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터스포츠/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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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nnis (토론 | 기여)님의 2020년 11월 25일 (수) 10:55 판 (문자열 찾아 바꾸기 - "로마 시대" 문자열을 "로마시대" 문자열로)

태동

모터스포츠의 역사는 자동차의 역사라고 보면 된다. 자동차 개발 초기부터 모터스포츠가 있었다. 그 이전에도 스피드 경쟁은 있었다. 인간의 달리기는 물론이고, <벤허>에 나오는 것처럼 로마시대 때에도 마차 경주가 있었고 경마도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었으니 말만 자동차로 바꾸면 모터스포츠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모터스포츠 용어 중에 경마에서 온 게 꽤 있다. 그 대표격이 패독(paddock). 사전에서 찾아보면 '마굿간'이라는 뜻인데 모터스포츠 경기장에서 팀, 선수, 경기진행 요원, VIP 만이 드나들 수 있는 특정한 구역을 뜻하는 말로 쓰인다.

최초의 자동차 경주

처음으로 개최된 모터스포츠 경기는 언제인가에는 약간의 이견이 있는데, 독일카를 벤츠가 1885년에 첫 휘발유 내연기관 자동차를 만들고 나서 겨우 2년 뒤인 1887년 4월 28일에 프랑스 파리의 뇌이이 다리에서 불로뉴 숲까지 2 킬로미터 구간에서 열렸던 경기라는 설이 있다. 파리에서 발간되었던 자전거 잡지 <르 벨로시페드>의 편집장 포시에르와 유럽의 자동차 회사가 이 경기를 주도했고, 우승자는 드 디옹 부통 사의 조르쥬 부통이다. 문제는 실제로 이 경기에 참가했던 사람이 조르쥬 부통 혼자였다는 것. 월드 모터스포츠의 고독한 황태자였던 것이다. 그러니 경기라고 하기에는 곤란하지 않은가, 하는 의견이 주류다. 멸명실조르쥬 부통이 가지고 나온 차량은 무게 50kg, 출력은 단 1 마력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 경기에 실제로 참가한 사람은 조르쥬 부통 뿐이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이 경기가 경쟁이라는 스포츠의 필수 요건을 갖추었다고 보기에는 어려운 점이 있다.

명실상부한 최초의 모터스포츠 경기로 기록된 것은 1894년 7월 23일, 프랑스 파리에서 루앙까지 구간에서 벌어진 경기다. 개최자는 <르 프티 주르날>이었고 102명의 선수가 참가했다. 50 킬로미터 구간에서 사전 경기를 치러서 본 경기인 파리에서 루앙까지 127 킬로미터 구간 경기에 참가할 선수 25명을 선발했다. 개인 션수도 있었고, 푸조 같은 자동차 회사에서도 참가했다.드 디옹 자동차 회사의 창업자 줄-알베르 드 디옹은이 6시간 48분만에 127 킬로미터 구간을 평균 시속 48 킬로미터로 주파해서 가장 먼저 결승점에 골인했다. 하지만 공식 우승자는 2위였던 푸조의 알베르 르매트르. 드 디옹의 차량은 증기기관 엔진이었고 땔감을 넣어주는 화부가 따로 있었기 때문에 진정한 자동차로 보지 않았던 것이다.

미국에서 열린 최초의 자동차 경주는 1895년 추수감사절에 시카고에서 열린 타임즈-헤럴드 레이스다. 시카고 남부의 87.48 킬로미터 구간에서 개최된 이 경기의 우승자는 프랭크 듀이어로 10시간 23분을 기록했다. 한편 1897년에는 프랑스 니스에 최초로 정규 경기를 개최할 수 있는 개최지가 마련되었다. 하지만 전용 경기장은 아니었다. 그래도 수시로 경기를 열 수 있는 본진이 만들어졌기 때문에 갖가지 경기들이 발전하는 계기가 되었다.

최초의 국제 자동차 경주

첫 번째 국제 자동차 경주는 <뉴욕 헤럴드> 소유주였던 미국의 백만장자 제임스 고든 베넷 2세가 1900년에 프랑스에서 주최한 고든 베넷 컵이었다. 1899년, 베넷은 당시 유럽의 모터스포츠를 주도하고 있던 프랑스 자동차 클럽(Automobile Club de France, AFC)에게 세계 여러 나라의 클럽이 참여하는 대회를 해마다 개최하자는 제안을 했고 이듬해에 최초의 국제 자동차 경주가 열린 것. 파리에서 리옹까지 568.86 킬로미터 구간에서 첫 대회가 개최되어 프랑스의 페르낭 샤롱이 9시간 9분의 기록으로 우승을 차지한다. 이 경기에는 벨기에미국, 독일 선수도 참가했지만 모두 완주에 실패했다. 여기서 보면 알 수 있겠지만 초창기의 모터스포츠는 프랑스가 꽉 잡고 있었다. 휘발유 엔진 자동차는 독일에서 먼저 개발했는데... 국제자동차연맹(FIA)의 본부가 파리에 있고, 영어프랑스어를 공용어로 함께 쓰는 데에는 이런 역사의 배경이 있다.

잘 나가던 모터스포츠의 인기에 찬물을 끼얹은 것은 안전 문제였다. 1903년 파리-마드리드 레이스 도중에 르노자동차회사의 공동 설립자였던 마르셀 르노가 사고로 사망했다. 드라이버로 그치는 게 아니라 보행자까지 사고로 사망하는 일이 속속 벌어졌다. 초기 모터스포츠 경기들은 앞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도시간 경기였다. 즉 어떤 도시에서 다른 도시로 가는 경기였고, 전용 경기장이 있을 리가 없었으니, 그냥 일반 도로에서 개최되었다. 그러니 보행자들도 그냥 도로 옆으로 돌아다녔고 사고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었던 것이다. 계속해서 사고가 나고 사망자가 속출하자 결국 프랑스 정부는 보르도 지역의 레이스를 중지시켰고 일반 도로에서 열리는 레이스를 아예 금지시키기도 했다.

그래도 경기는 계속되었다. 1908년에는 지금까지도 깨지지 않은 최장거리 레이스가 개최되었다. 어느 정도냐 하면, 뉴욕에서 파리까지였다. 그런데 뉴욕에서 파리까지는 분명히 육지로 이어져 있지 않았는데? 수륙양용자동차 샌프란시스코에서 시애틀일본요코하마를 거쳐서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까지 차량과 선수를 배로 실어날랐다. 169일 동안 무려 22,000 마일(약 35,404km)에 이르는 구간이었다. 우승자는 미국의 조지 슈스터.

최초의 랠리 경기는 1911년 1월 모나코 공국에서 개최된 몬테카를로 랠리. 최초로 '랠리'라는 이름을 쓴 경기다. 지금도 WRC는 1월에 몬테카를로 랠리를 개최하고 있다. 세계 최고의 모터스포츠 이벤트 중 하나로 F1 모나코 그랑프리가 꼽히지만 역사로 보면 몬테카를로 랠리가 훨씬 오랜 역사를 자랑한다.

전용 경기장의 탄생

모터스포츠가 본격 유럽 바깥으로 나간 것은 해가 지지 않는 나라 대영제국의 위엄과 함께였다. 영국 식민지였던 인도에서는 1905년 델리에서 뭄바이까지 1,300 킬로미터 구간에서 최초의 자동차 경주가 열렸다.

모터스포츠의 발전을 한 단계 끌어올린 계기는 전용 경기장 건립이다. 1907년 영국 서레이의 브루클랜드에 만들어진 경기장이 바로 세계 최초의 모터스포츠 전용 경기장. 콘크리트로 포장된 4.43 킬로미터 코스였다. 1907년 6월에 이곳에서 최초로 24시간 레이스가 열렸으며, 비행장으로 쓰이기도 했다. 이 서킷은 1939년까지 운영되었고 지금은 이 경기장의 모터스포츠와 비행 역사를 기념하는 브루클랜드 박물관이 운영되고 있다.

한편 미국에서는 1909년에 지금까지 미국 모터스포츠의 성지로 알려져 있는 인디애나폴리스모터스피드웨이가 개장했다. 미국 최대의 모터스포츠 이벤트라 할 수 있는 인디 500이 바로 이곳에서 열리고 있다. 개장 당시에는 트랙을 벽돌로 포장했는데 지금도 출발선 앞 1 야드는 옛날의 벽돌 포장을 그대로 남겨 놓고 있다. 이를 브릭야드(brickyard)라고 한다. 2000년대 초에는 F1 미국 그랑프리가 열리기도 했으나[1], 2005년 미국 그랑프리에서 타이어 문제로 6대 빼고 모두 경기를 포기하는 희대의 코미디가 일어났다. F1은 그 이듬해까지만 경기하고 접었다. 지금은 텍사스 오스틴에서 미국 그랑프리가 열린다.

각주

  1. 오벌 경기장이지만 F1을 위해서 안쪽에 로드 코스를 만들고 마지막 코너와 메인 스트레치 부분만 오벌을 사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