롤링 주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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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nnis (토론 | 기여)님의 2015년 7월 8일 (수) 03:17 판 (→‎비판과 반론)

Rolling Jubilee.

헐값에 팔리는 부실채권을 사들이거나 기증 받아서 없애버리는 것. 일종의 시민운동으로 전 세계에 걸쳐 전개되고 있고 우리나라에서도 벌어지고 있다. 아무 부실채권이나 이렇게 하는 것은 아니고 주로 개인이 금융기관에 진 빚이다.

부실채권은 어떻게 만들어지나?

은행 대출이나 카드 결제 대금이 연체되었다고 가정해 보자. 처음에는 은행이나 카드사에서 연락이 온다. 연체가 3개월 정도 되면 은행이나 카드사와 앞에 이름은 비슷한데 뒤는 '신용정보'라고 이름이 다른 곳에서 독촉이 본격적으로 온다. 이때부터는 무지하게 시달리게 된다. 그래도 빚을 청산하지 못하면 나중에는 전혀 다른 이름을 가진 곳에서 연락이 온다. 이때쯤 되면 빚 독촉이 살벌해진다. 나는 은행에 빚을 졌는데 독촉하는 회사는 왜 달라지는 걸까?

보통 금융기관은 대출 가운데 일정 비율이 연체될 것으로 예상한다. 그리고 일정 기간 이상 연체된 대출을 부실채권으로 분류한 다음 다른 기관에 싼 값으로 채권을 넘긴다. 만약 은행이 계속 가지고 있으면 은행의 부실채권 비율이 높아지므로 정부로부터 규제를 받게 되기 때문에 추심회사로 떠넘기는 것이다. 담보가 있는 대출이라면 은행들이 연합해서 만든 연합자산관리주식회사(UAMCO)라는 곳으로 주로 넘긴다. 담보가 있으면 그래도 돈 받아내기가 수월하니 유암코는 엄청난 이익을 올리고 있다. 반면 담보가 없는 신용대출이나 카드 연체는 처음에는 채권추심을 전문으로 하는 자기네 계열사로 넘기지만 연체가 지속되면 나중에는 대부회사 같은 곳에 떨이로 처분한다. 100만 원짜리 채권이라면 5만 원 정도에 떨이 처분을 하는 것이다. 그러면 대부회사는 악착같이 돈을 받아내려고 갖은 술수를 부린다. 만약 100만 원짜리 채권을 5만 원에 20개 샀다고 치면 100만 원이 들어간 것인데, 20개 중에서 10%인 2개만 받아내도 200만 원을 번다. 빚진 사람들은 살벌한 빚 독촉에 죽어나지만 뒤에서는 이런 식으로 떨이 거래가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롤링 주빌리는 바로 이렇게 헐값으로 팔리는 부실채권을 사들이거나 기증 받아서 없애는 것이다. 부실채권이 액면가의 5%에 거래된다면 1억 상당의 부채를 5백만 원이면 사들일 수 있다.

비판과 반론

이 운동에 대해 비판하는 의견도 물론 있다. 가장 많이 나오는 건 이른바 도덕적 해이와 상대적 박탈감이다. 돈을 안 갚아도 이런 식으로 탕감해 주면 성실히 갚는 사람들은 호구냐, 이런 얘기다. 말 그대로 보면 맞는 말이지만 지금 사회의 경제와 금융 구조는 그리 간단하지 않다.

이에 대한 반론으로는, 그렇다면 금융기관의 도덕적 해이는 누가 책임지냐는 것이다. 금융기관이 빌려주는 돈은 자기 돈이 아니다. 예금주가 맡긴 돈을 가지고 돈놀이 장사를 하는 것이다. 그러면 돈을 빌려줄 때 상환이 가능한지를 제대로 판단할 의무가 있다. 그런 거 제대로 안 따져보고 막 빌려 주고 심지어 광고까지 열심히 하면서 돈 없으면 빌려서 쓰라고 부추기는 것도 일종의 도덕적 해이라는 것이다. 2000년대 중반 카드대란이 어떻게 터졌나 생각해 보자. 월급 달랑 100만 원 받는 사람한테 1천만 원짜리 한도의 신용카드를 마구잡이로 남발했다. 심지어 사은품까지 주면서 치열한 신용카드 발급 경쟁을 벌였다. 이건 누가 책임지나? 나름대로 감독기관도 있고 징계도 하지만 그런 걸로 은행 직원이 생계에 위협 받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러니 모든 책임을 채무자에게만 일방적으로 돌릴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부실채권의 채무자들은 이런저런 방법으로 탈탈 털려서 속된 말로 불알 두쪽만 남은 경우가 태반이다. 연체 이자라는 게 한번 연체가 걸리면 눈덩이처럼 불어나서 감당이 안 되는 경우가 많다. 곧 빚을 갚고 싶어도 갚을 방법이 난망하다는 얘기다. 이런 사람들에 과연 도덕적 해이 타령만 하면서 밑도 끝도 없이 독촉에 시달리게 하는 것이 과연 공평한 것이냐 하는 문제도 있다. 예를 들어 폭력이나 절도, 강도와 같은 범죄은 재판을 받거나 교도소에서 복역하고 일정 기간이 지나면 그것도 죄값을 치르는 건데, 돈 100만 원 빌렸다가 못 갚고 이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난 사람은 오랜 시간동안 끝없이 빚 독촉에 시달리고 경제 활동에 크나큰 제약을 받아야 한다. 과연 형펑성에 맞는 것인가 하는 반론도 제기될 수 있다. 물론 소멸시효라는 것이 있어서 법률로 정한 기간 (이 경우에는 5년) 동안 채권자가 권리 행사를 안 하면 채권이 소멸되긴 하는데 일부라도 돈을 갚으면 다시 심지어 소멸시효가 지난 채권이라고 해도 갚을 의사가 있다고 해서 소멸시효가 리셋된다. 이 점을 이용해서 이미 소멸시효가 훨씬 지나버린 채권을 사들인 추심업자가 전화를 해서 만 원이라도 갚으면 원금을 깎아주겠다고 채권자를 꼬드겨서 리셋을 시키는 추심업자들도 있다. 소멸시효에 대해서 잘 모르는 채무자는 그 말만 믿고 만 원을 갚았다가 빚독촉에 본격적으로 시달리게 된다. 더 골때리는 건 이렇게 부활하면 소멸시효가 10년이 된다. 처음의 채권은 일종의 '상행위'로 생긴 상사채권이라서 5년을 적용 받지만 부활하면 일반 채권으로 간주되는 것. 공소시효보다 더하다. 사람을 죽였냐 성폭행을 했냐.

또 한편으로는, 마치 연체자들이 사치나 과소비로 빚을 진 것인 양 보는 시각도 있다. 이는 편견이다. 물론 자기 수입 생각 안 하고 신용카드 긁다가 빚지는 사람도 많다. 그러나 저소득층 가운데는 백만원 빚을 못 갚아서 인생이 절단나는 사람도 많다. 예를 들어 가족이 아파서 치료비가 필요한데 수입은 변변치 않다. 갚는 문제는 나중에 생각하고 일단 돈을 빌려서 치료비를 대는 게 도덕적인가? 아니면 돈 갚을 여력이 안 되니까, 하고 생각하면서 가족이 치료 못 받아서 고통에 시달리는 것을 그냥 보는 게 도덕적인가? 또한 채무자들 중에는 처음부터 배짜라가 아니라 갚다 갚다 감당 못해서 주저앉는 사람도 많다. 연체 이자란 게 한번 걸리기 시작하면 불어나는 속도가 무섭다. 제2금융권은 애초에 이자가 비싼데, 이자가 낮은 제1금융권은 담보가 있거나 대기업 직원이나 공무원 같은 '안정된 직장'이 있어야 한다. 결국 저소득층은 돈이 필요할 경우 비싼 이자를 물게 되어 있다. 원금보다 훨씬 많은 이자를 갚고도 결국 원금을 하나도 못 줄여서 무너지는 사람도 많다. 이게 과연 도덕적 해이의 문제일가?

사실 따져 보면 100만 원 짜리 빚이 5만 원짜리 부실채권이 되어 돌아다닌다면 그냥 채무자가 그 채권을 사서 없애버리면 될 일인데, 이런 거래는 언제나 도매로 이루어지지 소매는 안 된다. 애초부터 100만 원짜리 채권을 5만 원원으로 떨이 처리하고 그 채권을 산 사람은 원금에 이자까지 다 받아먹겠다고 덤벼드는 것도 전혀 도덕적이지 않다. 왜 개인만 도덕적이어야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