붕괴와 미국의 금태환 체제 포기로 이어진다. 이 때문에 브레튼우즈체제는 공식적으로 무너졌지만 미국 달러는 여전히 국제무역의 기축통화로 입지를 공고히 하고 있다. 이를 신브레튼우즈체제라고 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