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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대통령선거에서 국태민안호국당(줄여서 호국당) 후보로 출마했던 승려. 하지만 기존 [[불교]] 교단과는 관련 없는 | 2002년 대통령선거에서 국태민안호국당(줄여서 호국당) 후보로 출마했던 승려. 공식 직함으로는 세계불교법왕청 산하에 있는 서울 관악구 봉천동 소재 법륜사 주지였다. 하지만 기존 [[불교]] 교단과는 관련 없는 사이비 종교라는 게 불교계의 입장. 공식적인 승적도 없다. "역대로 큰스님들은 국난 때 사회참여를 주저하지 않았다"는 게 출마의 변이었다. <del>자칭 큰스님이라고 과시하기 위해 출마했다는 소리.</del> 최근에는 거의 사라졌지만 예전에는 대통령 선거 때마다 정체불명의 <del>듣보잡</del> 인물이 출마하곤 했는데, 그 중 일부는 사이비 종교의 교주였다. 출마를 하려면 기탁금도 들고 선거운동을 위한 비용도 들지만 이를 통해서 자기 종교의 세를 과시할 수 있어서 더 많은 신도를 끌어모으거나 기존 신도로부터 더 많은 돈을 뜯어낼 수 있기 때문에 결과적으로는 남는 장사였다고. 아무튼 당시 기탁금 5억 원은 신도들이 십시일반해서 모았다고 한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38&aid=0000163548 "<nowiki>[대선후보] 김길수씨는 누구?</nowiki>"], <한국일보></ref> | ||
40년 전에 출가했고 1970년에는 육군 7사단에서 하사로 병역을 마쳤으며,<ref>그런 군 경력이 있어서인지 사병에 한해서 월급을 200% 올리겠다는, 당시로서는 어떤 후보도 내놓지 않았던 파격적인 공약도 내놓았다.</ref> 88년 필리핀 콘티넨탈대 경영학과를 졸업했다는 게 그의 이력. | |||
당시 하나로국민연합의 | 출마 당시 때부터 굉장히 센세이션을 일으켰는데, 남들처럼 출마 선언을 하고 현충원 참배를 간 게 아니라 6일 동안 동안거에 들어갔다. "큰 일을 앞두고 몸가짐을 단정하게 하기위한 것"이었다고. 또한 선거 8일을 앞두고 남들은 선거운동이 절정으로 치달을 때 혼자 선거운동을 끝마쳤는데, 다시 동안거에 들어갔기 때문. | ||
특히 2002년 대선에서 처음으로 도입된 군소후보 토론회는 김길수의 포스를 보여주는 절정이라 할 수 있다. 법복을 입고 나온 것은 그렇다고 치더라도, 대선후보 토론장에 [[선글라스]]를 쓰고 나온 것은 사상 초유. 이전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듯. 일단 비주얼로도 확 관심 집중에다가 삐딱하게 앉아서 굉장히 성의 없는 듯이 툭툭 던지는 말들, 얘기 하다가 잘 안 풀리면 볼펜을 집어던지기도 하는 그의 포스는 정말 압권이었다. 같은 자리에 있었던 허경영 조차도 김길수의 포스에 눌려 그때만큼은 존재감을 상실할 정도였다. 아마도 대선에서 허경영 이상의 미친 (정말로) 존재감을 발휘했던 사람은 김길수 말고는 없을 듯. | |||
법조인 출신으로 5공과 6공 당시 집권여당이었던 민주정의당의 실력자 중 한 명이었으며, 6공 때는 국무총리까지 지냈고 당시 하나로국민연합의 총재였던 이한동도 군소후보 신세가 되어 토론회에 나와 있었는데. 김길수의 압도적인 비주얼과 기행, 그 아래에서 어떻게든 존재감을 찾아보려고 하던 허경영과 같은 후보들의 모습을 보고 거의 똥씹은 표정을 지었다. <del>내가 그래도 한 때 일국의 총리를 지낸 몸인데. 어찌 이런 정신 나간 인간들과 같은 테이블에...</del> | |||
포스터 역시 당시 대선에서 가장 유명한 전설이 되었다. | 포스터 역시 당시 대선에서 가장 유명한 전설이 되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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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낙에 포스터의 존재감이 강력했기 때문에 디시인사이드를 비롯한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패러디 합성이 넘쳐났다. 예를 들어, | 워낙에 포스터의 존재감이 강력했기 때문에 디시인사이드를 비롯한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패러디 합성이 넘쳐났다. 예를 들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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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본 포스터를 보면 알겠지만 "불심으로 대동단결!"이 아니라 "불심으로! 대동단결!" 두 개 문장이다. | 원본 포스터를 보면 알겠지만 "불심으로 대동단결!"이 아니라 "불심으로! 대동단결!" 두 개 문장이다. | ||
라디오 광고도 아주 미친 개성을 자랑해서, 남자와 여자가 계속해서 '불심으로 대동단결' 멘트를 되풀이하는데 듣다 보면 정신이 왠지 몽롱해진다. <del>최면을 걸어서 자기를 찍게 만드는 고도의 수법일지도 모른다.</del> | |||
결과야 말할 것도 없다. 0.2% 득표를 했는데 그래도 5위로 꼴찌는 안 했다. 꼴찌는 사회당 김영규 후보. | 결과야 말할 것도 없다. 0.2% 득표를 했는데 그래도 5위로 꼴찌는 안 했다. 꼴찌는 사회당 김영규 후보. | ||
선거 후 잊혔던 그의 이름이 다시 나온 것은 그로부터 1년 반 뒤. 정치면이 아니라 사회면에 나왔고, 대선 후보나 정치인이 아니라 사기범으로 등장했다. 신도의 소개로 알게 된 모 인사에게 " | 선거 후 잊혔던 그의 이름이 다시 나온 것은 그로부터 1년 반 뒤. 정치면이 아니라 사회면에 나왔고, 대선 후보나 정치인이 아니라 사기범으로 등장했다. 신도의 소개로 알게 된 모 인사에게 "[[대통령]]에 당선되면 [[국회의원]]과 [[국무총리]]를 시켜주겠다"면서 대선후보 등록금과 선거자금 명목으로 6억원을 받았고, "전남 일대에 세계법왕청을 건립해 복지 및 영리사업을 하자"고 꼬드겨서 2년 동안 74억여원을 받아 가로챘다고 한다. 여기에 더해서 [[신용카드]]를 빌려다가 1억9천만원을 썼으니까 모두 해서 88억 원을 뜯어낸 혐의로 구속되었다.<ref>[http://legacy.www.hani.co.kr/section-005000000/2003/08/005000000200308210038458.html 호국당 대선출마 김길수씨 사기혐의 구속], <한겨레신문> 2003년 8월 21일</ref> <del>이런 뻥을 친 사람보다 이런 소리를 듣고 64억이나 준 사람이 더 이상한 거 아닌가?</del> 채판 결과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 받았다. [[집행유예]]로 받을 수 있는 가장 큰 형량이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합의가 되었으나까 그나마 이 정도였던 거지 합의 안 됐으면 꽤나 오래 감방에서 썩으셨을 듯.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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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4월 17일 (일) 10:56 기준 최신판
"불심으로! 대동단결!"
2002년 대통령선거에서 국태민안호국당(줄여서 호국당) 후보로 출마했던 승려. 공식 직함으로는 세계불교법왕청 산하에 있는 서울 관악구 봉천동 소재 법륜사 주지였다. 하지만 기존 불교 교단과는 관련 없는 사이비 종교라는 게 불교계의 입장. 공식적인 승적도 없다. "역대로 큰스님들은 국난 때 사회참여를 주저하지 않았다"는 게 출마의 변이었다. 자칭 큰스님이라고 과시하기 위해 출마했다는 소리. 최근에는 거의 사라졌지만 예전에는 대통령 선거 때마다 정체불명의 듣보잡 인물이 출마하곤 했는데, 그 중 일부는 사이비 종교의 교주였다. 출마를 하려면 기탁금도 들고 선거운동을 위한 비용도 들지만 이를 통해서 자기 종교의 세를 과시할 수 있어서 더 많은 신도를 끌어모으거나 기존 신도로부터 더 많은 돈을 뜯어낼 수 있기 때문에 결과적으로는 남는 장사였다고. 아무튼 당시 기탁금 5억 원은 신도들이 십시일반해서 모았다고 한다.[1]
40년 전에 출가했고 1970년에는 육군 7사단에서 하사로 병역을 마쳤으며,[2] 88년 필리핀 콘티넨탈대 경영학과를 졸업했다는 게 그의 이력.
출마 당시 때부터 굉장히 센세이션을 일으켰는데, 남들처럼 출마 선언을 하고 현충원 참배를 간 게 아니라 6일 동안 동안거에 들어갔다. "큰 일을 앞두고 몸가짐을 단정하게 하기위한 것"이었다고. 또한 선거 8일을 앞두고 남들은 선거운동이 절정으로 치달을 때 혼자 선거운동을 끝마쳤는데, 다시 동안거에 들어갔기 때문.
특히 2002년 대선에서 처음으로 도입된 군소후보 토론회는 김길수의 포스를 보여주는 절정이라 할 수 있다. 법복을 입고 나온 것은 그렇다고 치더라도, 대선후보 토론장에 선글라스를 쓰고 나온 것은 사상 초유. 이전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듯. 일단 비주얼로도 확 관심 집중에다가 삐딱하게 앉아서 굉장히 성의 없는 듯이 툭툭 던지는 말들, 얘기 하다가 잘 안 풀리면 볼펜을 집어던지기도 하는 그의 포스는 정말 압권이었다. 같은 자리에 있었던 허경영 조차도 김길수의 포스에 눌려 그때만큼은 존재감을 상실할 정도였다. 아마도 대선에서 허경영 이상의 미친 (정말로) 존재감을 발휘했던 사람은 김길수 말고는 없을 듯.
법조인 출신으로 5공과 6공 당시 집권여당이었던 민주정의당의 실력자 중 한 명이었으며, 6공 때는 국무총리까지 지냈고 당시 하나로국민연합의 총재였던 이한동도 군소후보 신세가 되어 토론회에 나와 있었는데. 김길수의 압도적인 비주얼과 기행, 그 아래에서 어떻게든 존재감을 찾아보려고 하던 허경영과 같은 후보들의 모습을 보고 거의 똥씹은 표정을 지었다. 내가 그래도 한 때 일국의 총리를 지낸 몸인데. 어찌 이런 정신 나간 인간들과 같은 테이블에...
포스터 역시 당시 대선에서 가장 유명한 전설이 되었다.
워낙에 포스터의 존재감이 강력했기 때문에 디시인사이드를 비롯한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패러디 합성이 넘쳐났다. 예를 들어,
원본 포스터를 보면 알겠지만 "불심으로 대동단결!"이 아니라 "불심으로! 대동단결!" 두 개 문장이다.
라디오 광고도 아주 미친 개성을 자랑해서, 남자와 여자가 계속해서 '불심으로 대동단결' 멘트를 되풀이하는데 듣다 보면 정신이 왠지 몽롱해진다. 최면을 걸어서 자기를 찍게 만드는 고도의 수법일지도 모른다.
결과야 말할 것도 없다. 0.2% 득표를 했는데 그래도 5위로 꼴찌는 안 했다. 꼴찌는 사회당 김영규 후보.
선거 후 잊혔던 그의 이름이 다시 나온 것은 그로부터 1년 반 뒤. 정치면이 아니라 사회면에 나왔고, 대선 후보나 정치인이 아니라 사기범으로 등장했다. 신도의 소개로 알게 된 모 인사에게 "대통령에 당선되면 국회의원과 국무총리를 시켜주겠다"면서 대선후보 등록금과 선거자금 명목으로 6억원을 받았고, "전남 일대에 세계법왕청을 건립해 복지 및 영리사업을 하자"고 꼬드겨서 2년 동안 74억여원을 받아 가로챘다고 한다. 여기에 더해서 신용카드를 빌려다가 1억9천만원을 썼으니까 모두 해서 88억 원을 뜯어낸 혐의로 구속되었다.[3] 이런 뻥을 친 사람보다 이런 소리를 듣고 64억이나 준 사람이 더 이상한 거 아닌가? 채판 결과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 받았다. 집행유예로 받을 수 있는 가장 큰 형량이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합의가 되었으나까 그나마 이 정도였던 거지 합의 안 됐으면 꽤나 오래 감방에서 썩으셨을 듯.
각주
- ↑ "[대선후보] 김길수씨는 누구?", <한국일보>
- ↑ 그런 군 경력이 있어서인지 사병에 한해서 월급을 200% 올리겠다는, 당시로서는 어떤 후보도 내놓지 않았던 파격적인 공약도 내놓았다.
- ↑ 호국당 대선출마 김길수씨 사기혐의 구속, <한겨레신문> 2003년 8월 21일